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일공동체

이런 감사한 기회를 주신 다일공동체 여러분께 눈물이 나도록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9시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분들이 와 계신것을 보고 놀랐고, 너무나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심에 또한 놀랐습니다. 이런 감사한 기회를 더 일찍 갖지 못한 것이 가슴아픕니다. 지금부터라도 함께 하는 직원과 자원봉사자 여러분들, 다일공동체 여러분들과 감사하며 봉사하고 싶습니다. 다시한번 소중한 기회 주심에 감사합니다.
3/12 샤우트코리아 대표이사 김재희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남을 위해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저의 모든 환경과 건강 주심을 감사하며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 도와가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마음 기억하며 간직하겠습니다. 좋은 선물 주심 감사드립니다. 3/12 김계령

오늘 하루 잠시나마 이렇게 와서 내가 아닌 다른 분들을 위해 생각할 수 있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동안 너무 감동이었어요.. 가슴도 짠하고.. 이곳분들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또 뵈요 ^^ 3/12 김지희

남을 위해 일한 이 몇시간이 수십년의 삶을 이끄는 올바른 가르침으로 묵직하게 남을것 같습니다. 많이 배우고 느끼고 갑니다. 3/12 이성숙

친구의 권유로 찾아오게 되었는데 하는 동안 힘들기도 했지만 남는 것이 더 많았던것 같습니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돕는 일이 이렇게 보람있는 일이구나’ 라는 점을 느끼게 된 소중한 기회였던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단체를 알게되어 직접 참여하고 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잘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3/12 김경모

따뜻한 밥보다 더 따뜻한 이곳의 봉사자분들의 미소 덕분에 많은 분들이 또 한해의 겨울을 잘 견디었네요. 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늘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여름에 더 건강하고 시원한 얼굴로 뵈요. 3/13 맹은주

할렐루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한번 체험하고 돌아갑니다. 사랑으로 사람을 섬기고 나누러와서, 사랑을 받고 또 큰 섬김을 받고 돌아갑니다. 스물두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많은 분들의 축하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따뜻함으로 채워졌어요. 감사합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 대하듯 사랑으로 섬기라고 이 많은 사랑을 받게하셨음을 깨달았어요. 감사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3/12 김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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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공무원입니다. 수험생활이 2년 가까이 다다르자 슬럼프에 빠지게 되어 다시 한 번 맘을 다잡고 시작하길 결심하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 전부터 계획하던 밥퍼 봉사를 작년 10월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시험이 그렇듯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혼자 하는 시간이 많아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하는 일이 낯설어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땐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어지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되거든요. 그러다보니 말수도 줄고, 웃음도 적어지고, 시험에 낙방하며 자신감도 그에 따라 줄어들게 되어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폐만 끼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봉사날짜를 잡고 밥퍼 가는 길의 시장의 낯선 풍경과 밥퍼의 분위기에 어색해하며 사무실에 들어가 간단한 수칙을 듣고 주방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른 시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주방은 분주했습니다. 알고 보니 직원 분들은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분들 틈에 껴서 돕기 시작했습니다. 무, 당근, 파를 써는 등 식사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처음엔 혼자 조용히 칼질만 했는데 간단한 인사였지만 다른 봉사자 분들과 조금씩 대화도 하고 농담도 하면서 친해지게 되자 더욱 즐겁게 열심히 하게 되고 힘이 났습니다. 이전까지 제가 생각하던 봉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주는 것보다 제가 받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하는 작은 일에 고마워하시는 분들 한분 한분을 보니 제가 하는 봉사가 이분들에게 힘이 되고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제야 밥퍼에서 봉사를 섬긴다고 하는지 그 뜻을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봉사를 끝내고 마음이 풍족해져 집에 돌아오니 전날과는 다른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끝없이 어두운 긴 터널을 혼자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다시 제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2주마다 밥퍼를 방문해서 저 또한 웃고, 배우며, 섬긴지 5개월이 되었습니다. 곧 시험이 있어 당분간 찾아가지 못하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반겨주시는 밥퍼에서 느낀 따뜻한 마음은 계속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시험이 끝나는 하반기에 찾을 때도 반갑게 맞아주세요. 그땐 합격해서 오겠습니다.^^
 밥퍼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밝은 웃음, 맑은 마음으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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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다일공동체

