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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르심으로 인해 설곡산에 들어온 지도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직도 매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알고자 기도합니다. 나를 이곳에 부르신 이유, 매일의 노동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 그리고 내가 진정 주님과 함께하고 있는지를 알고자 합니다. 오랜 외도를 끝내고 탕자로 돌아온 저의 믿음은 예전의 뜨거웠던 첫사랑을 회복하기위해 시간이 더 필요한 가 봅니다. 새벽 6시 조도로 시작해 대도, 만도로 하루를 마감하고 매 주일을 지키지만 아직은 첫사랑의 뜨거웠던 마음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더 많은 기도를 드릴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겠지요.

시민단체를 설립하고 10여년을 하나님 사명으로 여기며 섬겨왔던 단체와 사업을 정리하고 나를 찾아 떠났던 여행은 야마기시즘 공동체를 시작으로 이곳 설곡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삶에 찌들어 죽은 얼굴로 시작됐던 여정은 어느덧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아가며 그 분의 섭리에 감사가 저절로 나오는 새로운 삶으로 차츰 변화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을 찬양으로, 감사함으로 웃으며 사시는 모세 원장님과 동역하시는 형제, 자매님들이 계시니 배움이 넘쳐 날마다 즐겁습니다.

이곳 설곡산은 봄의 기운이 땅을 뚫고 올라오느라 새싹도, 나무도 분주하고 바쁘기만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옷을 입는 산과 들로 인해 공동체 식구들의 마음과 몸도 바빠집니다. 덕분에 밭을 일구고 고랑을 내며 씨감자를 심는 지체들의 노동도 새로운 기도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잠깐 배운 굴삭기 운전 실력으로 묵안리 텃밭을 개간하고 있는데, 며칠간의 짧은 수고였으나 이제는 제법 실력도 늘고 굴삭기에 대한 흥미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텃밭이 일구어지고 이곳에 씨앗이 뿌려져 가꾸어지면 누군가는 거두어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땀이 담겨 있습니다.’ 하며 진지기도를 드리겠지요. 가능하다면 저도 그때쯤엔 알곡이 되어 어딘가에서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귀히 쓰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곳 설곡산에서 매월 발행되는 소식지를 읽으면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참으로 실감 납니다. 시민단체에 매진하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안은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다시 쓰일 때는 정말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귀히 쓰이겠다는 생각도 내려놓아야 할 생각이지만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마음으로 타인을 섬기고자 합니다. 때문에 설곡산 이야말로 저를 죽이는 장소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입니다. 이제부터의 제 기도는 저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노동으로 올리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저의 갈 길을 새롭게 밝혀 인도하시니 감사 합니다.”

설곡산 다일공동체 노동기도학교 석승억(산들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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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20대 중반에 시작한 사업은 실패라는 쓰디쓴 교훈과 가르침은 물론 실망과 패배감 또한 가져다 주었습니다. 노숙생활과 길에서 음식을 주어먹는 거지 같은 생활도 해 보았습니다. 사기죄로 3개월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된 후 1년에 1년 6월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신용불량자에 전과자, 실패자, 아무짝에 쓸모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악마에게 제 영혼을 팔아서라도 다시 서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몇 번의 자살 시도로 생을 끝내려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만약 신이 있다면, 신께서 나를 만들었다면 왜, 무엇 때문에, 어떤 목적으로 나를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신이 그냥 실수로 혹은, 심심해서 나를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이때부터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답을 책 속에서만 찾으려 했으며 신의 존재도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지만 해답의 진전은 없었습니다. 삶의 진전도 없어 생활은 낳아지기는커녕 더욱 더 악화되었고 제 마음은 이미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몇 년이 흐른 후 저는 투자제안서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어느 아주머니(집사님)께서 “우리 목사님께 한번 보여보세요. 목사님이라 돈은 없지만 인맥이 넓으시니 혹시 알아요?” 하시며 저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믿음은 없었으나 목사님과 얼굴 도장이라도 찍을겸 저녁 예배에 참석 했는데 예배 중에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3년간 교회 창고에서 먹고 자며 주보제작이나 목사님 문서수발, 부설 유치원 운전 및 차량봉사, 성가대 등의 봉사를 하며 “하나님 나를 쓰세요”라는 기도만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 교회의 성도 한 분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은 신용불량자라며 자신이 채권자들로 인해 겪고 계신 고통과 아픔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위로도 하고 먼저 격은 저의 경험적 노하우도 들려 드렸습니다. 압류에 대한 불안함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가족과도 관계가 악화된 상태 였기에 제 조언이 큰 위로와 힘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계기가 되어 인터넷에 신용불량자들의 모임을 만들어 온라인에서도 같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채무자를 돕는 일을 주시고자 실패를 경험하게 했다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심리상담사를 공부하며 상담자로써 준비했고, NGO대학원에서 공부하며 NGO지도자로 쓰일 준비도 했습니다.

