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일공동체]

다일공동체 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

"아름다운 세상찾기"에 대한 비방글을 보며 - 멋진비움 -


http://christustraeger.tistory.com/94

최일도 목사의 영성집회(다일영성수련)에 대한 이단시비를 보면서

 

미주 크리스찬투데이에 어느 사모와 목사가 최일도 목사의 영성집회(다일영성수련)에 참여하고 와서 이 집회에 대해 이단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최일도 목사가 교계의 유명인사이다 보니 파장이 좀 있는 것 같다.

 

최일도 목사의 집회에 대해 전모를 접해 보지 않은 상태라 단정지어 말하기가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일단 내가 이분들의 글에 대해 느낀 대체적인 인상은 이들의 의혹제기가 다분히 표피적이며, 자신들의 강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1. 최일도 목사가 자신을 북극성이라 칭했다?

 

언뜻 보기에 '두 증인' 운운하는 아무개 교주가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두분의 글에 따르면 집회참가자들도 별칭을 사용했다. 집회에 별칭을 사용하도록 한 것은 다분히 익숙한 일상성으로부터 탈피하고 인도자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이 자신을 돌아보도록 한 기제로 보인다.

북극성이라는 별칭을 썼다고 곧 교주가 된다며 참소하는 행태는 이를테면 '푸른나무'라고 필명을 쓰면 그 사람이 자칭 사람이 아닌 나무라고 했으니 사람같지 않다고 헐뜯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2. 예수님이 화를 내신 적이 있다? 없다?

 

이분들은 예수님이 화를 내신 적이 없다는 최일도 목사의 말을 꼬투리잡고 있다. 아마 성경해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예수님이 화내신 적이 있는가, 없는가?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는 기록을 가리키는 것이요, 없다고 한다면 이 분노는 사람을 죽이려는 악독한 육적 분노를 가리킨다. 최일도 목사는 당연히 후자의 뜻으로 말하면서 집회참석자들에게 육적 분노를 품을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자 한 것이지 성전심판기사를 부정하려는 뜻이 아니었음은 물론일 것이다. 최일도 목사의 말은 더도 덜도 말고 이 상황과 의도에 비추어 알아들으면 될 성질의 발언이다.

 

이에 비해, 육적 분노를 품은 일이 분명 있는 참석자들 가운데 있었던 두분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이 말을 문제삼아 예수님을 로보트처럼 만드는 거짓된 가르침 운운한다. 이게 도대체 번지수가 맞는 얘기라고 생각하는가? 얼토당토 않은 비약에서 살벌한 속내가 풍겨난다는 게 슬플 따름이다.

 

3.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나는 용서받은 죄인 /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는 오답?


아마 이분들이 가장 강렬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최일도 목사는 이러한 '모범답안'들을 두고 '이게 다 교회에서 세뇌시킨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우선 고려할 점은 집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 집회에 세팅되어 있는 소통방식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소위 은혜받았다는 것은 집회의 소통방식을 통해 소통이 활발하게 되었다는 것에 다름없다. 아울러, 현재 한국교회에서 익숙하게 통용되는 방식의 집회가 반드시 성경의 정신과 일치하는 정답은 아니라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집회방식이 심히 자본주의에 찌들어 있는 싸구려 영성을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최일도 목사의 영성집회(다일영성수련)는 일반적인 부흥성회나 사경회 혹은 기도집회와는 소통방식이 다르다. 별칭을 사용하는 세팅 자체가 그것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이것 자체로부터 선험적으로 비성경적이라고 매도할 수 없다. 적어도 해당집회가 세팅해놓은 소통방식과 그 기제의 맥락에서 소통과정을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최일도 목사는 마치 선승이 화두를 통해 수련생과 소통하는 것과 같은 소통과정을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듭 환기해 두거니와, 이를 '혼합주의'라고 성급하게 단정하고 매도하기 전에, 소통과정이 가리키는 바를 따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소통과정을 통해 최일도 목사가 의도했던 바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통하고 있는 용서받은 죄인이나 하나님의 자녀와 같은 표현들이 실은 일종의 종교적 가면일 수 있다. 내가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명목상으로는 굳게 믿고 있고 심지어 견고하게 내면화하기까지 하더라도 과연 실질적으로도 그런가? 아마 나는 결단코 실질에 있어서 정말 그렇고 추호의 거짓도 있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격렬한 영적 순례를 거쳐 칭의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한데 비해, 찌르면 툭하고 나오는 정식화된 후세의 문답은 일종의 자동화된 신(deus ex machina)과도 같아서 종교적 가면으로 오용되는 기제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회에 그런 종교적 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내가 용서받은 죄인 혹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답변이 세뇌에 따른 거짓답변일 가능성도 높다. 최일도 목사는 이런 밋밋하고 평면적인 기술방식에 의한 문제제기 대신 나름의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한 모범답안'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기 전에, 그걸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것을 세뇌라고 하는 데 반발하기 전에, 이 점을 돌아보는 게 이 집회에서 세팅된 소통과정에서 당연한 순서가 아닐까?

 

4. 혼합주의?

 

그렇다면 혼합주의에 대한 의혹은 어떤가?