홍성득 형제(아천동교회)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에 와서 앉아 있기까지만 할 때도 ‘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힘들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과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국 날씨에 비해 매우 더워 적응이 안됐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무척 더웠다. ‘이 더위 속에서 어떻게 일을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일이  매우 힘들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직접 일을 하며 함께 활동해보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하면 할수록 일이 즐거웠고 옷이 다 젖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선교사님이 알려주신 캄보디아어는 들을 때는 ‘잘 기억해 줘야지’ 하면서도 막상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처음엔 말이 안 통해 답답했었는데,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몸짓으로나마 대화가 통하는 것 같아 좋았다. 직접 아이들을 만나보니 말 그대로  정말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들이였다. 낯선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아이들은 기뻐하며 항상  웃고 품에 안기려 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 이 아이들이야 말로 정말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고 할 때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고 더더욱 느꼈다. 아이들 하나하나마다 튼튼해 보이는 아이들이 없었다.

너무 잘 먹어 튼튼한 나에 비해, 이 아이들의 다리나 팔은 너무 빈약해 보였다.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이런 것도 못 먹는 아이들도 있는데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해’ 라는 말은 그냥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배식을 할 때는 밥을 먹으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니 나까지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밥을 먹는 아이들 중 반도 먹지 않은 채 그냥 멍하지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 같이 먹는 시늉을 하며 밥 먹는 것을 도와주자 그제서야 다 먹는 것을 보고 ‘사랑도 중요하지만 관심 또한 많이 필요 하구나’  라는 걸 느꼈다. 밥을 먹지 않고 받은 밥 전부를 봉투에 담아가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런 아이들을 보고 정말, 정말 가슴이 아팠다. 먹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밥을 담아가는 모습이 정말 감탄스럽고 찡했다. 급식을 다 먹고 나서는 바닥을 청소했다. 흘려진 것이 너무 많아 ‘언제 다 치우지...’ 하고 생각했으나 다 같이 일을 하니 금방 끝이나서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날 역시 아이들 배식을 도와주고 ‘집짓기’에 임했다.   

듣기로는 집짓기가 그렇게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데 막상 해보니 금방 끝이나고 나만 너무 놀았던 탓인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집짓기는 먼저 바닥을 깔고 옆으로 벽을 붙이기만 하면 끝이 났다. 바닥은 목사님과 전도사님들, 형들이 수고해 주신 덕에 금방 끝이 났고 벽은 권사님들과 누나들이 수고해주신 덕에 예쁜 벽이 완성되어 붙이니 멋진 집이 완성되었다. 집의 주인 되시는 현지인분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매우 기뻤다. 집을 완성하고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실 때면 정말로 이집에 복을 내려주시고 주님을 잘 믿는 가정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고 나니 기쁨이 배가 되어 기분이 좋았다. 집짓기를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나니 기쁘게 일을 해서 그런지 매우 개운하고 좋았다. 교회 분들 모두 피곤해 하시는 것 같았는데 나만 너무 놀은 탓인가, 나만 멀쩡한 것 같았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짧은 시내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잠이 들려 할 때는 기억에 남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날 지은 집도 생각이 났다. 기쁘게 임해서 그런지 피곤하지 않게 잠을 잘 잘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다음날은 배를 타고 수상마을을 관광하였다.