1999년 시작된 시용불량자들의 모임은 2003년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라는 이름으로 당시 재정경제부에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였습니다. 2000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신용카드 길거리모집을 금지 시켰고 IMF의 권고에 의해 사라진 이제제한법의 재 입법청원과 채무자 상담기구의 설립을 요구하여 신용회복위원회가 설립되었고 대부업법의 제정, 파산 및 개인회생법의 제정, 연대보증제도의 폐지 등의 결실을 맺어 갔습니다. 이때부터 교회 창고에서 나와 방을 얻어 생활하였으나 이 방도 잠자리가 없는 채무자들에게 개방하여 공동생활을 하는 ‘약속의 집’으로 운영하였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전도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사명만 주시고 함께할 동역자도, 배우자도 허락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자 했지만 돈이 아닌 가치에 목적을 둔 저를 이해해줄 자매는 교회 안에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가난한 형제와 결혼한 자매는 “자신의 믿음과 기도가 적어 저런 형편없는 형제와 결혼했다”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돈 많은 배우자를 놓고 기도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웃의 가난과 아픔은 외면하고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 그 물질을 충당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부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하나님은 있으나 교회엔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하나님께 삐쳐서 교회를 등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신앙을 가지면서 끊었던 술과 담배도 이때쯤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민단체를 운영하며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새로운 영리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수입이 조금 생겨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되면서 불신자였으며 현재는 이혼한 부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장모님께서 서두르시는 통에 식은 차차 올리기로 하고, 혼인신고 후 살림을 합쳐 신혼살림을 시작 하였습니다.

하지만 3년여의 신혼생활도 2008년 여름부터 어려워진 사업으로 불화가 잦아 지면서 부부 모두결혼을 후회하며 서로를 원망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급기야 아내는 강력하게 이혼을 요구해 왔습니다. 저는 이혼만은 막아보려 시민단체를 후배에게 떠넘기고 사업을 정리한 후 스토리라운지 마케팅 담당 이사로 취업하여 돈을 벌어 가정을 안정 시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라운지는 경영난으로 급여를 제때에 주지 못하게 되었고 아내는 이를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계속되는 성화에 저도 이혼이 서로에게 더 낳은 결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2009년 3월 법원으로부터 합의이혼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혼 후 아내는 제주도에 사는 언니와 함께 일하겠다며 이사를 했고, 빈손에 옷 보따리만 가지고 나왔던 저는 2009년 8월 회사의 부도와 함께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 후 여러 가지 일들을 도모 하였으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마치 20대 중반, 사업 실패로 좌절하던 그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듯 했습니다. 돈 없다고 나를 버린 아내를 원망하며 술로 한동안을 살았습니다. “돈 있으면 남편이고 돈 없으면 남이냐?”하며 전처를 원망하고 정죄 했습니다. 원망과 한숨, 한탄, 그렇게 하루하루 견디듯 살다가 문득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내가 살아온 40여년 세월만큼을 앞으로도 살텐데 남은 생을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내는 아니지만 제겐 가족이 필요했으며 시골생활을 하고 싶었기에 시골 공동체를 찾아 보았습니다. 풀무원, 강화도 농민회를 거치며 결국 경기도 화성의 행복회 야마기시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특강 연찬회를 통해 화, 무소유, 자유 등의 테마를 다루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이 새로운 삶으로 저를 인도해 줄 것이라 믿으며 야마기시즘 일원으로 이곳에 남기를 청하였습니다. 하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내부 분열의 후유증 때문인지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심히 경계하는듯 보였습니다. 그들은 제 문제를 놓고 논의를 거듭하더니 결국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며 일단은 2개월간 함께 하고 그 후엔 집으로 돌아가 야마기시즘 모임을 통해 준비해 나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결정을 따르기로 하고 기독교에서도 야마기시즘과 비슷한 활동이나 노력이 있는지 알아 보았으나 천주교 활동이 많은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개신교공동체중 하나인 다일공동체를 찾았습니다.