 

- 우선, 최일도 목사의 집회에서 동양음악이 명상 혹은 묵상을 위해 사용되었던 것 같다. 이걸 두고 초혼음악 운운하는 것은 동양음악에 대한 모독이기도 할 뿐 아니라 중대한 거짓증언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왜냐하면, 그 음악이 정확하게 초혼을 위한 음악인지 확인해 보고 하는 의혹제기인가? 아니면 WCC에서 정현경이 초혼제를 지냈다는 얘기를 WCC에 가입한 통합교단 소속으로서 영성훈련집회를 한다는 목회자에 끌어들여 빨간 색깔을 덧칠한 것인가? 동양음악을 경건한 시간에 쓰면 안 된다는 신학적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새벽기도 때 교회 음향시설에서 흔히 흘러나오는 세미클래식풍의 잔잔한 음악이거나 CCM이나 찬송가가 아니면 과연 혼합주의인가? 집회참가자가 동양음악을 듣고 익숙치 않아서 은혜가 안 되었다면 그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걸 두고 혼합주의 운운하며 이단시비를 건다면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 그렇다면 불교의 선문답이나 가톨릭의 영성수련에서 형식이나 내용을 따오는 것은 어떤가? 명백한 혼합주의가 아닐까? 오히려 나는 되묻고 싶다. 초대교회는 헬라사회에 유행하는 로고스론을 비롯한 수많은 종교적 개념을 수용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를 수용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저주받은 이교도' 이슬람의 아베로이스주의적 주석을 통해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을 수용했다. 어떤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떠받들고 있는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조차 종교개혁자들의 뜻에 거슬리게도 다시 이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을 수용했다. 이런 게 바로 혼합주의가 아닐까? 그보다도 성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사도 요한은 로고스론을 원용했고, 사도 바울조차 선교와 설교에서 이방시인과 철학자를 인용했다. 이런 게 바로 혼합주의가 아닐까?

 

5. 종교다원주의?

 

최일도 목사에 대한 의혹제기 글들은 위에 열거한 것과 같은 거슬리는 부분을 토로하다가 별안간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혐의로 비약한다. 나아가, 최일도 목사 자신이 여기에 대한 질문에 별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침묵으로부터 또 뭔가를 추론하면서 종교다원주의냐 참 신앙이냐를 선택해야 할 시점을 운운한다.

 

하지만 말은 바로 하자. 결국 영성수련은 곧 혼합주의요 종교다원주의라는 자신들의 기존 선입주견이 튀어나온 것 아닌가?

 

이들이 최일도 목사에게 혼합주의에 덧붙여 종교다원주의의 혐의까지 씌우게 된 까닭은 결국 성경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든지, 죄와 회개,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한 종교적 상징과 언어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식의 극히 표피적인 문제이다.

 

표피적으로 하나님, 예수님, 성경을 들먹이고 과시하는게 그토록 문제라면 교회 내에서 명시적으로 하나님, 예수님, 보혈과 같은 말을 들먹이지 않으면서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내적 치유 강좌와 심리학적 기법을 수용한 상담도 모조리 이단으로 '찍어내 버려야' 하지 않을까?(*1)(*2)

 

사실 이런 혐의제기방식은 꽤 낯이 익다. 예전에도 문익환 목사에 대해서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보혈이니 십자가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목사도 아니라는 식의 이단시비가 있었다. 사실은 민주화운동을 비겁하게 외면하고 로마서13장 운운하면서 독재정권과 결탁한 그 사람들이 무언가에 눈이 멀어 있었던 사람들이 아닌가? 남들이 눈 멀어 있다고 힐난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무언가에 눈이 멀어 있다보니 표피적인 문제제기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먼저 돌이켜 보는 게 좋을 듯 싶다.(*3)

 

끝으로 한 가지, 미주 크리스찬투데이는 홈페이지를 둘러 보면 상당한 보수성향을 대변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미주 다일공동체 대표의 반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 글은 눈에 띄지 않고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은 최일도 목사에 대해 일정한 방향의 메시지를 표시함으로써 이단시비로 흠집을 내겠다는 속내가 풍겨 나오는 대목이어서 주목해 두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최일도 목사 개인에 대한 시비를 넘어, 관상기도가 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라는 이유로 보수교단들에서 이단으로 단죄되도록 하기 위해 군불때우기 하시고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당연히 품게 된다.

 

부디 그렇지 않으시기를 빈다. 그건 우리 한국교회는 답이 없는 근본주의자들의 집합체요 하고 세계교회 앞에 떠들고 다니는 '제얼굴에 침 뱉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적 분별력 운운하면서 성경과 종교에 대한 표피적인 선입견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분들, 먼저 제 눈의 들보부터 보셨으면 좋겠는데 절대 안 들으실테니 참 답답하다. 들을 귀 있는 분은 제발 좀 들으시라.



[덧붙임]

(*1) 최일도 목사가 '맑은 물 붓기'라는 화두를 통해 마음 속 원망들을 털어버리는 훈련을 하도록 했으니 십자가의 보혈이 언급되지 않은 혼합주의이고 종교다원주의라는 식의 비난도 황당하긴 매한가지다. 이런 식의 꼬투리잡기라면 무엇을 건들 문제가 없겠는가? 형제에게 원망들을만한 일이 있을 때 예물을 놓아두고 형제와 먼저 화해한 다음 예배드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당시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주의 보혈로', 혹은 '예수의 이름으로' 화해했을까? 그런 교리의 정당화가 아니라 주의 말씀을 듣고 형제와 화해한 사람이 주의 뜻을 따른 사람이 아닌가? 원망과 분노를 털고 형제와 화해하는데 '주의 보혈과 십자가'를 들먹이지 않으면 혼합주의요 종교다원주의인가? '주의 보혈과 십자가'를 들먹이면서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행태야말로 오히려 비복음적, 비성경적인, 따라서 악마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721)

(*2) 게다가 인터넷에 올라온 이 동영상을 보면 최일도 목사가 이 집회()에서 이단시비자들의 주장처럼 과연 예수님, 성령님을 언급하지 않았는지 그것부터 우선 짚어 보아야 할 것 같다.

(*3) 문제의 글을 올리신 사모는 '최일도 목사가 벗님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에 대해서도 노골적인 매도를 하셨다. 최일도 목사에 대한 그의 공개적인 매도의 요지는 율법과 은혜의 이분법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글을 쓰고자 한다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최소한 신학적 소양마저 없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글이다. 율법과 은혜의 이분법은 마르틴 루터가 재발견한 바울신학의 핵심에 속하기 때문이다. 루터나 바울이 비기독교적이라고 참소하는 것과 다름없이 터무니없다.