물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잘 볼 수 있었다. 배를 타고 나가기 전에 교회 분들이 힘들게 만드신 빵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빵의 맛은 정말 맛있었다. 빵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고  나까지도 기분이 좋아졌다. 깨끗한 물이 부족한 캄보디아에 mbc 프로그램 ‘단비’에서 우물을 만들어 주시고 가셔서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선교사님의 말을 듣고 ‘정말 좋은 프로그램 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건기와 우기의 차이가 뚜렷해서 우기가   오면 이사를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듣기만 했는데 내가 힘든게 느껴졌다. 비록 가난하거나 빈곤하지만 기쁘게 행복하게 사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3박 4일 동안 이런 일 저런 일 겪어보며 정말 힘 안들고 즐겁고 기쁘게 봉사활동을 하고 온 것 같다. 하루하루가 정말 즐거웠고 보람찼다. 가난과 굼주림에도 행복해하고 기뻐하던 아이들과, 멋진 자연을 가지고 있는 캄보디아라는 나라를 다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짧은 기간동안 겪은 일이 이리도 즐겁고 기쁜데, 전부를 경험해보면 그 기쁨은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가도 들었다. 정말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 일들을 하고 온 것 같아. 보람이 있었고, 그 무엇보다 캄보디아에 기독교인 수가 점점 더 늘어나게 기도가 필요한 것 같다. 그들이 주님을 알고 주님의 뜻을 알면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비록 몸은 조금 지저분하지만, 깨끗한 마음과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즐겁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캄보디아. 많은 선교사님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있는 나라 캄보디아를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서 봉사하고 싶고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신 교회에 감사하고, 온전히 다녀오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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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다일공동체

홍성애, 나연옥 집사



 아천동 교회에서 청년부 주관으로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참여하게 된 것은 기대 반, 우려 반 이었다. 왜냐하면 동남아 여행은 관광목적으로 다녀왔지만, 봉사활동 목적으로 가는 것은 내 생에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MBC의 프로그램 단비 (캄보디아 편)를 보고서 캄보디아 씨엠립의 열악한 환경과 악취 나는 물 등을 생각 할 때, 기쁜 마음 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드디어 출발! 2~3일전부터 울렁거림이 시작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 꼭 가야만 하나....’ 무슨 핑계거리라도 찾아 빠지고 싶었지만 어찌 그것이 내맘대로 되랴, ‘하나님! 이 불쌍한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캄보디아 씨엠립 도착 후 숙소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였다. 그런대로 침대와 샤워실이 있었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둘째 날부터 시작되었다.
열악한 환경에 냄새나는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헐벗고 찢어진 옷을 입었지만 천진난만 하였다. 머리 감기기에는 이가 득실 하였지만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깨끗하게 감껴 주자. 이왕하는거, 샴푸를 부드럽게, 흘리는 코도 예쁘게 씻어주자.’

해도 해도 몰려드는 아이들, 아 허리가 아프고, 팔이 아프고, 발이 저려왔다. 끝나려니 하니 어디서 또 한 트럭 쏟아놓고 가는 차량..그렇게 정신없이 아이들에게 머리감기기는 끝이 나고 즐거운 점심 배식시간, 더 먹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들..

집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해 몰래 싸가지고 가는 효심 깊은 천사들.
그 모습을 보니 순간 가슴은 찡하고, 콧등은 시려왔다.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수상마을 빈민촌에서 빵퍼 배식을 할 때는 벌써 익숙한 듯 주변 어린애들이 우리들을 보고 몰려오기 시작했다. 빵을 더 받으려고 감추기까지 하는 어린 아이들, 이 애들을 실컷 먹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 오병이어의 기적이 여기서도 일어날까?

우리나라도 1960년대 이러했다는데. 서글픔이 몰려오고 캄보디아 어린이들이 희망 없어 보였던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아니다
그래,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자.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자. 거룩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보듬어주자, 씨엠립 다일 공동체의 노력은 가히 존경스럽고, 예수님의 마음을 실행하는 존귀한 사랑의 공동체 라는 것을 가슴깊이 느꼈다.

나는 캄보디아 어린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을 줄 것인가.
우선, 실현가능한 것부터 실천해보기로 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씨엠립 다일 공동체 식당의 필요한 카터기를 기증하고자 한다.
또한,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자, 비록, 금액은 작지만 결연 학생을 맺어 지원하면, 이 어린이에게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이제 나는 풍요로운 고국에 돌아와 캄보디아 봉사활동의 감동을 벌써 잊혀가고 있다.
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어려운 이웃을 한번 더 생각하자. 그리고 작지만 나눔으로 실천해보자, 나는 이렇게 묵상기도를 해본다.
‘이번 캄보디아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서 감사드려요. 주님은 아시죠~ 저희 아천동교회가 사랑과 봉사가 넘치는 그런 섬김의 교회로써 주님을 닮아가는 아름다운 천국동산인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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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오늘..
받은 사랑만큼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드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행복을 얻어갑니다. 이땅에 밥 굶는이 없을때까지...   밥퍼 파이팅!!  2/18 박신혜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따뜻한 분들이 많다는 것을...
또 그분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를...
또 오겠습니다. 2/18 소성영

