[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회]
한국기독교 성육신의 영성과 사회봉사

- 2010년도 사회복지 엑스포 국제심포지엄 발제 논문
  


                                                           이강학 박사 (Graduate Theological Union)

기독교영성 박사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 - 실천신학/영성





<아래 글은 2010년 사회복지 엑스포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이강학 박사의 논문 '한국기독교 성육신의 영성과 사회봉사'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전문을 보기 원하시면 첨부된 파일을 다운받으시기 바랍니다.>

 

1. 기독교 영성과 사회봉사

사회봉사란 무엇인가? 필자는 사회사업학자인 데럴 와킨스가 사회봉사에 대해 내린 정의를 사용하려고 한다. 와킨스에 의하면 사회봉사 (social ministry) 영적,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관계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영성은 사회봉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기독교 영성과 사회봉사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위에서 살펴본 다섯 가지 범주에 의지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보자.

 

1)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회봉사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맛보게 되고,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서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보호자로 계시되고 있다 (시편 68:5). “고아와 과부는 구약 성경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대표하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27이 성부 하나님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봉사를 관련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또한, 성자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읽은 이사야서의 본문 역시 사회봉사를 담고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4:18-19; 61:1-2). 이 구절은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 들을 위한 섬김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시할 뿐만 아니라, 그 사역들이 성령이 임함으로써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 관심의 대상이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이 그들에서 우선적으로 나타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한 기독교인들의 삶이 사회봉사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위의 사실에 기초하여 역으로 살펴보면, 사회봉사는 하나님을 정말 만났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를 분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 개신교의 대표적인 영성가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앙과 정서>(Religious Affections)라는 책에서 성령의 역사로 경험한 은혜로운 정서의 열두 가지 표지 중 마지막 표지로서 실천”(practice)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실천은 사회봉사를 포함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고백자가 그 행실을 통해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짐으로써 그 진실성을 드러내고, 참화를 만난 사람들의 짐을 대신 지려고 하며 그들을 위해 자기의 물질을 쓰고, 다른 사람의 영혼과 몸의 유익을 위해 자기의 세상 이익을 많이 손해 보려고 한다면, 그저 말로만 자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보다도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믿을 만한 더욱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영성운동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보아야하는 것은 그 영성운동의 설립자가 어떤 하나님을 경험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경험한 하나님이 그 자신을 비롯해서 그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의 실천의 성격, 다시 말해서, 사회봉사의 성격을 특징 짓기 때문이다.

 

2)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자기초월 즉, 영적 성장의 과정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영성에서 사회봉사는 그 자체가 영성생활의 목표는 아니다. 사회봉사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영성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봉사는 성도가 하나님을 향해가는 여정의 중요한 한 과정으로서 제시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사에 등장한 영성운동들은 각기 다른 비율로 사회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영성운동은 사회봉사에 전적으로 투신하지만, 다른 영성운동은 얼른 보면 사회봉사에는 전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성인 마더 데레사를 따르는 수녀회의 수녀들은 하루 종일 봉사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그러나, <위대한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알프스 산에 있는 한 카르투지오 수도회 수사들은 일평생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전자는 사회봉사의 대표적인 영성운동이고 후자는 사회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영성운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볼 때, 전자의 수녀들이 사회봉사에 참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해 영적으로 성장하기 원하는 갈망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반대로, 후자의 수사들의 침묵과 고독이라는 활동 역시 미시적인 차원에서 봉사에 깊이 간여하고 있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섬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시적인 차원에서 카르투지오회 수사들은 매일 맡겨진 임무에 순종해서 노동을 한다. 그 노동은 공동체를 섬기는 봉사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그들은 침묵과 고독을 지키고 경험함으로써 세상에 영성의 맑은 샘물을 제공하는 영적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사회봉사에 대한 정의에서, 사회봉사가 영적문제를 도와주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에 착안한다면, 카르투지오회 수사들도 넓은 의미로 사회봉사에 참여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영성운동을 살펴볼 때, 기존의 사회봉사라는 말이 담고 있는 범주에 머물지 말고, 그 영성운동이 자기초월의 여정으로서 어떤 차원의 사회봉사를 실천하고 있는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3)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삶을 통합시키는 프로젝트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돕는 영성훈련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영성운동을 살펴볼 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영성운동의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사회봉사라는 영성훈련이 설립자를 비롯해서 구성원들의 삶을 통합시키는데, 삶의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4)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의식적 참여에 해당한다.