Posted by 다일공동체

 

2013년 2월과 3월 다일영성수련 일정안내입니다.

영성 벗님들의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2월 다일영성수련 일정

  2013년 2월 18일(월)~22일(금), 1단계 아름다운 세상찾기 142기(경기도 가평에서)

3월 다일영성수련 일정

 2013년 3월 18일(월)~22일(금), 1단계 아름다운 세상찾기 143기(경기도 가평에서)

 2013년 3월 8일(금)~10일(주일), 침묵묵상수련(경기도 가평에서)

영성수련 문의 : 031-585-2004

 

Posted by 다일공동체

 

2012년 11월, 12월 영성수련 일정입니다.

다일영성수련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세요.

또한 지금 설곡산에서 다일영성수련을 위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영성수련 및 자원봉사 문의 : 031)585-2004

Posted by 다일공동체

 

7~9월 영성수련 일정이 나왔습니다.

벗님들의 기도와 사랑이 많이 필요합니다. 기도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다일영성수련이 필요한 지인분들에게 많은 추천 바랍니다.

문의) 031-585-2004 이모세 원장, 최홍 원목

Posted by 다일공동체



멘토링토크 생방송 시간.

따뜻한 조언 한 마디에 목말라 있는
우리 환우분들도 

최일도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멘토님들의
진심어린 말씀 한 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눈과 귀를 집중합니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듯이 말입니다.


Posted by 비회원

 드디어...

설곡산 다일공동체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길이....

기도 14처가 올 여름에 닦인 자유의 길에 마련되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다일DTS 뜨거운 주님의 제자도 훈련생들이 마련한 이 길...

이 길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맛보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저희들은 이 길에서 저희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날마다 기도하겠습니다.

행복하소서!

자유에 길에서...      "오직 하나님 만 생각하라."

침묵 속에서...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요. 자유의 길이요. 소망의 길이요. 부활의 길이요. 기쁨의 길임을...... 




방문 문의전화: 설곡산 다일공동체  031-585-2004
Posted by 비회원

名作을 만드는 인생으로...

몇 백년이 흘러도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고
후세사람들에게 명작이라고 명명되는 것은,
물감이나 재료를 많이 썼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부피나 크기가 있어서만도 아닐 것입니다.
빨리 그렸다거나 오래 걸려서도 아닐 것이고
그 작품에 쏟아부은 작가의 열정과 고뇌와
고통의 산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전에 쉽게 만나보지 못했던
작가만의 상상력과 창의력일 수도 있는데
명작은 벌써 대하는 순간부터
가슴에 무엇인가 꽂히는 감동이 일어납니다.
그만큼 작가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했고
혼신의 힘을 다 쏟았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명작은 언제 보아도 힘이 있고
누가보더라도 그 작품성을 인정하며
후손 대대로 전해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부디, 서두르지 마시고
큰 것만을 원하지도 마시고
재료나 사람들을 많이 모으려고 애쓰지 맙시다

맡겨진 일이 작든 크든 
남이 알아주든 말든
늘 불꽃같은 정열로 그려갈 수 있다면
태워도 태워도 재가되지 않는 참사랑으로
꾸준히 온맘다해 정진 할 수만 있다면
그 인생이야 말로 하나님의 걸작품이요
명작 중에 명작으로
오래오래 기억될테니까요...
아하!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名作을 만드는 인생으로...

Posted by 비회원
 

다일공동체

작은천국 가족들이 쓰는 성경필사 노트들


다일공동체

작은천국의 매일 성령임재시간(찬양시간)



  ‘다일작은천국’은 천국이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면 얼마든지 천국같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으로 명명된 것입니다. 실제로 다일작은천국 일상 생활 중에 하나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아, 여기가 천국이야, 천국!” 하며 감탄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 함께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은 있고 성격차이로 인해

친가족들간에도 불화와 갈등이 있으련만, 특히 가족과 등진 채 혼자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살았던 이 분들이야말로 상처로

찢기워진 마음에 몸은 중병까지 얻은 상황이니,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서 공동생활 한다는 게

얼마나 더욱 어렵겠어요?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함께 깔깔거리며 친가족처럼 살뜰한 정을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투닥투닥 다툼이 일어나고 서로 삐지기도 합니다.

이 분들의 그런 모습을 볼 적이면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웅다웅 하면서라도 함께 살아간다는 게

오히려 마음 한 켠 고맙게 느껴집니다. 함께 더불어 산다는, 생명이 살아있다는, 바로 그런 반증 아닐까요? 

이따끔씩 그렇게 한 바탕 작은 소란을 피우다가도 매일 드리는 성령임재시간(찬양시간)을 통하여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 중 몇몇 분들은, 요즘, 성경필사 열기가 가득합니다. 처음엔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혹은

시간 때우기용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하루 하루 성경필사를 하면서 사막에서 꽃이 피듯, 믿음도 생기고 그 연약한 믿음에서

싹도 나고 이파리도 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직은 겨자씨만한 여린 믿음들이지만, 이들이 성경필사를 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갈 적마다 우리 주님께서

직접 양분을 뿌려주셔서 믿음의 여린 싹이 잘 성장하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혹 누가 알아요? 

아직은 불어오는 바람에 이러저리 흩날리며 나부끼지만, 고 겨자씨만한 믿음이 자라나서 맛난 열매를 주렁주렁 달리게 할

큰 과실나무가 될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 후원천사님들께서도 함께 기도해주실 거죠?  

다음은 다일작은천국 가족 중에 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서00님이 쓴 편지 일부랍니다.