봉사하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기운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된 소중한 시간이었구요
이 곳에서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게 축복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2/18 서길영

처음에는 아침에 너무 일어나기 힘들어서 솔직히 조금은 짜증도 나고 그랬는데, 막상와서 이렇게 보람된일을 하고 나니, 너무너무 뿌득하다. 내가 조금힘들어도 사람들이 감사해하며 맛있게 밥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같이 봉사하러 온 언니들이 사진도 찍어주고 누룽지도 주고 너무 훈훈했다. 무엇보다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함께 이런 보람된 일을 해서 기억에 오래 남을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과 꼬~옥 다시한번 올생각이다. 2/13 김지혜

추운날씨에 힘들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배운대로 제게 주어진 삶 속에서 그 사랑 실천하여 살겠습니다. 홧팅! 2/12 이다혜

천사의 얼굴들을 발견 할 수 있어서, 손이 시렵고 발이 시려운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영원한 밥퍼의 사랑이 이어졌음 좋겠고 기도하겠습니다.  2/6 왕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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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을 시간만 채우려고 첫날 왔었다. 하지만, 어색한 첫날과 달리 두 번째날부터는 봉사가 재밌어졌다. 책상 닦기를 하면서, 감사하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보람을 느끼면서 재밌어졌고, 이제는 스태프분들과도 친해졌다. 헤어지긴 아쉽지만 방학 때 시간나면 와야겠다. 12.16 김지훈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봉사하시고, 헌심함에 가슴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발은시렵고 허리는 아프지만, 이런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뵙고 갑니다. 다시한번 도구로 써주심을 감사드립니다. 12.22 김영덕

추운날씨에 힘들었지만, 너무 많은것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배운데로 제게 주어진 삶속에서 그 사랑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파이팅!! 1.12 이다혜

오늘 오랜만에 '밥퍼'에 왔다. 아침에 너무 추워서 봉사가 힘들꺼라고 예상했지만 예상대로 발도 시렵고 몸도 뻐근했다. 하지만 어른, 노인분들께서 밥을 맛있게 드시고 다른 분들도 열심히 해서 많이 힘들진 않았다. '밥퍼'는 무지 뜻깊은 봉사단체고 나중에 친구들 데리고 또 오고 싶다. 1.7 정예영

이번겨울 가장추운날 이었습니다. 영하15도의 날씨에서도 다들모여서 한끼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서로서로 힘을 모았네요. 오전시간에 방학이라 늘 잠으로 보냈었는데 다들 고생이 많으신걸 보고 많이 느끼고 갑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좀더 이웃에게 도움이되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13 김아름

하나님 은혜감사하며, 남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건강주심을 감사하며, 그동안 많이 수고하신분께 진심으로 존경하며, 하나님사업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13 김숙남권사

오늘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해서 걱정을 안고 밥퍼에 왔습니다. 주방에 솥을 닦았는데, 추위에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밥한끼 대접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말 뿌듯합니다. 밥퍼 파이팅!! 1.13 박재현

가장춥다는 서울날씨 속에서, 함께 함에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작은손길에 많은 살마들이 기쁨을 누림에 감사함을 느끼고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밥을 굶는이가 없는 대한민국을 소망하며.. Fighting!! 1.13 온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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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달 동안 함께 살았던 너희들과의 생활을 정리하고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왔다. 돌아온 현실은 이것 저것 잴 것이 많단다. 5개월의 짐은 하루 이틀이면 쌀 수 있지만 마음이란 쉽지 않더구나. 아직도 눈을 뜨면 갈색 톤의 그곳이 아른한데, 이곳에서 살아낸다는 게 내가 내 삶을 살기보다는 둥둥 떠 다니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공동체 생활을 해 본 것도 처음인데, 나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내가 이모로서 너희들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나를 향해 있는 경험을 하지 못했어.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지만 너희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이 곳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지금의 나라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은 너희들을 내가 가진 상식으로 판단하려 했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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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내가 여기 온 이유도 나를 위해 무엇을 한다기보다는 너희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 속에 내 자리가 없는 것에, 너희들을 탓하기보단 너희들에게 내 진심이 향해 있는지를 되묻게 되었어. 그러니 '너 중국 가서 뭐했냐'라고 물었을 때, 반드시 답해야 할 것 같았던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사라지더라. 하루 하루 함께 삶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귀중한 것일 뿐더러, 시간은 서로를 적응하게 만들더구나. 아, 이제야 너희들과 함께 산다고 여길 때 '내 평생 언제 이렇게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즐겁고 행복했다.