밥퍼 최일도 목사님은 언론을 통해 보고 들어왔던 분이었기에 주저 없이 영성수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성수련과 함께 그 동안 하나님께 가져왔던 오해가 풀리고 아내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으며, 돈만 밝히고 이웃의 아픔에 눈감아 왔던 교회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해가 생겼습니다. 정말 세상이 달라 보였고, 기가 뿜어져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세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희망이 생겼고, 술과 같은 외부의 자극을 통해 실망, 절망, 사망에 이르는 삶을 청산하고, 더 나아가 이웃을 섬기며 믿음 안에서 살고자 하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대로 저의 삶은 완전히 새로워 졌습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았다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합니다.

아세찾기 이후 야마기시즘에서 함께하기로 했던 시간을 채우는 일은 마치 어린아이가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리듯 그렇게 가슴 설레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모세원장님과 주고받은 메일, 전화통화는 제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다일공동체로 들어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모세원장님께서 다일로 들어오는 것을 논의하기 위해 보자고 했을 땐 어떻게든 시간을 내야만 했습니다. 야마기시즘은 1주일에 1일은 함양이라는 자기시간을 가질 권리가 있었기에 수련원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1.5Km를 걸어가여 주위를 들러 보았습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손을 흔드는 나무들, 노래 부르는 새들…, 모두 나를 반겨 주는듯 했습니다.

야마기시즘에 돌아와 사람들에게 다일공동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처음엔 함께하기를 꺼려했던 야마기시즘 사람들이 이젠 저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다일공동체로 가는 것 보다 야마기시즘에 남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아세찾기 이후 달라진 제 모습이 남아도 좋을 사람처럼 보였나 봅니다. 제가 서울로 돌아온 첫날부터 3일간 매일 저녁 사람이 바뀌어가며 야마기시즘 사람들에게 전화가 옵니다. 이젠 함께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며 언제든지 야마기시즘에 들어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제겐 가야 할 길이 결정되었으며 살아야 할 목표가 세워졌기에 쟁기를 맨 농부처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저는 이제 진정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분 하나님 아버지를 믿게 되었습니다. 저를 위해 대신 죄 값을 감당해 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분이 제 삶의 주인임을 고백합니다. 지금도 저와 동행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고, 순간순간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 동안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답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며 노력할 것입니다. 이젠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제가 만난 사랑의 하나님을 몸으로, 행함으로 전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 삶의 가장 근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2010년 3월 11일 석승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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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도에서 받은 말씀은 잠언 7장인데 전체적인 말씀은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라는 내용이다.

