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편지
“더욱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공감해야!”
다일공동체
2014. 8. 25. 15:10
14. 08. 25
~ 최일도 목사의 마음 나누기 ~
“더욱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공감해야!”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유가족의 요구와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원색적 비난이 서로 대립하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쌀 한 톨 입으로 넘길 수 없는 처절한 단식투쟁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게 “단식하다 죽어라!”라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세월호 참사 자체가 비극이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한 치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 역시 비극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위로와 보호와 치료를 받아야 할... 유가족 당사자들이 해결자요 입법자의 역할까지 요구받게 된 오늘 우리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괴롭기만 합니다.
민주 정치의 대타협도 보여주질 못하고 이지경 까지 몰고온 여야 정치인들 또한 너무도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이 좌절과 절망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화합과 일치를 이룰 순 없었을까? 꼭 이렇게까지 될 일이었을까? 참고 참고 또 참으며 하나님께 무릎으로 나아가 기도해 온 사람으로써 이제는 물어보고 따지고 책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쟁점을 합의로 전환시켜서 공익적 결과를 얼마든지 창출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게 남기에 말입니다. 고인이 되신 강원룡 목사님,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스님 같은 종교계 어른들이 그립고 아쉽게 여겨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대의 어른들이 우리 곁에 계셨더라면 이렇게 까진 안됐을 텐데 하는 이야길 사회의 각계 각층 인사들로부터 너무 많이 듣습니다. 영적인 멘토와 종교 지도자가 존재할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위선과 거짓이 지배하는 비정한 현실 사회에서 사랑과 진실과 자비와 긍휼을 실천하며 중재하며 화합하도록 사회가 인정해 주는 영적 권위가 있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러한 대립과 갈등의 치유 때문 아닙니까?
겸손과 온유를 가르치고 실천하며 화해와 일치의 징검다리 역할을 종교와 종교인이 본을 보이지 않으면 과연 어느 누가 화해와 일치를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경쟁과 미움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서로 손해보는 심경일지라도 먼저 배려하고 양보를 실천하라고 위로하며 때로는 따끔하게 책망하기도 하는 시대의 어른들이 꼭 있어야 할 이유 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사여구로 한 두번 감동하는 말과 글이 아니라 정당과 종파를 초월하는 사랑과 자비의 신앙적인 실천 행위가 너무도 절실한 때입니다. 한국의 고등종교라고 일컫는 4대 종단 종교계 지도자들이 더욱 더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공감해주셔야 희망의 씨앗이 보일 것입니다.
이제라도 현장에 찾아가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고통속에 울부짖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며 아픈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며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야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에 그나마 화해와 일치의 징조라도 보일 것입니다!! 제발 이제라도 더욱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공감해주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 최일도 목사의 마음 나누기 ~
“더욱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공감해야!”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유가족의 요구와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원색적 비난이 서로 대립하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쌀 한 톨 입으로 넘길 수 없는 처절한 단식투쟁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게 “단식하다 죽어라!”라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세월호 참사 자체가 비극이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한 치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 작금의 현실 역시 비극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위로와 보호와 치료를 받아야 할... 유가족 당사자들이 해결자요 입법자의 역할까지 요구받게 된 오늘 우리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괴롭기만 합니다.
민주 정치의 대타협도 보여주질 못하고 이지경 까지 몰고온 여야 정치인들 또한 너무도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이 좌절과 절망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화합과 일치를 이룰 순 없었을까? 꼭 이렇게까지 될 일이었을까? 참고 참고 또 참으며 하나님께 무릎으로 나아가 기도해 온 사람으로써 이제는 물어보고 따지고 책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쟁점을 합의로 전환시켜서 공익적 결과를 얼마든지 창출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게 남기에 말입니다. 고인이 되신 강원룡 목사님,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스님 같은 종교계 어른들이 그립고 아쉽게 여겨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대의 어른들이 우리 곁에 계셨더라면 이렇게 까진 안됐을 텐데 하는 이야길 사회의 각계 각층 인사들로부터 너무 많이 듣습니다. 영적인 멘토와 종교 지도자가 존재할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위선과 거짓이 지배하는 비정한 현실 사회에서 사랑과 진실과 자비와 긍휼을 실천하며 중재하며 화합하도록 사회가 인정해 주는 영적 권위가 있어야 할 이유가 바로 이러한 대립과 갈등의 치유 때문 아닙니까?
겸손과 온유를 가르치고 실천하며 화해와 일치의 징검다리 역할을 종교와 종교인이 본을 보이지 않으면 과연 어느 누가 화해와 일치를 위한 징검다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경쟁과 미움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서로 손해보는 심경일지라도 먼저 배려하고 양보를 실천하라고 위로하며 때로는 따끔하게 책망하기도 하는 시대의 어른들이 꼭 있어야 할 이유 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사여구로 한 두번 감동하는 말과 글이 아니라 정당과 종파를 초월하는 사랑과 자비의 신앙적인 실천 행위가 너무도 절실한 때입니다. 한국의 고등종교라고 일컫는 4대 종단 종교계 지도자들이 더욱 더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공감해주셔야 희망의 씨앗이 보일 것입니다.
이제라도 현장에 찾아가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고통속에 울부짖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며 아픈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며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야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에 그나마 화해와 일치의 징조라도 보일 것입니다!! 제발 이제라도 더욱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공감해주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