요즘은 깊은 가을이네요.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하고 이제 추위까지 살살 느껴집니다. 곧 겨울도 오겠지요? 

제가 이 곳 다일작은천국에 오기 전엔 인사도 할 줄 모르고 웃을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두려움으로 꽁꽁 얼어있던 제 마음이 열리고, 절로 웃음이 나오고 먼저 인사하게 되고, 여러 선생님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담배도

끊고. . . .  이제야 사람답게 되어가는 것 같아요.

요즘은 성경을 쓰면서 알게 모르게 얻어지는 깨달음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며, 남의 것을 탐내지 아니하며,

악행을 하지 아니하며, 선행을 행하면 그 선행을 받되, 악행을 하게 되면 죄악을 받게 됨을 성경에서 배우며 깨닫게 됩니다.
 
  저에게 성경쓰기는 이제 시간 때우기가 아니며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라 제가 이제껏 모르고 살아왔던 배움과

깨달음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루하루 변해가기를 서두르지 아니하시며

사랑의 기도로 기다려주심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전 한번씩 6층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가끔은 참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위해 달리는 걸까?” 이런 생각도 잠시 해보구요.

그런 것 하나 하나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 곳에 올 수 없었다면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일작은천국, 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 다일작은천국 입소자들을 위하여 사랑어린 후원금과 물품을 보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모든 후원천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일작은천국에서는 가장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섬기기 위하여 만사회원” “자원봉사자” “후원물품을 기다립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함께 나누고, 함께 섬기고,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이 땅에 작은 천국을 가꿔주세요. 바로 당신이 작은천국을 천국되게 하는, 작은 이들을 위한 천사가 되실 수 있습니다.

만사회원 : 한달 1만원씩 1년 동안 후원함으로써 가장 가난하고 병든 분들을 위해

얼굴없는 천사가 되어주실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자 : 누구든지 관심과 사랑만 있다면 가장 가난하고 병든 분들을 위하여 식사

수발, 목욕, 이미용, 세탁, 주방, 청소 등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의

프로그램 운영, 호스피스 케어, 장례봉사 등 보다 전문적인 봉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필요한 후원물품 : 겨울내의, 팬티, 양말, 수건, 치약, 샴푸, 휴지 등 생필품류

문 의 : 02-2213-8004

 

Posted by 다일공동체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회]
한국기독교 성육신의 영성과 사회봉사

- 2010년도 사회복지 엑스포 국제심포지엄 발제 논문
  


                                                           이강학 박사 (Graduate Theological Union)

기독교영성 박사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 - 실천신학/영성





<아래 글은 2010년 사회복지 엑스포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이강학 박사의 논문 '한국기독교 성육신의 영성과 사회봉사'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전문을 보기 원하시면 첨부된 파일을 다운받으시기 바랍니다.>

 

1. 기독교 영성과 사회봉사

사회봉사란 무엇인가? 필자는 사회사업학자인 데럴 와킨스가 사회봉사에 대해 내린 정의를 사용하려고 한다. 와킨스에 의하면 사회봉사 (social ministry) 영적,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관계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영성은 사회봉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기독교 영성과 사회봉사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위에서 살펴본 다섯 가지 범주에 의지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보자.

 

1)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회봉사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맛보게 되고,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서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보호자로 계시되고 있다 (시편 68:5). “고아와 과부는 구약 성경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대표하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27이 성부 하나님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봉사를 관련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또한, 성자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읽은 이사야서의 본문 역시 사회봉사를 담고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4:18-19; 61:1-2). 이 구절은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 들을 위한 섬김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시할 뿐만 아니라, 그 사역들이 성령이 임함으로써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 관심의 대상이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이 그들에서 우선적으로 나타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한 기독교인들의 삶이 사회봉사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위의 사실에 기초하여 역으로 살펴보면, 사회봉사는 하나님을 정말 만났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를 분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 개신교의 대표적인 영성가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앙과 정서>(Religious Affections)라는 책에서 성령의 역사로 경험한 은혜로운 정서의 열두 가지 표지 중 마지막 표지로서 실천”(practice)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실천은 사회봉사를 포함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앙고백자가 그 행실을 통해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짐으로써 그 진실성을 드러내고, 참화를 만난 사람들의 짐을 대신 지려고 하며 그들을 위해 자기의 물질을 쓰고, 다른 사람의 영혼과 몸의 유익을 위해 자기의 세상 이익을 많이 손해 보려고 한다면, 그저 말로만 자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보다도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믿을 만한 더욱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영성운동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보아야하는 것은 그 영성운동의 설립자가 어떤 하나님을 경험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경험한 하나님이 그 자신을 비롯해서 그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의 실천의 성격, 다시 말해서, 사회봉사의 성격을 특징 짓기 때문이다.

 

2)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자기초월 즉, 영적 성장의 과정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영성에서 사회봉사는 그 자체가 영성생활의 목표는 아니다. 사회봉사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영성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봉사는 성도가 하나님을 향해가는 여정의 중요한 한 과정으로서 제시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사에 등장한 영성운동들은 각기 다른 비율로 사회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영성운동은 사회봉사에 전적으로 투신하지만, 다른 영성운동은 얼른 보면 사회봉사에는 전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성인 마더 데레사를 따르는 수녀회의 수녀들은 하루 종일 봉사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그러나, <위대한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알프스 산에 있는 한 카르투지오 수도회 수사들은 일평생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전자는 사회봉사의 대표적인 영성운동이고 후자는 사회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영성운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볼 때, 전자의 수녀들이 사회봉사에 참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해 영적으로 성장하기 원하는 갈망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반대로, 후자의 수사들의 침묵과 고독이라는 활동 역시 미시적인 차원에서 봉사에 깊이 간여하고 있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섬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시적인 차원에서 카르투지오회 수사들은 매일 맡겨진 임무에 순종해서 노동을 한다. 그 노동은 공동체를 섬기는 봉사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그들은 침묵과 고독을 지키고 경험함으로써 세상에 영성의 맑은 샘물을 제공하는 영적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사회봉사에 대한 정의에서, 사회봉사가 영적문제를 도와주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에 착안한다면, 카르투지오회 수사들도 넓은 의미로 사회봉사에 참여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영성운동을 살펴볼 때, 기존의 사회봉사라는 말이 담고 있는 범주에 머물지 말고, 그 영성운동이 자기초월의 여정으로서 어떤 차원의 사회봉사를 실천하고 있는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3)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삶을 통합시키는 프로젝트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돕는 영성훈련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영성운동을 살펴볼 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영성운동의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사회봉사라는 영성훈련이 설립자를 비롯해서 구성원들의 삶을 통합시키는데, 삶의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4)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의식적 참여에 해당한다.