나는 본문 25절 중에서도 그 길에 미혹되지 말라는 당분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을 하루종일 묵상하며 노동으로 하나님께 하루를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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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산에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마을 젊은처자 꽃 따러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고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부르던 노래가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묵안리의 모든 만물들이 봄이 부르는 소리에 따라 하루하루 다르게 땅과 나무사이 심지어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나와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신비롭습니다.
요즘은 특히나 요놈들!!!바로 잔디 사이에 난 잡초들과 씨름을 합니다.
뽑고 나 하룻밤 지나면 언제 뽑았냐는 듯 푸릇푸릇한 얼굴을 내밀고 있으니 미우면서도 그 얼굴을 보면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 요 놈들을 뽑고 있노라면 미안한 마음까지 듭니다.^^;;
며칠 전에는 민들레를 뽑으며 말을 걸었습니다.
“너도 살아보겠다는데 내가 뽑아서 미안하다.”그러자
“난 여기까지인거야,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지금까지, 깜깜한 땅 속에서 이렇게  파란 하늘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데.”
“그렇구나...그럼 넌 무엇을 먹고 이렇게 잘 자라니.. 뽑아도 또 자라나고~”
“주어지는 대로 먹지, 햇볕과 물과 바람과...무엇을 걱정하니?”
“그래 맞아.... 난 뭐에 미련을 갖고 기대를 하고 걱정을 하는 걸까?”
“그냥 여기 까지 인 일들을...왜 더 내 것으로 만들고 움켜쥐려고만 했을까....”
저는 종종 나의 잘못과 결점을 돌아보며 ‘난 뭔가 잘못 됬어, 나를 바꾸고 나를 좀 더 멋지게 강하게 해야해‘ 라며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때론 더 많은 것을 추구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면 내일 더 행복해 질 거라며 스스로에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잡초들을 뽑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앞두면 내일이 없기에 더 이상 많은 것을 추구하지 않겠구나...
오로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여기까지 인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요.
그렇기에 가난하다고 해서 불행하고, 부유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의 자리에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삼 전 참 행복한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 행복을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가는 곳마다 함께 나누고 행복 바이러스가 퍼져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0^//
이제는 더 많이 추구하려는 내가 아닌 내 안의 진정한 힘을 찾아가려합니다.
어떻게 하냐면요~ 자연이 자연스럽게 봄이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듯이 저 또한 창조주 하나님이 부르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귀 기울여 들어보고 반응하려 합니다.
오늘도 봄 바람이 저를 스치며 말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네가 어디에 있는가?” “누구의 것인가?” “사랑한다 내 딸아.”

 3개월의 훈련을 마치고 3개월이라는 시간을 다시 훈련에 들어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이 질문들은 때론 하루하루의 활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서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작은 것부터 하루하루 지금-여기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샤인을 소망해 봅니다.^^* 

일체은혜 감사뿐입니다.  강효정(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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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곡산다일공동체인 설곡산영성수련원에 노동기도로 하니님을 섬기기위해 2010년 3월 12일에 들어온 이후 지금껏 성찰 일기를 써 왔으나 앞으로는 블로그에 매일매일 일기를 올리려 합니다.

이 일기를 통해 매일의 나를 하나님께 내려놓고 살아가기 위함이며, 또한 매일매일 깨달은것 미쳐 깨닫지 못한것을 알아가며, 영적으로 더욱 성숙한 가운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이 곳에서는 제 기도보다 다른 누군가의, 하나님의 어떤 일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곳입니다.

저는 이 곳에서 제 기도를 해 보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이웃과 배고픈이들, 외롭고, 슬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오직 그들을 더 잘 섬기려는 기도 뿐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 복을을 전하기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중보기도들 뿐입니다.

예전의 저는 저의 잘됨을 위해 기도 했으며,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어린 아이처럼 떼쓰는 기도만을 해 왔습니다.

이제 기도의 제목도, 기도의 모양도, 그리고 그 깊이도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아침 6시 조도로 시작하여 12시 대도, 7시 30분 만도로 하루를 마감하며 8시간 기도, 8시간 노동, 8시간 대침묵 속에서 하나님께 하루하루를 온전히 드리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잠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합니다.

