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20

~최일도 목사의 마음 나누기~

“공감과 소통(6)”

코이노니아의 본질을 신학적으로 가장 잘 밝혀준 대표적 인물이 
독일의 본회퍼 (D. Bonhoeffer) 목사입니다. 
그의 저서 ‘신도의 공동생활’ (Gemeines Leben, 1938)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본회퍼에 의하면 기독교는 출발부터가 공동체요 이 공동체는 
인간의 머리와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시고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독교 공동체의 본질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한몸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타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타인들에게 다가옴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영원부터 
선택되었고 시간 속에서 받아들여졌고 영원히 맺어졌다는 것이다.”

본회퍼가 이해하는 공동체의 본질과 이 세 가지 요소들 속에서 
우리는 코이노니아 곧 성도의 교통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재차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항상 열려져 있으며 그들의 필요에 응답해야 한다는 뜻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과 상호작용할 때, 그것은 
단순히 두 사람만의 상호 작용이 아니라 ‘나와 그리스도’,
‘너와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와 그리스도’ 삼자간의 인격적 
상호작용을 뜻합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통해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를 
기독교 공동체의 본질로 파악했고 강조했습니다

본회퍼의 이러한 생각은 교회는 교단과 교파에 의해 
성립되거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거룩한 선물임을 밝힙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공동체를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몸” (고전12:7)이라 
하였고 “하나님의 가족” (엡2:19)이라 불렀습니다.

코이노니아 안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구속적 행위에 
직면케 되고, 그 안에서 실존의 불안한 상황을 새로운 빛(복음)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불안으로부터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신앙공동체는 구속적이며 치유적인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 공동체 안에서 상호간의 교제와 돌봄의 관계, 공감과 소통을 
통하여 내면의 이율배반적인 감정과 상처들이 치유되고, 
재창조됨으로써 가능적 자아에로의 회복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동체야말로 공감→ 소통→ 치유→ 회복 
순으로 이어지는 바람직한 인간 형성과 변형을 가능케 하는 
기독교 교육의 중심 자리(context)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코이노니아의 뿌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서로 사랑해야 할 대상임을 깨달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 사랑의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와 개교회주의와 교단주의를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교회의 공동체성을 상실한 오늘의 교회들로 하여금 말씀을 
들음에서 행함으로 공동체 (코이노니아)를 원활하게 소통하게 
하고 공감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지금부터 여기부터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부터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출발부터 공동체였던 교회를 교회답게하는 목숨을 건 
제 2의 종교개혁의 출발은 오늘의 이 기독교에 대한 불통과 
반감을 소통과 공감으로 이끌어 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3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기독교 교육의 중심 과제요 사명인 소통과 공감을 내게 
맡겨주신 가정과 교회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실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다일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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