의식적 참여의 관점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영성운동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사회봉사에 의식적으로 자발적인 의지를 갖고 참여하고 있는가? 구성원들이 사회봉사에 있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일깨워주고 있는가?

 

5)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하나님 경험의 현장을 제공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사회봉사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역으로 사회봉사의 현장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성운동 구성원들이 사회봉사를 하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사회봉사를 우선적으로 실천하는 영성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다: 그 영성운동의 설립자와 구성원들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그들은 영적성장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들은 어떤 영성훈련에 집중하는가? 그들은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는가? 마지막으로 그들은 사회봉사를 통해 어떤 하나님 경험을 하게 되는가?

 

2. 한국기독교의 영성과 사회봉사

 

한국 교회에도 수많은 영성 운동들이 나타났었다. 그리고 많은 영성 운동들은 사회봉사를 우선순위에 놓고 실천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그 중에서도 개신교의 대표적인 두 가지 운동, 즉 귀일원(동광원) 운동과 다일공동체 운동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 영성운동들이 어떻게 사회봉사에 그토록 혼신의 힘을 기울이게 되었는지 그 영성적 배경을 살펴보려고 한다.

 


다일공동체 운동과 사회 봉사

2010년 창립 22주년을 맞은 다일공동체는 1988년 말에 최일도 목사가 서울 청량리에서 노숙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면서 시작되었다. 1996년 밥퍼 나눔운동본부가 출범했고, 1998년 사회복지법인 다일복지재단이 창립되었으며, 1999년 가평에서 다일 영성생활수련원이 시작되었다. 2002년에는 무료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을 준공했고 2004년 자연치유센터를 가평에 열었다. 1999년 중국다일공동체에서 어린이집을 시작한 이후로, 2002년 베트남, 미국, 2004년 캄보디아, 2005년 필리핀, 2007년 네팔 등에 차례로 공동체가 세워지고 밥퍼 사역을 포함하여 사회봉사 활동이 해외로 확산되었다. 장신대 임성빈 교수는 다일공동체의 문화사적 의미라는 글에서 다일공동체는 한국 개신교가 자랑할 수 있는 도시빈민을 위한 사역 기구가 되었다라고 다일공동체 20주년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다일공동체가 사회봉사라는 분야에 있어서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기구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다일공동체가 그렇게 많은 사회봉사를 국내에서 해외에서 감당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영성운동으로서의 다일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 기독교 영성운동의 관점에서 다일공동체를 살펴보려고 한다.

 

(1) 다일공동체 운동의 출발과 목표: 나사렛 예수의 영성

다일공동체의 영성을 최일도 목사는 한 마디로 나사렛 예수의 영성이라고 요약한다. 그는 이 분류가 리처드 포스터의 영성 운동 분류 가운데 성육신의 전통에 해당한다고 규정한다. 성육신의 영성 전통이란 기독교 영성의 근간이 되는 예수, 그것도 육화하여 이스라엘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며, 시골뜨기들과 더불어 시장바닥을 뒹굴며 하나님의 나라를 말로 행동으로 선포하셨던 예수에 보다 더 주목하는 영성이다. 따라서, 최일도 목사에 의하면, 영성생활이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주 예수를 인생의 길잡이로 삼아 살아가는 삶이고, 나사렛 예수의 영성이란 예수의 정신, 예수의 사역, 예수공동체에 주목하는 영성을 말한다. 최일도 목사는 이런 영성의 모범으로 샤를르 드 푸코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를 들고 있다. 특히, 이 두 영성가의 기도문들은 다일공동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도문들이 되었다.