매일매일 내게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는것은 말씀의 깊으를 새롭게 느끼고 깨닫는 참으로 귀한 시간의 연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보기도를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댓글로 기도 제목을 올려 주시면 기도로 함께 협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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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나 봅니다. 꽁꽁 얼어있던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소복히 쌓여있던 눈도 녹았습니다. 이곳 설곡산, 묵안리에서는 사계절의 변화를 너무도 생생히 경험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때마다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보고 듣고 느끼며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훈련을 받은 지도 6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돌아볼 때마다 하루하루의 삶이 일체 은혜뿐임을 고백합니다. 저를 불러주시고 주의 일에 써 주심에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노동과, 기도, 공동체의 삶을 살아보니 그동안의 제 삶은 그저 말 뿐인 편하고 게으른 삶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보겠다고 하는 지금 훈련의 자리에서도 많은 나약함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음은 약할 때 강함되시는 은혜를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는 공동체 가족들과 훈련생들이 노숙체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이웃들의 가난과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보며 진정한 겸손과 섬김을 배우기 위한 다일의 훈련과정입니다.
 저희들은 청량리에서 서울역까지 걸어, 서울역 지하도에 누워 밤을 보냈습니다. 날씨가 많이 풀렸음에도 길에 누워있으니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오고 ‘지금 여기 나는 서울역 길바닥에 누워있구나’생각하니 더 배가 고프고 몹시 춥게만 느껴졌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서는 다른 노숙인들과 똑같이 밥퍼에서 줄을 기다려 배식을 받았습니다. 배고픔에 허겁지겁 뜨거운 국물을 넘기다 그만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전 고작 하루를 경험한 것 뿐인데, 갈 곳이 없고 먹지 못하는 병든 자들의 허기와 고단함은 얼마나 절절한 것일까 생각하니 제 삶은 너무 배부르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제 옆자리에서 힘겹게 숟가락을 뜨시는 할아버지께 제 국그릇의 떡국을 더 덜어드렸습니다. 고맙다고 좋아하시는 할아버지가 이렇게 한 끼 진지를 맛있게 드실 수 있음에 새삼 감사가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이 저는 참 좋습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더 높은 뜻을 품게 됩니다. 생각이 아닌 몸으로 살아보고 부딪쳐보아야 허영이나 교만도 벗겨지고 그 높은 꿈을 이뤄갈 수 있겠지요.
 DTS훈련의 목적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이며 그 열매는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때론 아프고 어렵기도 하나 주께서 편히 쓰실 도구로 깎이고 다듬어지도록 저를 더욱 내어드려야겠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주님께 드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 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제 모습이, 주께 드리겠다고 하는 열정과 헌신조차 아이의 작은 도시락처럼 참 부족하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부끄럽고 약하지만 그 작은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일들을 그분이 친히 이루실 것들을 믿고 나아갑니다.
 오늘 누군가를 위해 지은 밥 한 그릇을 통해 따뜻한 사랑을 전할 수 있길, 이곳에 오시는 한 분 한 분을 향한 축복과 기도가 하늘에 열납되어지길, 지금 여기를 깨끗이 쓸고 닦으며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버리고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출 수 있기를 날마다 기도합니다.
 겨울에 갈아엎은 밭에 또 씨를 뿌리겠네요. 씨앗이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가 생명을 살리는 꿈이 여기 저희들 안에 가득합니다. 샬롬.

- DTS 10기 훈련생 조이(김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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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냐고 이야기 합니다.

좋은 직장 내려두고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냐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힘들지도, 대단한 결단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저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더 알고 싶었고 주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에 순종 했을 뿐입니다.

아름다운 이곳에 와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주님의 이름 아래 한가족 되어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주님께서는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보다 많은 것들로 보답해 주셨습니다.

30여년을 살아오면서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명예, 물질, 성공이었습니다.

그것들이 나의 본질이 아니었기에,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내가 중요했기에 세상에서의 나의 삶은 행복함보다는 공허함이 컸고 보다 더 나은 모습의 내가 되지 못한 자괴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의 나는 다릅니다.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고, 주님은 나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 것은 마술이고,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 기적이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변화된 나는 기적의 증거이며, 살아있는 간증이 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영성생활을 배우는 D.T.S 훈련은 별다른 커리큘럼이 없습니다.

모든것이 기도의 삶에서 얻어지는 나의 깨닳음이며, 나의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8시간의 노동, 8시간의 기도, 8시간의 휴식으로 드려지는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온전히 나의 본질에 대면하며,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시간들입니다.

D.T.S 생활의 기본이 되며 힘이 되어주는 하루 세 번의 기도는 - 조도(아침기도)에서의 하루의 다짐과 주님이 주시는 말씀, 대도(점심기도)의 중보기도, 만도(저녁기도)에서의 하루의 성찰과 반성의 시간들,,, - 기도가 삶이며 기본이 되는 삶은 또 다른 나로 변화되어 가는 훈련이며, 영성생활의 근본입니다.