아쉬운 것은 말이다. 마지막까지, 머리는 아는데 가슴은 늦더라. 적극적으로 너희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것이 너희가 나에게 필요로 했던 것이지만, 부끄럽게도 오히려 내가 너희들로부터 더 많은 안식과 기쁨을 얻었다. 그런데도 내가 가진 너희를 향한 내 마음을 힘껏 드러내진 못했다. 모든 감정을 쏟아내면 나중에 주워 담기가 더 힘들 것 같아서.

눈물 보이지 않고 웃으며 쿨하게 떠났지만, 미치도록 그립구나.

1월 23일 짧은머리(头发) 이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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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윤자혜

- 대사협 해외봉사단 캄보디아1팀 '러브깜디' 부리더

대학교에 들어올 때까지 나에게는 '대입'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후 인생의 목표가 없어졌기 때문에 여름방학의 나는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들을 없애기 위해서 2009년 2학기에 이것저것 많은 활동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해외봉사에 지원을 했던 것이었다. 다른 단원들처럼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거나 어떠한 성취감을 위해서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특별한 활동을 해보고 싶었고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그 끝에 해외봉사가 있었다.

그랬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단원들과는 달리 준비과정에서 설레고 들뜨는 마음이 미미했던 것도 사실이다. 출국하루 전, 아니 인천공항에서 출국 심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과연 낯선 캄보디아의 땅에서 계획한 대로 잘 활동하고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조차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국으로 입국하게 됐을 때 스스로가 어떻게 변화했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캄보디아의 땅을 밟았다.

우리가 했던 봉사는 크게 '밥퍼, 빵퍼봉사', '지역봉사', '교육봉사' 이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빵퍼봉사는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가장 많이 반성하게 하고 많은 울림을 주었던 활동이었다. 점심식사를 다 하고 나서 빵이 나올 시간이 되면 그 앞에서 기다렸다가 간식으로 소보로 빵 하나를 꼭 챙겨먹었었다. 봉사하던 마지막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빵퍼봉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아직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수많은 아이들이 소보로빵 하나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하나를 더 얻기 위해서 마치 받지 않았다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받은 빵들을 다리 밑에 숨기고 옷 속으로 숨기는 모습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살겠다고, 정말 목숨을 부지하겠다는 그 목적 하나만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여태 내가 도대체 무슨 만행을 저지른 것인지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 아이들에게는 절실한 주식인 식량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은 먹지 않았어도 되는 그런 간식에 불과했을 뿐인데, 그것을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눈치를 보고, 더 많이 먹을수록 내 포만감에 뿌듯해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아직까지도 고작 내 욕심 때문에 몇몇 아이들의 주식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이 너무나도 크게 나를 죄어온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축복받고 혜택 받은 사람인지,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은 당장 오늘 하루의 끼니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절박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아이들의 눈빛을 행동을 절대 잊지 않고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을 굳힌 것이 이 때였다.