최일도 목사가 나사렛 예수의 영성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된 계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자서전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두 번 언급한다. 첫 번째는 하루 종일 청량리 역전에 쓰러져 누워있던 할아버지를 보는 순간, 그의 마음에 들려온 음성이다: “아니, 아직 먹지 못했다. 일도야, 너는 언제까지 나를 이 차가운 길바닥 위에 눕혀놓을 작정이냐?” 그는 이 음성에 이어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고, 이들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25:40)라는 말씀이 떠올랐고 이 사건이 그에게 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음성을 들은 후로, 최일도 목사가 청량리에서 노숙인들에게 라면과 밥을 나누는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음성은, 중풍에 걸린 목사 사모님을 한 카톨릭 무료 병원에 데려갔다가 거절당한 후에 들은 음성이었다: “일도야, 나의 대책은 바로 너다. 일도야, 너는 어느 때까지 나에게 대책을 묻고 따질 거냐. 나의 대책은 바로 너 자신이다. 일도야, 어느 때까지 너는 나를 차가운 땅바닥에 눕혀 놓을 셈이냐. 어느 때까지...” 최일도 목사는 이 음성은 청량리에서 함경도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그 음성을 다시 생각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술회한다. 이 일 후에 개신교 무료병원인 천사병원을 세우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최일도 목사는 이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의 만남을 나사렛 예수와의 만남으로 믿고 예수님을 섬기듯 그들을 섬기려고 했다. 이처럼 그의 하나님 경험의 특징은 신비적인 기도 속에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 있다.

 

(2) 다일공동체 운동에서 사회봉사와 영성훈련

다일공동체의 사회봉사는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는가?”라는 큰 질문에 대한 한 응답으로 자리하고 있다. 최일도 목사는 다일공동체를 소개하는 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다일공동체의 주요관심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일하면 도시빈민을 섬기는 현장으로 생각합니다. 다일하면 밥 퍼 주는 곳으로만 알고 있지요.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서 밥을 퍼주겠다는 것이 다일의 밥퍼 정신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된 관심 작업이긴 하지만 다일이 지향하는바 전체는 아닙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일이 우선이 아니고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10년 동안 한 사람의 헌신된 형제를 길러내는 것이 궁극적인 관심이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공동체를 살기로 서약한 가족들이 매일매일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는가?”하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모이면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사렛 예수의 영성생활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며 살기로 다짐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은 하다가 지치면 그만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약속으로 정한 날엔 18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 퍼왔습니다. 하지만 일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밥을 꼭 다일이 퍼야 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면서 공동체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다일이 해내야 할 사명입니다. 다일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 시대의 과제로 믿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일공동체는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가장 지향하는 영성운동인 것이다. 도시빈민을 위한 봉사 사역을 포함해서 다른 모든 활동들은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활동으로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일공동체 영성운동에 담긴 몇 가지 특징을 기독교영성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해볼 수 있다. 첫째, 다일공동체는 영성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기도와 실천 또는 관상과 실천 (contemplation and action)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 균형 잡힌 영성은 기독교영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모든 존경받고 신뢰받는 영성가들은 기도와 실천에 균형이 잡혀있다는 특징이 있다. 혹자는 사막의 영성가들이나 봉쇄수도원의 영성가들이 세상을 도외시하지 않았는가하고 의문을 던지지만, 그들 역시 기도를 통해 교회의 일치와 세상의 정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알 수 없다. 끌레르보의 버나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깊이 있는 신비기도 체험의 소유자였지만, 부와 권력으로 타락한 수도원을 개혁하고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실천에도 큰 역할을 했다.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는 탁발수도회의 창시자로서 세상 속을 다니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지만, “태양의 노래와 같은 기도문에 담겨있는 그의 기도의 깊이는 어느 사막 영성가, 봉쇄 수도원의 영성가 못지 않다. 다일공동체는 영성생활수련원을 통해 기독교영성사의 기도생활 즉 관상생활의 맥을 잇고 있는 한편, 밥퍼식당과 천사병원 및 중국,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 있는 공동체의 사역을 통해 기독교영성사의 실천 즉 구제긍휼사역의 맥을 잇고 있다.

