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소통(5)"

행복편지 2014. 11. 25. 11:22

 14. 11. 19

 ~최일도 목사의  마음 나누기~

"공감과 소통(5)"

대화의 철학자 마틴 부버 (Martin Buber)는 "공감이란? 
느낌과 더불어 다른 사람의 역동적인 의식 구조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으로 내부로부터 추적해서 자기
자신의 지각으로 그 사람의 감정상태를 이해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공감이란? 헬라어에서 유래한 말로 empathia(라틴어)를 
거쳐 empathy(영어)와 Empathie(독일어)로 전의되었으며 
en(안에) 과 Pathos (열정. 고통)의 합성어로써 내면에서
느끼는 고통이나 열정을 뜻합니다. 공감은 상대방에 대한 
인지적이고 감성적인 감정이입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공감의 뿌리는 이와같이 진정성있는 열정과 고통이 
수반되는 소통을 말합니다. 때문에 공감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우는자와 함께 울수 밖에 없고 형제가
아파할 때 함께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공통의 경험을 통해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차이점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틴 부버는 이를 포용 (inclusion)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부버에게 포용은 한 사람이  행동하고 있다는 실감을 
하나도 잃지 않은 채 동시에 타인의 관점에서 공통의 
사실을 체험하며 사는 태도를 말합니다. 

부버는 포용을 타인의 입장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이해 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포용을 중요한 가치로 
삼을 때 서로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협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버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해를 돕기위해 
그의 탁월한 관계이론에서 세 가지 유형의 소통을 구분해서 
전달합니다.

첫째 유형은 혼자서 떠들어대는 일방적 독백 (monologue) 이고
둘째 유형은 현란한 언어의 수사기법을 동원해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진정성이 결여된 소통인데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자기의 전문 지식만을 자랑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소통양식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소통은 공감이 빠진 대화의 상대를 여전히
피동적인 객체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번째 유형은 다릅니다. 상대방을 인격의 주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참된 
만남을 경험하는 인격적인 소통입니다. 서로의 인격적인 만남과 
대화를 통한 주체와 주체간의 만남의 관계(I-Thou) 가 형성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며 성숙과 성화로 더불어 함께 가는 진정한 
소통이기에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서로 다름에도 시너지를 발생되며 갈등과 대립까지 화해와 
일치로 승화시키는 깊고 높은 공감의 차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통은 반드시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들어주고 공감적 경청의 태도로 한 걸음 더 내려가고 
낮은 곳에 임하면 소리없는 침묵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며 
마주치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진정한 공동체로써 소통하며 공감할 수 가 있습니다.

그날 마침 다일의 해외 분원장님들이 다일 홈 스쿨에 참여하여
훈련받는 기간이라서 전 분원장님들이 학회에 참석했었습니다. 

바로 이분들이야말로 소통과 공감의 달인이라고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많은 말이 필요없는 분들입니다. 하나같이 가난한
제3세계 빈민촌에서 기근과 무지와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웃을 온 몸으로 섬기시는 분들입니다.  

입술로 한몫보는 분들이 아니라 온 몸으로 복음을 전하며 
삶으로 몸소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들이기에 중국과 
베트남같은 사회주의 나라에서도, 캄보디아같은 
불교국가에서도, 힌두교 나라인 네팔에서도, 무슬림이 
더 많이 모여사는 탄자니아 쿤두치에서도 주민들과 
소통과 공감이 잘 될 뿐만 아니라 너무도 귀한 사랑의
열매들을 맺고있습니다.

하나같이 이 분들은 말합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무익한 종입니다! 
단지 모범을 보이신 주님을 따라 육화론적인 
영성생활을 추구 할 따름입니다!!"
 


Posted by 다일공동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