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소통(3)"

행복편지 2014. 11. 25. 11:21

14.11.17.

~최일도 목사의 마음 나누기~
"공감과 소통(3)"

한국사회가 소통과 공감이 되질 않고 불통과 반감으로 서로 반목과 갈등과
힘 겨루기를 반복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를 아십니까?

화해와 일치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할 교회까지도 늘 시끄럽고 법정까지 
끌고 가서 서로 싸우는 소리로 인하여서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시끄러워진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는데 개 두 마리가 볼썽사납게도 계속 짖어대기 떄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야말로 정말 소통할 줄 모르고 너무도 독선적이며 배타적이라고 
비난을 받는 이유가 교회안에서 밤낮없이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들이 
있기 때문인데 그 개들 중에서 두 마리만 이름을 밝히면 제 생각에 
공감이 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개 이름은 다름아닌 편견(犬)이요 또 다른 개의 이름은 선입견(犬) 
입니다.

소통과 공감대신에 불통과 반감으로 가득찬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나머지 화해와 일치를 위한 한 마당을 기독교 
교육학회에서 만들어 주신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공감과 소통능력을 증진시켜 화합과 하나됨의 장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기독교와 기독교교육은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함께 고민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정직한 고백부터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연세대 유영권 박사님은 소통의 방해요소로 편견과 선입견 말고도
말과 생각의 문화차이 그리고 흥미의 결여와 어려운 문제를 피하려는
마음 (Hot Buttons)과 불안함과 과거의 상처등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더 있다면 또 무엇이 있을까요?

과학기술의 발달로 컴퓨터 인터넷 SNS 등 소통과 공감을 위한 도구들은 
홍수처럼 넘쳐나고 빠른 속도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 사회는 더욱 삭막해지고 심각한 불통과 반감으로 서로 고통주고
고통받고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들은 왜, 이럴수밖에 밖에 없으며 또 개선책과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얼마전 '그림이 말을 걸어 왔다'는 짧은 글을 보내 드린적이 있습니다.
루오의 판화중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 날에도 향을 묻힌다는 
작품을 보면서  너에게 상처를 주고 여전히 아픔주며 괴롭히고
심지어 찍어버리려고 하는 도끼날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묻혀주는
진정한 소통과 공감을 오늘 또다시 보는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를
보면서도 너무도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한 손은 어머니의 손으로 한 손의 아버지의 손으로 나간 자식을 쓸어
안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포용과 용서와 사랑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허랑방탕하여 세상 즐거움에 모든 것을 다 허비하고 돌아온 아들이지만 
그 아들을 어떤 조건없이 판단도 정죄도 없이 받아주시는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 다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바라보며 가슴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지만 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종교인이라도 성직자라도 눈만 뜨면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 버리고 정죄해 버리고 맙니다.

욕심이나 이기심이나 우월감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만나지 않고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은총을 체험해야 할
존재라는 구속사적인 시각으로 인간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조건이나 인간성의 문제나 사회나 개인의 실수와 잘못에 대하여 지나치게 
정죄만하며 판단하는 접근보다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다 죄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와 은총과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겸손한 
태도를 가질 때만이  편견과 선입견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정과 욕심까지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눈 높이를 같이하고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때에 진정한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지며 화해와
일치의 장으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한 걸음도 안되면 반 걸음만이라도
함께 나아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Posted by 밥퍼 다일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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