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노숙자 출신 ‘밥퍼’ 봉사자 이차술씨


농약을 마셨다. 자살하려고 먹었다. 겨우 12살, 어린 소년에게 거친 세상은 살아갈 용기를 빼앗아 가버렸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깜깜했다. 친구들은 부모의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랄 나이였으나, 그는 차라리 죽음을 택했다. 하지만 목숨은 질겼다. 길가던 어른이 골목길 한 구석에서 흰 거품을 물며 죽어가던 아이를 업고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다. 눈을 떠보니 병상이었다. 더욱 절망했다. 죽지도 못 하다니….

 

아버지는 사람의 목숨을 해쳐 옥살이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생활고를 못이겨 어린 형제를 버리고 달아났다. 철저히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될대로 되라’ 식으로 살았다. 부랑자에 노숙자였다. 주민등록도 30년 전에 말소됐다. 국가나 사회로부터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 불우했던 소년은 지금 흰 수염을 기른 채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죽음으로부터도 버림받고 평생을 노숙자로 살아온 이차술(58·사진)씨는 요즘 새벽마다 동네 쓰레기를 줍고 빗질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감옥 가고 어머니는 가출
12살때 농약 먹고 죽으려다 살아나
세상 등지고 한평생 거리 부랑아로

무료급식 받아온 다일공동체와 인연
최일도 목사 주선으로 쪽방생활 10년
세례 받고 노점상하며 ‘배식’ 봉사도
 
이씨가 사는 곳은 아직도 청소년 출입금지 구역이 있는 청량리역 뒷편. 20대부터 넝마를 줍고, 싸움질을 하며 살아온 동네다. 몸을 팔아 살아가는 여인들이 우굴거렸고, 전국에서 거지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4일 첫번째 인터뷰는 단 3분만에 끝났다. 그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야기 못해요.… 과거가 아파요. 그냥 잊고 살고 싶어요.” 어깨를 들썩이며 돌아서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유달리 험난했던 그의 지난 날은 되새기는 것조차 엄청난 고통인 듯 했다. 나이에 비해 10년은 더 들어보이는 그의 주름진 얼굴에 성한 이가 거의 없다.

 

젊은 시절 함께 거리를 떠돌던 친구들은 대부분 일찍 죽었다. 추운 겨울엔 얼어 죽었고, 감기만 걸려도 저항력이 약해 쉽게 죽었다. 그들은 대부분 게을렀다. 이씨 역시 체질은 약했지만 부지런한 편이어서 병엔 걸리지 않았다. 지붕도 없이 철거하다가 중단한 듯한 폐가에서 한 겨울을 버텨야 했던 시절이었다.

 

비교적 건강했던 그였으나 지난해 10월께 한많은 삶을 마감할 뻔 했다. 뇌의 핏줄이 팽창해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비가 1천만원 필요했다. 그래서 지난 30년동안 말소됐던 주민등록을 되살렸다. 서울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애초 가망이 없다고 예상했으나, 다행히 수술 뒤 아무런 후유증이 없다.

 

그는 10년 전부터 최일도 ‘밥퍼’ 목사가 마련해 준 쪽방에서 살고 있다. 그 이전까지 무려 17년을 노숙자로 살았다. 거리에서 만난 최 목사는 지금껏 27년간 그를 보살펴 준 은인이다.

 

이씨는 집 주변뿐 아니라 동네를 청소하고, 다일공동체로 가서 무료 급식 자원봉사를 한다. 청소도 하고 배식도 한다. 최 목사가 청량리에서 노숙자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며 처음 봉사를 할 때 만난 이씨는 지난해까지 동갑인 최 목사에게 형님 대접을 받았다. 외모가 형님뻘이었기 때문이다. 야간 중학을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젊은 시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냥 ‘만우 할배’로 불렸다. 누구도 그의 본명을 알지 못했다. 지난해 세례를 받을 때도 가명을 썼다.

하지만 요즘 그는 오전에 다일공동체에서 봉사를 한 뒤엔 청량리역 근처에서 노점상을 한다. 신발이나 옷을 도매상보다 싸게 판다. 벌이는 시원치 않으나 조금이라도 돈을 번다는 생각에 신이 난다. 여자 친구도 생겼다. 비록 몸이 편치 않아 지금은 요양원에 들어가 있으나 사랑을 느껴본 유일한 여인이다. 무료 급식을 받으며 만난 ‘여친’은 나이는 이씨보다 많으나 정을 나누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여친은 주민등록이 살아 있어 받을 수 있었던 생활보조금을 전액 불우이웃을 위해 써왔다고 한다.

 

이씨는 7일 오전 새로 발급된 주민등록증을 손에 넣었다. 그동안 무적자로,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을 안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다르다. 30년만에 어엿한 서울 시민이 된 것이다. “그동안 주민등록도 없이 살아온 이유는 국가에 어떤 권리도 행사하지 않고, 의무도 없이 조용히 살다가 그냥 죽고 싶어서 그랬지요.”

 

이씨는 이제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돼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보조받는다. “그 돈은 내 돈이 아닙니다. 저처럼 어릴 때 배우지 못한 어린이들을 위한 학비로 쓰고 싶어요. 교회에 십일조 헌금도 해야죠.” ‘만우 할배’에서 ‘이차술’로 거듭 태어난 이씨가 환하게 웃었다.

 

한겨레 뉴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Posted by 다일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