한국에서 가장 열심히 프로그램을 짜고 준비해 간 것이 교육봉사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만큼을 가르쳐 주면 그것에서 뿌듯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색칠을 하고, 풀을 붙이고, 사진을 찍을 때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나까지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실상 우리가 가르친 것은 없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온 것만 같아 부끄럽고 염치없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봉사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남을 돕기 위해 내 것을 베푸는 것이 봉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시간적,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봉사를 실천하지 못한다는 말에 동의했었다. 그러나 이번 활동을 통해서 봉사라는 것은 내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넘쳐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서 행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내가 퍼주는 것이 아니라 '봉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가 소통하고 있는 것임을 깊이 깨달았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꿈같았던 14박 15일이었고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지 불과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너무 그립다. 매일 아침 우리를 숙소에서 유치원으로 실어 나르던 트럭,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소보로빵의 고소한 냄새, 너무 매워서 혀끝을 얼얼하게 했던 간장 속의 고추,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안기던 아이들과 손을 잡았을 때의 그 촉감, 손만 맞대주어도 하이파이브를 하며 신나했던 아이들의 그 웃음, 도색작업 시 롤러를 밀면 났었던 '쩍~쩍' 거리던 소리, 심지어는 센터에서 숙소를 오갈 때 코를 찌르던 생선 말리는 냄새까지도. 그 모든 날들이, 그 일상들이 너무 그립다.

출국하기 전에는 뿌옇던 모든 것들이 이젠 다 그 빛을 찾았다. 봉사, 행복, 사랑에 대한 나의 가치관, 나아가서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알게 해 주었다. 내 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해 준 우리 러브깜디 단원들, 단장님, 간사님, 유치원과 센터의 아이들, 그리고 다일공동체의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사랑한단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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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사회봉사단 김도현

- 대사협 해외봉사단 캄보디아1팀 '러브깜디' 리더

내가 다일과 함께 캄보디아로 떠난 건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0월 초쯤 최일도 목사님께서 명지대학교에 채플강연을 오신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다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저 밥퍼운동을 시작하신 분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날 최 목사님께서 보여주신 한 편의 영상은 내 가슴을 심하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바로 캄보디아 빈민촌의 참담한 현실과 구순구개열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수술 받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차오르는 눈물을 견디기 힘들었고, 보다 많은 학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강연이 끝난 후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께선 작은 종이에 정성스레 어떤 목사님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주셨고, 이내 두 손 맞잡으며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꼭 한 번 다일에서 봉사하고 싶다. 저 아이들을 꼭 만나보고 싶다.'

이것이 그날부터 시작된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그렇게 다일과 처음 인연을 맺고 얼마 후, 대사협 해외봉사단 모집공고를 접했다. 10개국 14개 지역 가운데 '캄보디아-다일공동체'가 있었던 건 놀라운 일이었고, 난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사협 해외봉사단 캄보디아1팀의 단원이 되어 11월 26일 다일과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캄보디아에서 보낸 2주간의 시간은 첫날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짠한 감동이자 눈물이었다. 첫날 '밥퍼'를 할 때였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 헤진 비닐봉지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식을 시작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빈자리로 데려다주면서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여섯 살 쯤 되었을까, 한두 살 어림직한 동생을 꼭 품에 안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근데 그 어린 녀석이 자기 식판에 담긴 밥은 그 너덜너덜한 봉지에 옮겨 담고, 동생 입에 밥을 떠먹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 1달러로 온가족이 생활한다는 캄보디아의 빈민들, 그 어린 꼬마가 집에 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은 굶고 동생만 밥을 먹였던 것이었다. 그 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그 녀석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렸었다.

캄보디아에서의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어느새 달라진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도 감동적이었다. 누가 봐도 더러운 아이들, 한국에 있었더라면 피해 다녔을지도 모를 아이들인데, 어느새 그 아이들이 먹던 빵을 한입씩 나누어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젠 눈앞의 더러움보단 그 속에 숨은 사랑이 먼저 보이는 듯해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공에 맞아 눈을 다친 단원에게 직접 밥을 떠먹여주던 아이, 고된 작업에 잠시 쉬고 있을라치면 금방 달려와 어깨를 주물러주던 아이, 내 품에 안겨야만 웃어주던 갓난아이, 들꽃을 묶어 예쁜 꽃다발을 선물해준 아이, 겨우 사탕 하나에도 두 손 예쁘게 모으고 '어꾼'이라 말하던 아이들, 겨우 세 번 배운 리코더로 멋진 합주를 해낸 아이들, 두 팔 벌리고 소리치면 후다닥 달려와 내 품에 안겨주던 아이들, 먼저 마지막을 알고 내 품을 떠나지 않았던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나하나 말하자면 끝도 없을 캄보디아에서의 아름다운 기억들.