의식적 참여의 관점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영성운동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사회봉사에 의식적으로 자발적인 의지를 갖고 참여하고 있는가? 구성원들이 사회봉사에 있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일깨워주고 있는가?

 

5)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봉사는 하나님 경험의 현장을 제공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사회봉사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역으로 사회봉사의 현장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성운동 구성원들이 사회봉사를 하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사회봉사를 우선적으로 실천하는 영성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다: 그 영성운동의 설립자와 구성원들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그들은 영적성장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들은 어떤 영성훈련에 집중하는가? 그들은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는가? 마지막으로 그들은 사회봉사를 통해 어떤 하나님 경험을 하게 되는가?

 

2. 한국기독교의 영성과 사회봉사

 

한국 교회에도 수많은 영성 운동들이 나타났었다. 그리고 많은 영성 운동들은 사회봉사를 우선순위에 놓고 실천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그 중에서도 개신교의 대표적인 두 가지 운동, 즉 귀일원(동광원) 운동과 다일공동체 운동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 영성운동들이 어떻게 사회봉사에 그토록 혼신의 힘을 기울이게 되었는지 그 영성적 배경을 살펴보려고 한다.

 


다일공동체 운동과 사회 봉사

2010년 창립 22주년을 맞은 다일공동체는 1988년 말에 최일도 목사가 서울 청량리에서 노숙인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면서 시작되었다. 1996년 밥퍼 나눔운동본부가 출범했고, 1998년 사회복지법인 다일복지재단이 창립되었으며, 1999년 가평에서 다일 영성생활수련원이 시작되었다. 2002년에는 무료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을 준공했고 2004년 자연치유센터를 가평에 열었다. 1999년 중국다일공동체에서 어린이집을 시작한 이후로, 2002년 베트남, 미국, 2004년 캄보디아, 2005년 필리핀, 2007년 네팔 등에 차례로 공동체가 세워지고 밥퍼 사역을 포함하여 사회봉사 활동이 해외로 확산되었다. 장신대 임성빈 교수는 다일공동체의 문화사적 의미라는 글에서 다일공동체는 한국 개신교가 자랑할 수 있는 도시빈민을 위한 사역 기구가 되었다라고 다일공동체 20주년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다일공동체가 사회봉사라는 분야에 있어서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기구로 자리매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다일공동체가 그렇게 많은 사회봉사를 국내에서 해외에서 감당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영성운동으로서의 다일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 기독교 영성운동의 관점에서 다일공동체를 살펴보려고 한다.

 

(1) 다일공동체 운동의 출발과 목표: 나사렛 예수의 영성

다일공동체의 영성을 최일도 목사는 한 마디로 나사렛 예수의 영성이라고 요약한다. 그는 이 분류가 리처드 포스터의 영성 운동 분류 가운데 성육신의 전통에 해당한다고 규정한다. 성육신의 영성 전통이란 기독교 영성의 근간이 되는 예수, 그것도 육화하여 이스라엘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며, 시골뜨기들과 더불어 시장바닥을 뒹굴며 하나님의 나라를 말로 행동으로 선포하셨던 예수에 보다 더 주목하는 영성이다. 따라서, 최일도 목사에 의하면, 영성생활이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주 예수를 인생의 길잡이로 삼아 살아가는 삶이고, 나사렛 예수의 영성이란 예수의 정신, 예수의 사역, 예수공동체에 주목하는 영성을 말한다. 최일도 목사는 이런 영성의 모범으로 샤를르 드 푸코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를 들고 있다. 특히, 이 두 영성가의 기도문들은 다일공동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도문들이 되었다.

최일도 목사가 나사렛 예수의 영성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된 계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자서전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두 번 언급한다. 첫 번째는 하루 종일 청량리 역전에 쓰러져 누워있던 할아버지를 보는 순간, 그의 마음에 들려온 음성이다: “아니, 아직 먹지 못했다. 일도야, 너는 언제까지 나를 이 차가운 길바닥 위에 눕혀놓을 작정이냐?” 그는 이 음성에 이어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고, 이들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25:40)라는 말씀이 떠올랐고 이 사건이 그에게 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음성을 들은 후로, 최일도 목사가 청량리에서 노숙인들에게 라면과 밥을 나누는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음성은, 중풍에 걸린 목사 사모님을 한 카톨릭 무료 병원에 데려갔다가 거절당한 후에 들은 음성이었다: “일도야, 나의 대책은 바로 너다. 일도야, 너는 어느 때까지 나에게 대책을 묻고 따질 거냐. 나의 대책은 바로 너 자신이다. 일도야, 어느 때까지 너는 나를 차가운 땅바닥에 눕혀 놓을 셈이냐. 어느 때까지...” 최일도 목사는 이 음성은 청량리에서 함경도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그 음성을 다시 생각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술회한다. 이 일 후에 개신교 무료병원인 천사병원을 세우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최일도 목사는 이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의 만남을 나사렛 예수와의 만남으로 믿고 예수님을 섬기듯 그들을 섬기려고 했다. 이처럼 그의 하나님 경험의 특징은 신비적인 기도 속에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 있다.