둘째, 다일공동체 영성운동은 기도와 실천의 균형을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와 실천 그 각각에 있어서도 기독교 영성사에 기반한 바른 기도의 길, 바른 실천의 길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대다수 한국개신교인에게 기도는 무엇인가? 그 형식에 있어서는 소리를 내서 하는 구송기도로서 집단적 통성기도와 대화식기도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주시옵소서!”를 강조하는 청원기도가 주를 이루고 감사기도와 찬양기도가 보태지고 있다. 기도의 도입으로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큐티 (Quiet Time) 또는 찬송하기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영성의 전통에는 훨씬 깊이 있고 다양한 기도에 대한 이해와 방법들이 있다. 우선, 내 생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청원기도는 기도의 주목적이 결코 아니다. 기도의 주목적은 하나님과의 일치에 있다.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고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다. 그리고, 기도에 있어서 소리는 극히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기도의 대부분은 침묵이다. 말을 하기 보다는 듣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기도의 시작은 성경묵상, 기도문암송, 성화관상, 자연묵상 등에서 시작한다. 기도 시간에는 성경묵상을 머리로 연구하고 따지기 보다는 가슴으로 다가오는 말씀을 찾으려고 애쓴다. 시편이나 영성가들의 기도문은 좋은 기도의 안내자가 된다. 성화 (icon)를 보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나 느낌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하기도 한다. 나무나 풀, 시냇물소리가 기도의 좋은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기도의 수단들은 하나님과 머리로 만나는데서 그치지 않고, 가슴으로 만나도록 이끄는 수단일 뿐이다. 이 기도의 수단들을 넓은 의미로 영성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일영성생활수련원에서는 기독교영성사에 바탕을 둔 침묵기도, 예수호칭기도 (Jesus Prayer), 거룩한 성경 읽기 (Lectio Divina), 자연묵상 등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개신교인들의 기도에 깊이와 넓이를 더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

다일의 영성은 바른 기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할 뿐만 아니라, 바른 실천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다일공동체가 처음 출발하던 80년대 시절만 해도, 복음주의적 기독교인은 실천이라고 하면 개인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도와 선교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이자 한국 복음주의 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친 빌하이벨스 목사의 고백을 필두로, 교회의 양적 성장만을 목표로 한 복음전도와 선교는 영성의 천박성과 함께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편 진보적 기독교인은 민중신학적 이념에 기반한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만이 진정한 실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는 실천은 그 명분이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역시 그 한계를 보이고 말았다. 다일공동체는 말로만 전하는 복음전도와 선교가 아니라, 청량리 윤락가 한복판에서 살면서 노숙인, 독거노인들에게 밥을 퍼주고 언니들을 감동시키며 말이 아닌 몸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다. 또 다일공동체는 운동권의 머리가 아니라 생활권의 가슴으로 사회의 밑바닥 생활에서부터 나오는 진정한 부르짖음을 대변했다. 다일공동체의 바른 실천에 대한 이런 끊임없는 질문과 응답이 오늘 복음주의적 기독교인과 진보적 기독교인의 공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셋째, 다일공동체 영성운동은 한국적 영성과 서양 기독교 영성을 적절하게 통합하고 있다. 다일공동체는 기독교 영성사에 있는 영성훈련의 방법들에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현대 기독교 공동체들에도 관심을 갖고 교류를 하고 있다. 떼제 공동체와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교회의 본질이 공동체성에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공동체성의 회복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다일의 영성은 한국적 영성이다. 영성이 자기 중심성과 이기적 욕심을 초월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다룬다고 할 때, 그 경험은 다분히 기도하는 사람의 문화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이 은혜 받았다고 말하는 경험과 서양 기독교인이 영적 감동을 받는 경험은 상당히 다르다. 문화심리학자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서양인들의 자아 (self) 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사람들의 자아가 다르다는 것을 든다. 서양인의 자아는 독립적 (independent) 이고 개인적 (individualistic) 인 반면, 한국인의 자아는 관계적 (relational) 이고, 의존적 (interdependent) 이고, 집단적 (collective) 이다. 한국인은 관계로 매이고 관계로 푼다. 관계에서 오는 한국인의 상처는 서양인에 비해 무척 심각하다. “화병은 한국인의 문화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병이라고 세계의학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다일영성생활수련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에서 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 것도 를 생성하게 되는 관계가 한국인에게 얼마나 심각한가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의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 받는다면 한국인의 인간관계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아울러, 인간관계와 직결되어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더욱 원활한 소통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일 영성의 한국적 특성은 이라는 낱말에 잘 담겨 있다. 다일의 영성은 의 영성이 아니라, “의 영성, “진지의 영성이다. 청량리의 밥퍼무료식당에서 매일같이 최상의 쌀로 지어져서 나누어지는 에 다일의 영성이 담겨 있다. 또한, 다일공동체의 식사시간마다 드려지는 진지기도에 다일의 영성이 담겨 있다. 아울러, 다일 영성생활수련때 행해지는 진지 알아차리기에 다일 영성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진지 상에 오른 알곡들, 채소들과 고기들의 색깔, 크기, 모양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살겠습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결심하는 모든 경험이 지극히 친근한 한국적인 경험인 것이다.

