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으로 날마다 짓는 밥를 대하며..."

                 독자편지/ 권대웅(마음의 숲 대표)

독일 유학을 앞둔 한 청년이 부랑자들과 노숙자와 창녀촌이 즐비한 청량리 쌍굴다리를 지나가다가 배고파 쓰러져 있는 노숙자를 보고 라면 한 끼를 대접한다. 그리고 그는 유학을 포기하고 24년째 청량리에서 밥을 굶는 이들에게 밥을 퍼드리고 있다. 그가 바로 밥짓는 시인으로 알려진 최일도 목사이다.

, 거기서 밥을 먹어본 적이 있다. 가난하고 고단하던 청춘의 시절, 시만 쓰겠다고 하던, 그래서 슬픔과 절망마저도 찬란했던 시절, 의식은 교만한 아교풀처럼 끈적끈적해 무엇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을 때였다. 전화도 끊기고 연탄불도 꺼지고 라면도 떨어져 회기동에서 청량리로 걸어가다가 뜨거운 무국 냄새에 아니 굶주린 아귀 같은 허기에 나도 모르게 줄을 섰다.

부랑자가 되어서 나는 그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뒤돌아 앉아 엉엉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럽고 슬펐는지 모른다. 아집과 어깨에 잔뜩 지고 있던 망집 같은 것들이 고스란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그리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칠성노트에 빽빽이 써놓았던 시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불태웠다. 그날 저녁, 망연자실 앉아있는데 전보가 왔다. 신춘문예 당선 통보였다.

청량리에서 부랑자가 되어 밥을 먹고 돌아와 부랑자 시인이 된 1222일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해마다 그날이면 나는 이 세상에 부랑자 시인들과 노숙하는 철학자들을 위해 주머니를 털어낸다. 때로 누군가의 한 마디가 혹은 책에서 읽은 한 줄의 문장이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하지만 배고파서 먹은 밥 한 그릇이 인생을 바꾸어놓을 때도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서글픈 것이 바로 밥 굶는 일이다. 생존의 가장 첫 번째인 밥은 공기이고 철학이고 역사다. 엄마이고 가족이고 포옹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굶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나는 새들, 물속의 물고기들, 곤충들. 하물며 겨울 뒷골목을 맴돌며 우는 길고양이마저 배가고파서는 안 된다.

그는 어떻게 유학을 포기하고 부랑자와 노숙자들을 위해 날마다 밥을 지어줄 생각을 했을까. 그러니까 그는 몽상가다. 몽상을 현실로 실현시킨 선구자다. 그래서 그는 외로울 수 있다. 24년째,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500만 그릇이 더 되는 밥을 지어냈지만 그는 늘 고독하다.

이 땅에 밥 굶는 이 없을 때까지 밥을 퍼드리겠다는 그의 밥에 대한 마음을 담은 책 (밥심)을 작년 여름내내 만들었다. 최일도 목사님이 24년 동안 밥을 퍼온 '밥퍼(babper)'라면 나는 24년 동안 책을 만들어온 자타공인 '책퍼(bookper)'. 그와 일을 하면서 비로소 나는 그가 얼마나 완벽주의자인가를 알았다.

시 한줄에 불어넣는 열정, 치열함, 문장 하나, 쉼표 하나, 하나, 마지막 교정을 열 번을 넘게 볼만큼 고민하고 또 생각해내는 그의 정신이 바로 몽상을 현실로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국내를 넘어서 제3세계 가난한 이웃나라들까지 밥퍼를 끌고 가는 힘이라는 것을 알았다. 윤동주의 서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하나니...’ 그는 기도하고 생각하고 또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글을 썼다.

나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나누어주는 밥퍼가 우리나라 현대보다 삼성보다 더 잘 알려졌으면 한다. 아니 세계의 그 어느 기업보다 더 커졌으면 한다. 그러면, 그러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밥을 굶는 일은 없겠지, 없겠지. 그래! 정말 일부러가 아닌 이상 사람이 밥은 굶어서는 안 된다. 

밥을 굶는 곳에는 이념도 정치도 사상도 그 어떤 것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배고픈 이유 하나만으로도 굶주린 이웃에게는 무조건 밥을 줘야한다. 북한의 아이들에게도 아시아 빈민촌 아이들에게도, 먹으면 눈이 멀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배가 고파 독초를 먹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도, 심지어는 형무소에 있는 죄인에게도 어떻게 해서든지 밥, 밥은 줘야 한다. 사람이니까, 생명이니까...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금 이 순간에도 밥을 굶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이 땅에 밥 굶는 이 없을때까지 밥심으로 날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드리겠다는 밥짓는 詩人, 최일도목사. 우리시대 그가 진정한 시인인 까닭이 여기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따뜻한 시인이다. 배고픈 사람들을 위하여 밥심으로 날마다 짓는 그의 행복편지 밥와 따뜻한 밥에 천둥소리보다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날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드리겠다는 밥짓는 詩人, 최일도목사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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