 

(2) 다일공동체 운동에서 사회봉사와 영성훈련

다일공동체의 사회봉사는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는가?”라는 큰 질문에 대한 한 응답으로 자리하고 있다. 최일도 목사는 다일공동체를 소개하는 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다일공동체의 주요관심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일하면 도시빈민을 섬기는 현장으로 생각합니다. 다일하면 밥 퍼 주는 곳으로만 알고 있지요.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서 밥을 퍼주겠다는 것이 다일의 밥퍼 정신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된 관심 작업이긴 하지만 다일이 지향하는바 전체는 아닙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일이 우선이 아니고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10년 동안 한 사람의 헌신된 형제를 길러내는 것이 궁극적인 관심이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공동체를 살기로 서약한 가족들이 매일매일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는가?”하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모이면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사렛 예수의 영성생활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며 살기로 다짐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은 하다가 지치면 그만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약속으로 정한 날엔 18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 퍼왔습니다. 하지만 일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밥을 꼭 다일이 퍼야 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면서 공동체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다일이 해내야 할 사명입니다. 다일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 시대의 과제로 믿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일공동체는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가장 지향하는 영성운동인 것이다. 도시빈민을 위한 봉사 사역을 포함해서 다른 모든 활동들은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활동으로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일공동체 영성운동에 담긴 몇 가지 특징을 기독교영성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해볼 수 있다. 첫째, 다일공동체는 영성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기도와 실천 또는 관상과 실천 (contemplation and action)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 균형 잡힌 영성은 기독교영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모든 존경받고 신뢰받는 영성가들은 기도와 실천에 균형이 잡혀있다는 특징이 있다. 혹자는 사막의 영성가들이나 봉쇄수도원의 영성가들이 세상을 도외시하지 않았는가하고 의문을 던지지만, 그들 역시 기도를 통해 교회의 일치와 세상의 정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알 수 없다. 끌레르보의 버나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깊이 있는 신비기도 체험의 소유자였지만, 부와 권력으로 타락한 수도원을 개혁하고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실천에도 큰 역할을 했다.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는 탁발수도회의 창시자로서 세상 속을 다니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지만, “태양의 노래와 같은 기도문에 담겨있는 그의 기도의 깊이는 어느 사막 영성가, 봉쇄 수도원의 영성가 못지 않다. 다일공동체는 영성생활수련원을 통해 기독교영성사의 기도생활 즉 관상생활의 맥을 잇고 있는 한편, 밥퍼식당과 천사병원 및 중국,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 있는 공동체의 사역을 통해 기독교영성사의 실천 즉 구제긍휼사역의 맥을 잇고 있다.

둘째, 다일공동체 영성운동은 기도와 실천의 균형을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와 실천 그 각각에 있어서도 기독교 영성사에 기반한 바른 기도의 길, 바른 실천의 길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대다수 한국개신교인에게 기도는 무엇인가? 그 형식에 있어서는 소리를 내서 하는 구송기도로서 집단적 통성기도와 대화식기도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주시옵소서!”를 강조하는 청원기도가 주를 이루고 감사기도와 찬양기도가 보태지고 있다. 기도의 도입으로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큐티 (Quiet Time) 또는 찬송하기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영성의 전통에는 훨씬 깊이 있고 다양한 기도에 대한 이해와 방법들이 있다. 우선, 내 생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청원기도는 기도의 주목적이 결코 아니다. 기도의 주목적은 하나님과의 일치에 있다.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고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다. 그리고, 기도에 있어서 소리는 극히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기도의 대부분은 침묵이다. 말을 하기 보다는 듣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기도의 시작은 성경묵상, 기도문암송, 성화관상, 자연묵상 등에서 시작한다. 기도 시간에는 성경묵상을 머리로 연구하고 따지기 보다는 가슴으로 다가오는 말씀을 찾으려고 애쓴다. 시편이나 영성가들의 기도문은 좋은 기도의 안내자가 된다. 성화 (icon)를 보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나 느낌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하기도 한다. 나무나 풀, 시냇물소리가 기도의 좋은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기도의 수단들은 하나님과 머리로 만나는데서 그치지 않고, 가슴으로 만나도록 이끄는 수단일 뿐이다. 이 기도의 수단들을 넓은 의미로 영성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일영성생활수련원에서는 기독교영성사에 바탕을 둔 침묵기도, 예수호칭기도 (Jesus Prayer), 거룩한 성경 읽기 (Lectio Divina), 자연묵상 등을 소개함으로써 한국개신교인들의 기도에 깊이와 넓이를 더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

