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편지

<13.08.11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영적인 동반자가 있습니까?”

다일공동체 2013. 8. 12. 10:40
<13.08.11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영적인 동반자가 있습니까?”

어젯밤 행복편지를 발송하고나서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정연수 목사님에게 곧바로 답장을 받았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얼마나 깊은 여운을 남기며 제 마음을 울컥거리게 했는지 모릅니다.

“목회자가 자주 겪을 수밖에 없는 빈 가슴과 고독함을 담대함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더욱 더 마음을 추슬러야겠다”는 댓글이었습니다. ...

더욱 더 놀랐던 것은 우리 주님이 던지신 가장 고독한 질문 “너희도 가려느냐?”가 바로 오늘의 설교제목이란 것입니다.

제가 오늘 행복편지에 쓰려고 준비했던 글의 제목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던지신 질문 “너희도 가려느냐?”였습니다. 너무도 놀라워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어젯밤도 계속되는 찌는듯한 열대야로 인해서 무더운 여름밤을 보냈지만, 친구목사와의 영적인 교감에 그만 갑자기 팔뚝에 소름이 쫘악 돋을 만큼 전율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한 절의 말씀을 밤새 되새김질하며 묵상하며 하룻밤을 지새웠습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6:67)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면, 넓고 편한 길을 목전에 두고도 좁고 험한 길을 걷기로 각오한 사람입니다.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우리 주님이 먼저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고 외면당하면서까지 십자가의 길을 끝내 걸어가셨습니다.

주님 가신 길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면, 험한 산길이라도 바다 끝이라 할지라도 그 길이 사명자의 길이라고 확신한다면 죽을 때까지 걸어가야겠지요. 사무치게 외로워도 이 깊은 고독속에서 내 생명이 끝난다고 할지라도...

과연 그 길을 어떻게 가야할지? 누구와 가야할지?는 내가 크게 염려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께서 반드시 영적인 동반자를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보내주신 친구가 없는 삭막한 길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를 심오한 영적인 성숙으로 이끄는 친구들을 이미 주님께서 허락하셨고, 저는 그 친구들을 “도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성의 길을 함께 걷는 반려자라는 말이지요.

인생길에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만 영성의 길을 함께 걸어갈 친구없이 지낸다는 것은 하나님 책임이 아니라 본인 책임입니다.

영적인 여정에 동반자가 없는 사람은 머리가 없는 육신과 같다는 켈트족의 속담도 있습니다. 그만큼 영적인 친구가 소중하다는 이야기겠지요.

또하나 중요한 사실은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름답고도 소중한 우정은 서로에게 집착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친구관계는 가깝다 싶으면 집착하게 되는 위험성에 노출됩니다. 원치않게 친구를 끌어당기거나 친구에게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간에 감사한 마음은 고사하고 도리어 친구를 탓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정연수 목사님은 감리교 목사님이시고, 저는 장로교 목사입니다. 서로 교단도 다르고 출신학교도 다르고 자주 보질 못했고 볼 수도 없었지만, 햇병아리 목사시절에 만나서 오랜세월을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날에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교회의 본질을 밤새워 물으며 함께 고민했고, 사회정의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함께 빈민촌에 뛰어 들어가서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섬김과 나눔을 실천했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결코 잊은 적이 없습니다.

뜨거운 피가 끓어올라 늘 분기탱천했던 젊은 시절부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중년이 다된 정 목사님을 오랜시간 기도속에서 만나니 긴긴세월 얼굴은 보지 않았어도 영적인 동반자가 되어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 드림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살아온 깊은 우정이었기에 한여름 밤에 이런 깊은 영적인 교감도 서로 나누며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짐을 먼저 주님께 감사드리고, 그리고 친구가 되어주신 정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페친 여러분들에게 진정 묻고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친구가 곁에 있습니까?

늘 곁에서 얼굴을 보지 않아도 서로 영적인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며 그 친구를 위해서라면 밤새워 기도하는 것이 언제든지 가능하십니까?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친구를 위해서 목숨은 내놓지 못할지라도 팔 한짝이나 장기를 떼어 줄 수 있습니까?

영적인 동반자가 있습니까?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