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편지

14. 01. 06 ~~ 최 일도 목사의 마음 나누기 ~~ “논쟁을 버리고 직관으로...”

다일공동체 2014. 1. 6. 20:29

14. 01. 06
~~ 최 일도 목사의 마음 나누기 ~~

“논쟁을 버리고 직관으로...”

1. 새벽에 일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는 잠언(4:27) 을 묵상하며 기도하다가 문득 서재에 꽂혀있는 장자의 책을 꺼내 읽었다....

2. 책을 덮고 기도하는데 내면에서부터 터져나오는 비명같은 침묵의 소리가 있었다. 범죄한 아담에게 묻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일도야, 네가 어디 있느냐?”

3. “네, 제가 지금 여기 있나이다!” 선뜻 대답하였지만 계속계속 날선 검으로 폐부를 찌르는 듯 들려오는 음성은 피할 길이 없었다.

4. “네가 어디 있느냐?” 는 질문을 회중들에게 하기만 했지 듣지 않다가 들려오는 음성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숨고 싶었고, 달아나고도 싶었는데 결국은 이 말씀을 붙들고 무릎으로 그분께 나아갔다.

5. 모든 긍정과 부정이 만나는 중심을,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그 중심의 축을 가로질러 당도하여 보니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그 지점에 머물며 묵상 기도를 드렸다.

6. 그제서야 모든 사물과 움직임과 대립과 갈등과 저마다의 주장들이 있는 그대로 들리고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7.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세미한 음성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거센 정치적인 저항이나 타협이나 요구가 아니었다.

8. 그렇다고 무관심도 아니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궁극적 질문이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깨닫게 해주려는 그분의 음성인 것을 알아차렸다.

9.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으려면 정과 욕심을, 이기심과 두려움을 다 내려놓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고독해질 수밖에 없지만 또한 담대해진다는 것을, 처절한 신앙의 몸부림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계속계속 일깨워 주고 있었다.

10. 수많은 사람들과 단체에서 “도대체, 당신은 누구 편이요?” 집요하게 물어오고 있다. 제 편을 만들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에게 이제 단호하게 이 한 마디를 되묻고, 이 한 마디로 응답해주고 싶다.

11.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에게 물으셨던 그 첫 번째 질문을 들어보셨습니까? 소유 세상을 넘어서서 네가 어디에 있느냐? 는 질문을 직관으로 함께 들어보지 않겠습니까?”

12. “그리하여 그대여, 이제는 그 지겨운 논쟁일랑 과감히 버리시기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눈물을 씻어주며 느낌과 직관으로 만날 수 있기를, 진정한 공감언어로 민초들과 희노애락을 나누며 더불어 함께 살기를,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자신부터 실천하실 수 있기를... 아하!!”

道의 중심축

삶이 죽음을 낳고
죽음이 삶을 낳는다
가능한 것이 불가능해지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다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되고
그른 것이 옳은 것이 된다

삶의 흐름이 상황을 바꾸고
그리하여 일들이 저절로 달라진다
그러나 여전히 논쟁하는 자들은
새로운 현실을 알아차리질 못하고
항상 주장해 온 것을 계속 주장하고
반대해 온 것을 계속 반대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자는
논리적인 논쟁으로 이것과 저것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는
직관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직관의 관점은 '나'와 '나 아닌 것'을
동시에 볼 수 있기에...

그래서 그는 모든 논쟁의 양측에
옳음과 그름이 동시에 있음을 안다
또한 그것들이 道의 중심축에
연결되면 옮고 그름이
결국엔 같아진다는 것도 안다
'나'의 한계 안에 갇히질 않기에...

현명한 자가 이 중심축을
깨닫고 받아들이면
그는 원의 중심이 된다.
원주를 따라 ‘예’와 ‘아니오’가
서로를 뒤쫓는 동안
그는 어느덧 중심에 있다

그는 ‘예’와 ‘아니오’가
둘 다 가능한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모든 힘겨루기와 편가르기를
다 버리고 직관으로 영감으로
빛을 발견하며 그 안에 머문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지금이라도 일체의 논쟁을 내려놓고
진정 들을 귀를 갖고 들을 수 있기를,
화해와 일치의 마당으로 나아오기를,
논쟁을 버리고 직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