이곳에서의 모든 사람들은 말로만 사랑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함으로, 섬김으로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다일의 영성의 본질은 지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함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지체가 나의 스승이며, 제자입니다.

나의 부족한 모습들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에게 그대로 내보이며, 사랑하기에 서로의 약함을 보듬고 이해하며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다양함을 이해하며 일치된 모습으로 하나되어 나가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다일의 모습 그대로를 살아갑니다.

이 곳에서의 저는 설레임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기적에 체험에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변화된 나의 모습에 감사드리며 또한 변화될 나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DTS10기 훈련생 다윗님(최은헌)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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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10기

모세님을 포함한 지체들과 연탄을 나르며 한컷~~

 

참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너무나도 행복했었습니다. 다일의 직원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기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DTS 를 받기로 하고 온거였지만 온지 2틀만에 이곳이 정말 그동안 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어느 모양으로던지 사역함에 있어서 꼭 알아야 할것, 버려야 할것, 그리고 성장해야 될 부분들을 깨닫게 하시고 조금씩 훈련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어찌보면 참 힘들었을 수도 있을 DTS의 여정이 너무나도 큰 감사와 감격으로 그리고 그분의 이끄심에 놀라움으로 은혜롭게 채워질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받은 은혜와 깨닫게 하신것들이 너무 많아 이곳에 다 담기는어렵지만 DTS 3개월동안 제일 많이 묵상하게 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조금 나눠볼까 합니다.

사랑하기에 섬겨주고, 져주고, 순종하고, 사려깊게 행동하고..그리고 겸손해질수있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 신경쓰고 줍는 것부터 다른이에 대한 사랑인 것을... 내가 안 주으면 다른이가 주워야 하니까, 그 다른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가 줍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이고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나보고 하라는 뜻으로 알자고 하신 김연수 사모님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었는데 저의 깔끔한 정도가 다른사람들보다 낮아서인지 주변환경에 애정과 관심이 덜 가서인지, 사실 눈에 들어오는게 많이 없고 잘 않보였었습니다. 단지 이곳에서 성자되기 첫걸음이라고 부르는 싱크대의 설거지만 어찌나 그렇게 잘 보이던지요..졸려운 밤에 물마시러 내려갔을 때에 보이면.. 아 보지말걸... 혹은.. 그 말씀만 않들었어도.. ㅋㅋ라고 쓱 머리속으로 또다른 내가 불끈 올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 사랑 때문에 기쁘게 할수있던것같습니다. 겉으로는 예전과 같은일을 하며 별 차이없게 보일수 있겠지만, 동기가 다르니 정말 그 일에 임하는 내 마음은 다릅니다. 사랑하기에..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하면 정말 기쁨으로 넘쳐납니다.

이 사랑의 수고가 꼭 육체적인 행위로 할수 있는 것 만은 아닌 생활속 자잘한 일들 가운데 항상 생각하고 실천할수 있는것이었습니다. 삼시세끼 같이 먹으며 일하며 노동의 생활을 함에 있어, 각자 생각과 기준과 개성이 너무나도 다를 때가 많지요. 회의할때, 음식만들때, 노동 방법과 순서를 결정할 때. 이렇게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때, 설사 내가 맞다고 해도 그리고 상대방이 영적권위자가 아니더라도, 혹은 내가 억울해도! 기꺼이 져주고 순종하며 섬길수있습니다.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주며 순종함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머리 누울곳 조차 없이 낮은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겸손을 생각하면 그리고 정말 내가 겸손히 사랑한다면 지체들을 모~든 면에서 섬기는 것이 쉽고 당연하게되겠죠. 교만한 나에게 정말 어렵지만 겸손 겸손 또 겸손 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존경하는 목사님, 사모님, 모세 총무님 그리고 모든 공동체 식구들 그리고 훈련생들을 통해 정말 훌륭한 가르침들을 20대부터 배울 수 있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동물이 되는건 마술이고 사람이 변하는건 기적이라 했지만, 하나님 안에서 조금씩 조금더 나사렛 예수의 영성을 쫒아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기적은 일어날꺼라 믿으며. 진정한 DTS는 또 이제부터 내 하루하루 생활에서 시작됩니다. <DTS 10기 우혜선(해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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