넷째, 다일공동체의 영성생활수련은 수련자들을 자원봉사자로 양성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일공동체 영성생활수련은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 2단계 작은 예수 살아가기”, 3단계 하나님과 동행하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대중을 향하여 열린 영성훈련의 장이다. 또한, 다일DTS (Discipleship Training School)와 다일STS (Servant Leadership Training School)6개월과 1년의 긴 기간동안 노동을 기도로, 기도를 노동으로사는 법을 훈련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영성훈련들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다일공동체의 사회봉사활동을 후원할 뿐만 아니라 자원하여 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다일공동체의 영성훈련이 거기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가족뿐만 아니라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사렛 예수의 영성생활을 흘러넘치게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마지막으로, 다일의 영성은 그 이름 그대로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영성이다. 다름이 곧 틀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일공동체는 내 기준과 고정관념으로 나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전에, 다름에서 오는 개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 다름을 아름답게 조화시킬 수 있는 일치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다일의 영성이 지향하는 바이다. 특히, 화해와 일치의 추구는 갈래갈래 찢기고 분열된 현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볼 때 참 중요한 한국적 영성훈련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첨부- 다일공동체 진지기도문>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땀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땅에 밥으로 오셔서

우리의 밥이 되어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밥상을 베푸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맑은 마음, 밝은 얼굴, 바른 믿음, 바른 삶으로

이웃을 살리는 삶이기를 다짐하며

감사히 진지를 들겠습니다.

 




Abstract 

Korean Christian Spirituality and Social Service 

Lee, KangHack, Ph.D. (Graduate Theological Union) 

This paper studie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Christian spirituality and social service. First, it deals with the definition of Christian spirituality. Using the definition of spirituality by Sandra Schneiders, this paper explores various aspects of Christian spirituality. Second, based on the definition, it develops how Christian spirituality relates to social service. Finally, this paper explores two representative Christian spiritual movements, Guiilwon and Dail Community, focusing on its beginning, its perspective on social service, and spiritual practices. In sum, for both movements, the motivations are to love and follow Jesus Christ and all their activities including social service have been naturally flowed from those motivations. 

Key Words: Korean Christian Spirituality, Social Service, Incarnational Spirituality, Guiilwon, Lee Hyun-Pil, Dail Community, Choi Il-Do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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