우리가 러브깜디란 이름으로 캄보디아에서 행한 가슴 뜨거운 일들, 다일이 하나님의 사명으로 캄보디아에서 행하는 가슴 따뜻한 일들, 이 모든 것들이 시작은 미약할지나 세상을 따뜻하게 울리는 큰 메아리로 울려 퍼질 것을 난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나 역시 더 많이, 더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이처럼 아름다운 젊음을 선물해준 다일과 대사협, 러브깜디 모두에게 가슴 가장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과 뜨거운 사랑을 전하고 싶다.

"감사드립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젊음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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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사랑의 밥

배문고등학교 -전현배

여름방학때 친구 함지현양의 소개로 우연히 접하게된 밥퍼, 처음 봉사하러 왔을땐 유난히 푹푹찌는 여름날이였는데, 그 날 난생 처음한 거대 솥닦기.

날도 더운데 뜨거운 솥을 뜨거운 물로 설거지할땐 정말 죽을 맛이였다.

힘들기만하고 별 보람을 못느껴 속으로 투정도 부리던 하루였는데, 어느샌가 익숙해져버린 설거지, 밥퍼 이웃분들, 그리고 하루하루의 주인공이신 어르신들, 처음에 배식을 할 땐 5분이 길게 느껴지고 끝이 안보이는 긴 줄 때문에 한숨 쉬어가며 시작한 봉사가 이제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여유도 생기며 "더는 안오시나?" 하고 여운도 남는다.

하루하루 힘겹게 지내시는 그분들은 주름이 깊게 파여있고, 눈가도 쳐지시고 피곤한 얼굴로 따뜻한 밥 한 끼를 기다리시는데, 다 드신 후 보이는 작은 미소가 내겐 많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학교친구들은 나보고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그런걸로 시간을 낭비하냐며 비아냥거리지만 가끔씩 하는 이 봉사가 피곤하기는커녕 오히려 엔돌핀이 되며 매일매일의 작은 감사까지도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을 돈과 명예에서 찾지만 밥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행복을 나눔에서 찾으시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남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더 행복해보인다. 왜냐하면 계속 모으는 것에 열중하는 사람보다 나눠주는 사람이 훨씬 여유로유워 보일뿐만아니라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봉사하면서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배웠다.

그것은 바로 나눔의 힘이다. 나눔 속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미소가 나의 마음에 불을 지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이란 용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낌없이 나눠주시는 밥퍼 단체가 더욱 번창하여 세계 속에 든든한 기둥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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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힘

여의도여자고등학교 -함지현

안녕하세요.

현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함지현입니다.

어느날 인터넷을통해 밥퍼사이트를 보게되었고 그곳, 청량리에가서 방학을 이용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주고싶다는 생각에 바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량리면 집에서 거의 1시간이 걸리지만 먼 발걸음을 하는 만큼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밥퍼로 향하였습니다.

시작한 때가 여름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은 어르신들께 드릴 진지를 생각하며 땀을 흘려가며 진지를 준비하였습니다.

그 땀 한방울 한방울 속에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오셔서 진지를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빨리 진지를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사시간이되어 다일공동체 진지기도를 드리고 식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배식을 하는데 어르신 한 분이 반찬통을 들고 오시더니 "집에 전기랑 다 나가서 다음에 먹을 밥이 없어요 밥 좀 더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울컥했습니다.

가방이나 반찬통에 식판에 있는 밥과 반찬을 덜어서 소중히 담아 가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비록 점심 한 끼지만 어르신들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너무 보람찼습니다.

겨울인 지금은 지난 여름보다 어르신들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춥고 배고파하시는 어르신들이 이 곳 밥퍼에 오셔서 몸도 녹이고 마음도 따뜻해져서 돌아가시는 것을 볼 때마다 제가 이곳 밥퍼에서 봉사하는 보람을 느끼고 기쁩니다.

자원봉사를 해 주시는 분들,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앞으로도 밥퍼에 계속 이어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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