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일현장

-다일공동체 창립 25주년 기념, 해외분원 현장기록 모음(17/25)- 17) “외국인 형제가 거리성탄예배를...”

다일공동체 2013. 12. 23. 00:25
-다일공동체 창립 25주년 기념, 해외분원 현장기록 모음(17/25)-
17) “외국인 형제가 거리성탄예배를...”


다일공동체에서는 성탄절이 되면 청량리 쌍굴다리 밑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라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성탄예배를 올려드립니다....

10여년 전, 허름한 옷차림의 한 외국인 형제가 거리성탄예배를 찾아오더니 감동을 받고는 대광고등학교에서 저희들과 함께 주일공동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형제는 돈벌러 한국에 왔다가 돈을 많이 못번 대신 믿음이 부요해지고 풍성해진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그것도 밥퍼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사명을 처절하게 깨닫고는 고국에 가서 네팔의 밥퍼 아저씨가 되길 소원한 사람입니다.

이 형제의 이름은 부먼 팀세나입니다. 네팔의 힌두교 집안에서 태어나 생활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하고 인도로 떠나 매일 18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며 노숙자처럼 땅 바닥에 살며 힘든 시간을 겪었습니다.

1999년 산업연수생으로 꿈에도 그리던 한국 땅을 마침내 밟았고, 교회로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교회를 통해서 만난 분들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네팔로 돌아가야하는 날이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지 않아서 불법체류자가 되었습니다.

2003년, 대광고등학교 시절의 다일교회를 다니면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세례를 베풀면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을 때, 엄청나게 눈물흘리던 기억은 저도 팀세나 형제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공장에서 일하면서 불안속에 떨며 기도하던 그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모든 것을 내게 맡기라!’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로는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후 다일영성수련과 다일 D.T.S 훈련도 당당하게 잘 거쳐서 다일의 선교사로 파송 받아 2007년, 네팔 땅을 다시 밟고 현재는 네팔 다일공동체의 부원장으로 아름답게 섬기고 있습니다.

2008년 1월 11일, 네팔 다일공동체가 개원하던 날 저와 팀세나 부원장은 카트만두 빈민촌 현장에서 서로 가슴으로 껴안고는 감사하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청량리의 밥짓는 시인 최일도 목사님처럼 나도 마느하르 빈민촌의 아이들을 위해 카트만두의 밥퍼아저씨가 될거야!’ 이 결단과 함께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 어디든지 가서 나눔의 삶을 실천하겠다는 뜨거운 헌신을 하나님께 새롭게 올려드린 날입니다.

저대신 밥을 짓기 시작하며 ‘빈민들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도록 헌신하기로 다짐합니다’ 라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한 팀세나 형제를 제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튼튼한 건물도 음식을 제대로 지을 수 있는 조리도구도 없지만 얼기설기 지어진 대나무 집에서 이른 새벽부터 밥을 지었습니다. 구수한 밥 냄새가 진동합니다. 제대로 된 바람막이 없어 찬바람이 솔솔 얼굴을 스쳐도 따뜻한 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하루 한 끼도 채우지 못했던 아이들이 정성다해 지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 아침에도 네팔 카트만두 빈민촌 마느하르 강변에는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졸졸졸 모이는데 순식간에 사오백명이 모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지금 여기 네팔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작고 가난한 나라 중 한곳인 네팔에서 ‘밥퍼’와 네팔 최초의 호프스쿨인 다일코이카 대안학교와 지태다일유치원과 마느하르 다일클리닉 등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빈민촌 한가운데에서 생명이 생명을 낳고 희망이 희망을 낳는 새 역사의 현장을 저와 함께 가보시지요^^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