다일의 영성은 바른 기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할 뿐만 아니라, 바른 실천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다일공동체가 처음 출발하던 80년대 시절만 해도, 복음주의적 기독교인은 실천이라고 하면 개인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도와 선교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이자 한국 복음주의 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친 빌하이벨스 목사의 고백을 필두로, 교회의 양적 성장만을 목표로 한 복음전도와 선교는 영성의 천박성과 함께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편 진보적 기독교인은 민중신학적 이념에 기반한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만이 진정한 실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는 실천은 그 명분이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역시 그 한계를 보이고 말았다. 다일공동체는 말로만 전하는 복음전도와 선교가 아니라, 청량리 윤락가 한복판에서 살면서 노숙인, 독거노인들에게 밥을 퍼주고 언니들을 감동시키며 말이 아닌 몸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다. 또 다일공동체는 운동권의 머리가 아니라 생활권의 가슴으로 사회의 밑바닥 생활에서부터 나오는 진정한 부르짖음을 대변했다. 다일공동체의 바른 실천에 대한 이런 끊임없는 질문과 응답이 오늘 복음주의적 기독교인과 진보적 기독교인의 공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셋째, 다일공동체 영성운동은 한국적 영성과 서양 기독교 영성을 적절하게 통합하고 있다. 다일공동체는 기독교 영성사에 있는 영성훈련의 방법들에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현대 기독교 공동체들에도 관심을 갖고 교류를 하고 있다. 떼제 공동체와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교회의 본질이 공동체성에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공동체성의 회복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다일의 영성은 한국적 영성이다. 영성이 자기 중심성과 이기적 욕심을 초월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다룬다고 할 때, 그 경험은 다분히 기도하는 사람의 문화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이 은혜 받았다고 말하는 경험과 서양 기독교인이 영적 감동을 받는 경험은 상당히 다르다. 문화심리학자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서양인들의 자아 (self) 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사람들의 자아가 다르다는 것을 든다. 서양인의 자아는 독립적 (independent) 이고 개인적 (individualistic) 인 반면, 한국인의 자아는 관계적 (relational) 이고, 의존적 (interdependent) 이고, 집단적 (collective) 이다. 한국인은 관계로 매이고 관계로 푼다. 관계에서 오는 한국인의 상처는 서양인에 비해 무척 심각하다. “화병은 한국인의 문화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병이라고 세계의학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다일영성생활수련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에서 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 것도 를 생성하게 되는 관계가 한국인에게 얼마나 심각한가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의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 받는다면 한국인의 인간관계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아울러, 인간관계와 직결되어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더욱 원활한 소통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일 영성의 한국적 특성은 이라는 낱말에 잘 담겨 있다. 다일의 영성은 의 영성이 아니라, “의 영성, “진지의 영성이다. 청량리의 밥퍼무료식당에서 매일같이 최상의 쌀로 지어져서 나누어지는 에 다일의 영성이 담겨 있다. 또한, 다일공동체의 식사시간마다 드려지는 진지기도에 다일의 영성이 담겨 있다. 아울러, 다일 영성생활수련때 행해지는 진지 알아차리기에 다일 영성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진지 상에 오른 알곡들, 채소들과 고기들의 색깔, 크기, 모양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살겠습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결심하는 모든 경험이 지극히 친근한 한국적인 경험인 것이다.

넷째, 다일공동체의 영성생활수련은 수련자들을 자원봉사자로 양성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일공동체 영성생활수련은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 2단계 작은 예수 살아가기”, 3단계 하나님과 동행하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대중을 향하여 열린 영성훈련의 장이다. 또한, 다일DTS (Discipleship Training School)와 다일STS (Servant Leadership Training School)6개월과 1년의 긴 기간동안 노동을 기도로, 기도를 노동으로사는 법을 훈련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영성훈련들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다일공동체의 사회봉사활동을 후원할 뿐만 아니라 자원하여 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다일공동체의 영성훈련이 거기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가족뿐만 아니라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사렛 예수의 영성생활을 흘러넘치게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마지막으로, 다일의 영성은 그 이름 그대로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영성이다. 다름이 곧 틀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일공동체는 내 기준과 고정관념으로 나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전에, 다름에서 오는 개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 다름을 아름답게 조화시킬 수 있는 일치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다일의 영성이 지향하는 바이다. 특히, 화해와 일치의 추구는 갈래갈래 찢기고 분열된 현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볼 때 참 중요한 한국적 영성훈련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첨부- 다일공동체 진지기도문>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땀이 담겨 있습니다.

이 땅에 밥으로 오셔서

우리의 밥이 되어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밥상을 베푸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맑은 마음, 밝은 얼굴, 바른 믿음, 바른 삶으로

이웃을 살리는 삶이기를 다짐하며

감사히 진지를 들겠습니다.

 




Abstract 

Korean Christian Spirituality and Social Service 

Lee, KangHack, Ph.D. (Graduate Theological Union) 

This paper studies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Christian spirituality and social service. First, it deals with the definition of Christian spirituality. Using the definition of spirituality by Sandra Schneiders, this paper explores various aspects of Christian spirituality. Second, based on the definition, it develops how Christian spirituality relates to social service. Finally, this paper explores two representative Christian spiritual movements, Guiilwon and Dail Community, focusing on its beginning, its perspective on social service, and spiritual practices. In sum, for both movements, the motivations are to love and follow Jesus Christ and all their activities including social service have been naturally flowed from those motivations. 

Key Words: Korean Christian Spirituality, Social Service, Incarnational Spirituality, Guiilwon, Lee Hyun-Pil, Dail Community, Choi Il-Do

 

 

 

