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20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내 인생의 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5)”

[MC]
아~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더 대단한 작가로 느껴지는데요, 그런데 반대로 보면 작가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방대한 양과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독자들로 하여금 읽기 힘든 책이라는 생각을 주는데요.

[강유정]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거대한 소설 안에 여러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소년들의 얘기, 대심문관, 파 한뿌리 등... 이런 작은 내용을 분리시키면 또 다른 소설이 탄생될 만큼 하나하나의 줄거리가 완성도가 높지요.

그런 부분들이 산만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런 모든 내용을 짜임새있게 만들어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게 또 작가의 힘이며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이유가 아닐까요?

[김수환]
맞습니다. 작가의 메시지나 사상이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다채롭게 분산되어 있고 또 그것들이 긴밀하게 짜여 작품 전체의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양한 에피소드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면, 분명 그건 바로 ‘대심문관’에 관한 단편일 겁니다.

흔히 ‘대심문관의 전설’이라 불리는 이 단편은 둘째 이반이 쓴 산문시인데, 그가 자신의 사상을 동생인 알료샤에게 표명하는 부분에서 등장합니다. 어쩌면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전체가 바로 이 단편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응답’에 다름 아니라는 견해가 있을 정도로, 이 부분이 갖는 의미는 지대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단편은 수많은 후대의 사상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자극의 원천이 된 바 있습니다. 니체와 프로이트가 대표적이고, 국내 작가로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들 수 있습니다. 대심문관 전설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에 관한 하나의 ‘내기’입니다.

인간은 과연 ‘빵’을 추구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인가? 인간이란 결국 나약한 속물에 불과한가? 아니면 최 목사님 말씀처럼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지닌 초월성 혹은 영성적인 존재인가?

대심문관은 마치 영화 <베트맨>의 조커처럼, 우리를 가장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 앞에 던져놓고서,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강요합니다. 이 물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서, 그 딜레마와 대결하는 일은 몹시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또 그만큼 강렬하고 짜릿한 경험입니다.

[최일도]
대심문관과 그리스도의 대화 장면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특히,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도들과 우리시대 목회자들에게는 아주 대단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다시 언급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이 책 첫 페이지에 요한복음 12장 24절을 쓰고 시작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한 알의 밀알 이야기지요.

많은 지성인들과 문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이 복음적인 메시지를 다루지 않거나 살짝 피해 지나가려고 하는데, 도스토옙스키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온 몸으로 만난 예수님과 이 작품의 백미인 대심문관을 배제하고는 이 작품은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냉철한 무신론자 이반은 그리스도를 비웃고 냉소합니다만 도스토옙스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 말을 들을 귀 있는 자는 듣습니다. “아무리 비웃고 조롱하여도, 만약 그리스도가 진리가 아니라고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우긴다 하여도 나는 그리스도와 같이 있기를 선택할 것이다!” 라고 말한 사람입니다.

[MC]
그렇군요. 오늘 만나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읽는 사람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조금씩 다르게 와 닿을 거 같은데요.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읽으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 말씀해주세요

[최일도]
네, 이 방송을 시청하시는 분들께서, 또 지금 여기 방청석에 계신 분들이 기독교 신자이든지 아니든지, 종교가 있든지 없든지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독만 하여도 코에서 흐르는 코피를 잊는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피 한바가지를 흘린다 하여도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참 사랑을 깨닫고 실천하고 싶은 의욕이 일어날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처럼 진리를 사랑하면 외롭게 되지만 두려워 하지 않게 됩니다.

2000년 전, 공생애 시절의 예수님은 당시 제사장들과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눈에는 가히 혁명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살기 원했던 1000년 전의 수도자 성프란치스코도 그 당시 기준과 관점에서는 삶이 혁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 높은 곳에 더 크게 대성전을 지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로 알았을 때, 정반대로 저 낮은 곳에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하는 것이라며 한때 빗나간 교회의 방향을 돌이키고,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한 사람입니다.

500여년전 하나님의 뜻을 구현한 위대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도, 백년 전의 도스토옙스키도 다 공통점이 있는데 비본질을 과감히 버리라는 것입니다.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하여 먼저 인간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이제는 들음에서 행함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종교혁명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혁명은 계속됩니다...

[MC]
지난 한 해, 여러분은 어떤 책을 많이 보셨나요? 한 통계에 의하면 2012년에는 치유와 힐링의 에세이가 많았다면 2013년 출판업계의 키워드는 ‘이야기의 힘’ 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이야기가 주는 순간순간의 즐거움과 위로의 힘이 크기 때문 아닐까요? 다가오는 2014년에는 또 어떤 책이 우리를 찾아올지 기대가 됩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Posted by 다일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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