Posted by 비회원


다일공동체는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고 또한 일치 안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다일의 정신에 기초해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일영성생활 수련을 폄하하는 몇몇 사람의 글에 대하여 일체의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다를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일공동체와 최일도 목사님을 이단이라고 하는 부분은 도무지 간과할수가 없을만큼 도가 넘습니다. 지금까지 다일공동체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일에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일공동체는 올해로 창립 23주년을 맞았고, 다일영성수련은 올해로 12년 째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참가 인원만 1만 3천여명을 넘어섰고 파리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있었던 수련회에 연인원 250명, 미국에서 가졌던 영성수련회에 연인원 500여명, 베트남 영성수련에 20명, 청소년 영성수련회에 300여명이 참가한 바 있습니다. 다일영성수련은 12년에 걸쳐 1만 5천여명이 검증했고 각 신학대학 교수님들과 영성신학 박사들이 검증한 프로그램입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남녀 노소, 직업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참가자들이 함께 수련 받는 과정에서 놀라운 은혜와 아름다운 시너지를 체험해 오고 있습니다. 그 참가자들 중에 개신교의 다양한 교파의 수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장신대 성종현 교수님, GTU 영성신학 박사 이강학 목사님, Ecumenical D.min(영성전공) 전창근 목사님외 다수)이 포함되어 있었고 교회의 장로(코스타 강사로 유명한 박수웅 장로, 한국의 법무법인 ‘광장’ 대표 등), 집사, 사모, 선교사 등 여러 직분의 성도들도 함께 참가해 왔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수련이 끝나고 자기 교회로 돌아가 교회를 잘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다일영성생활 수련을 통해 수없이 믿음을 잃었던 사람들이 다시 믿음을 찾아 교회로 돌아가고,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역사가 일어났기에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을 마치고 삶의 자리로 돌아간 사람들이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는 화해와 일치, 나눔과 섬김의 삶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과 기쁨과 자비와 양선과 같은 성령의 열매가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을 참여하고 난 후 경험하는 변화된 삶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간증 자료가 있는데 이는 기독교 영성수련으로서의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대한 중요한 식별의 표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7:17~18) 어찌 바른 믿음과 바른 신학이 아니면 이런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다일영성 생활수련 1단계(아름다운 세상찾기) 프로그램은 믿는자와 믿지 않은자, 타종교 사람들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열린 수련입니다. 하지만 2단계(작은예수 살아가기), 3단계(하나님과 동행하기) 수련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기독교 신자만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1단계 다일영성수련을 진행할때는 믿지 않은 사람들의 삶의 자리를 충분히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교리와 지식으로 만이 아니라 내가 가슴으로 깨달아서 느끼며 고백하는데 까지 이르는 어려운 과정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질문은 과거에 매어 살거나 미래만 바라보고 사는 삶에서 폴 틸리히가 말하는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을 찾아 함께 사는 삶으로 인도하는 질문입니다. 또한 ‘누구의 것입니까’ 라는 질문은 결국 이 세상이 모든 물질과 재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수련과정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깨달아 가는 과정, 그래서 다일의 수련을 일명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화가 날 일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깨닫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이 하나님이 보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고‘(창 1:31) 기록된 그 원래의 세상을 보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미워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탓하기도 합니다. 또 어느때는 좋아하고, 어느 때는 미워하고 사랑과 증오에 매여 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탓,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화, 분노에
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 화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본인이 깨닫고, 그 화가 어떤 느낌을 만들었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차림으로 되도록 화날 일이 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잠4:23) 고 말씀하셨는데, 화와 분노가 마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 화를 해결하는 수련을 고통스럽게까지 해 나가는 것입니다.

화의 생성을 깨닫게 되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의 사실(Fact)일 뿐인데 그 일을 보고 내가 기뻐하면 기쁜 일이 될 수 있고, 내가 슬퍼하면 슬픈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날 때 화나는 그 일은 일로써 바라보고 이런저런 내 생각을 더하지 않으면 화가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항상 기쁜 일을 만나라.’ 거나 ‘항상 감사한 일을 찾아라’가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일영성수련에서 주로 사용하는 음악은 찬송가와 떼제 음악입니다.
그밖에는 때에 따라 국악을 한 두곡 사용할 때도 있는데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1단계 영성수련은 신자, 비신자가 함께 받은 수련이기 때문에 비신자들의 공감대를 찾아서 결국에는 하나님께 인도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만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불신자와 타종교인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없기에 저희는 1단계는 오픈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파리에 있는 파리선한장로교회(담임 : 성원용 목사, 장신대학교 출신) 전교인 다일영성수련 참가를 목표로 5번의 1단계, 1번의 2단계 수련을 했는데 영성수련 후 교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파리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었고 교회가 아주 화평하게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장로교신학대학 출신인 대전동안교회(김경호 목사님 시무)는 제직과 장로 임직자들은 다일영성수련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일영성수련 받은 장로님들로 구성된 당회가 화평하게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구에 있는 하늘담은교회(신정환 목사님 시무) 담임목사님과 어려운 관계에 있던 한 장로님이 다일공동체 영성생활 수련을 받고 돌아와 목사님께 사죄한 후, 너무도 아름답게 교회를 섬겨서, 교인들을 정책적으로 다일영성수련에 보내고 있습니다. 참가자들 회비 50%를 지원하면서…

대구 삼덕교회도 정책으로 교인을 다일수련원에 보내고 있고, 대전에 있는 한남대 교목실 전직원과 많은 교수님들이 참가했고, 대전 혜천대학교회 담임목사님과 교수님들이 차례로 참가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포항에 있는 한동대 사회복지학과 전교수님들이 참가했고, 금년 여름 교수 수련회 때 전교직원의 영성수련을 최일도 목사님께 부탁했었는데 4박 5일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최일도 목사님이 5회에 걸쳐 특별영성강좌를 한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다일영성수련은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축은 치유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 찾기,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원망과 탓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 누리며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찾는 과정입니다.
다른 또 하나의 축은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 이어져 온 전통적인 영성수련들을 단계적으로 수련해 가는 과정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어려운 일들, 덕스럽지 못한 일들 때문에 한국 개신교가 사회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어 그 어느때 보다도 선교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많은 문제들 중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제 생각, 제 느낌을 사실인 양 악의적으로 유포하는 사람들과 사실여부를 알아보지도 않고 떠도는 말을 믿고,
비방과 험담을 확산시키는 일들이 개신교의 분열과 약화를 초래하는 큰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타종교인이나 안믿는 이들이 보기에 서로 물고 뜯고 하는 모습이 볼성 사나워서 저희들끼리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왜 우리까지 싸우는 모임에 끌어들이려 하느냐는 비난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거짓정보를 유포하고 양산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 영광을 가리고 영성수련을 통해 상처와 분노를 씻고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는 사람들과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고 심신의 질고를 이겨내는 이들을 혼란케 하는 일들이 더 이상 없도록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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