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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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0/02/01/201002010500000/201002010500000_1.html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일도·김연수 목사 부부, 마가스님, 권도갑·양경희 교무 부부.

한국은 1위 국가다. 자살률과 보행자 교통사고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위를 차지하고 주당 노동시간, 국민 1인당 술 소비량, 간암 사망률, 청소년 유해사이트 접속률과 흡연율, 이혼율과 저출산율, 1인당 화장품 소비량, 인구대비 성형수술 등도 전세계 1위다.

이러한 통계는 우리 국민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부지런히 일해 압축성장으로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을 겪은 개인과 가정은 해체되고 술이나 담배나 인터넷, 외모에서 위로를 받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마음을 달래려 수련 프로그램을 찾는 이가 늘어나지만 특이한 체험만을 강조하거나 폐쇄적인 단체들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수도자나 성직자를 중심으로 수행을 하던 각 종교에도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을 개척한 사람들이 있다. 권도갑(60) 원불교 교무, 충남 천안 만일사 주지 마가(50) 스님,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53) 목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을 만나 영성수련과 마음공부의 프로그램을 체험해보았다.

▶▷ 권도갑 원불교 교무 - 출가 후 재회한 아버지를 통해 깨친 마음공부

권도갑 교무.

권도갑 원불교 교무는 1972년 부산 동아대를 졸업한 후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출가했다. 원광대 원불교학과와 동국대 불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서울 돈암교당 부교무로 시작해 인천 부평교당, 서울 도봉교당 교무를 지냈다. 지금은 부인인 양경희 원광보건대 교수와 ‘행복가족캠프’ 프로그램을 지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3월부터 직장인이 참여할 수 있는 3개월 과정의 마음공부시민대학을 개설할 계획이다.

행복가족캠프 프로그램은 부모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감정의 주인 되기, 나와의 만남 등 4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분위기는 자유로운 편이며 프로그램 사이에 노래와 가벼운 율동을 섞어 마치 레크리에이션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프로그램 진행 중에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첫 화두는 ‘나를 가장 괴롭힌 사람이 가장 고마운 사람이다. 왜 그럴까’다. 이 화두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가장 괴롭힌 것은 부모나 배우자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든 생각임을 깨닫게 한다.

1월9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있는 하이원빌리지 지하 2층 강의실에서는 행복가족캠프에 참가한 40여 명이 노트를 펴놓고 왼쪽에는 ‘부모님의 문제점’을 쓰고 오른쪽에는 ‘나의 문제점’을 열심히 쓰고 있었다. 상당수가 부모의 문제점은 쉽게 쓰지만 그 문제점이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인정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조별 대화 시간이 되자 돌아가면서 부모에 대한 아픈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매 맞은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 프로그램의 출발이 부모님인데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까.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는데 늘 화를 내셨어요. 퇴직 후 사업에 실패하고 난 뒤에는 가족들에게 더 화를 내셨죠. 그래서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어요. 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상사와 자주 부딪쳤어요. 마음이 괴로워 제 살길을 찾고 싶어서 29세 때 원불교로 출가했어요. 아버지가 싫어서 집을 떠났는데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는 부모님을 신앙처럼 받들어 모시라고 하니 참 힘들더군요.”

▼ 아버지와의 불화가 화두가 된 셈이군요.

“그렇죠. 오랫동안 제 내면을 성찰하면서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것은 저 자신의 문제이지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출가한 지 3년 만에 아버지에 대한 참회의 기도를 올리고 용서의 편지를 보낸 뒤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다시 만난 아버지의 표정이 환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가 변했다고 하니까 가족들이 저보고 변했다는 겁니다. 그때 아버지는 비로소 자신의 아픔을 말씀하셨어요. 아버지가 한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새할머니 밑에서 늘 사랑에 목말랐는데 자식인 우리만 몰랐어요. 화를 내신 것은 당신의 마음을 안아달라는 것이었죠. 그것을 깨닫고 엉엉 울었어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지요. 부모를 잘 만났으면 자기 인생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라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면 해법이 없습니다. 티베트의 선사 등 선각자 중에는 자신이 깨치기 위해 살림이 가난한 부모를 일부러 택해서 세상에 왔다고 말하는 분도 있죠.”

부부 관계가 나쁘면

▼ 마음공부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2007년 6월말 ‘우리시대의 마음공부’ 책을 내고 교보문고 주최로 전국 투어 특강을 했는데 기왕이면 사회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시작했어요. 반응이 좋아서 현재 26차까지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부부프로그램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가족프로그램으로 바뀌었어요.”

▼ 금슬이 좋은 부부도 여기에 들어올 필요가 있습니까.

“꼭 특별한 문제가 있는 부부라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문제가 없는 부부는 없습니다. 부부는 만나야 될 인연이 만난 것인데 그것을 보지 못해요. 배우자를 변화시키려고만 하지요. 배우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이 배우자가 정말 좋은 선물이구나 깨닫게 됩니다. 혼자서 명상을 하면 관념에 빠지기 쉬운데 관계 속에서 자기 성찰을 하면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게 됩니다.”

▼ 권 교무님은 결혼 전에 여러 가지 수행을 한 것으로 아는데 결혼 후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부처님도 고행을 그만두고 깨우침을 얻었어요. 저도 결혼을 안 하고 오랫동안 수행을 해봤는데 몸만 지쳤어요. 39세에 결혼했어요. 아내가 저보고 당신은 나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농담해요. 축구를 좋아했는데 출가하면서 모든 취미생활을 다 버렸어요. 세상과는 절연했는데 결혼 후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겁니다. 소태산 대종사도 가정을 가지고 나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구도 개념은 집을 떠나서 산속으로 들어가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인데 이분은 관계 속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겁니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이라고 하셨죠. 내 앞에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진정한 부처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 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아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운이 좋고 기가 세서 성공해도 어느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한번 지켜보세요. 타이거 우즈가 좋은 사례죠.”

▼ 사이좋은 부부도 시간이 지나면 열정은 식고 자식 낳은 정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새로움을 느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들은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無常)의 진리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또 보면 어제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관념인데 사실로 보는 거지요. 인간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새롭게 보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70대 노부부가 다음날 아침에 ‘처음 뵙겠습니다’면서 서로 인사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

▼ 가족 프로그램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여성들은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그때부터 남편을 멀리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아이를 놓습니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에게도 문제가 생깁니다. 남편을 제자리에 놓으면 아이도 건강해집니다. 남편이 아내의 에너지를 못 받으면 나가서도 초라해지고, 에너지를 받으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또 남편이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 가족을 희생물로 생각하면 여기서도 온갖 문제가 나옵니다.”

▼ 감정의 주인 되기 프로그램에서 ‘모든 감정은 좋은 것’이라고 했는데 분노나 화도 그런 겁니까.

“몸과 마음의 주인이 나인데 그 주체를 자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분노도 참을 때 독이 되지, 분노를 제대로 자각하고 표현하면 축복이 됩니다. 화내는 것은 비인격적이고 참는 것이 수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상대편에게 ‘내가 이래서 화가 납니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상대편이 반성하거나 연민을 느낍니다. 자기가 왜 화를 내는지 자각도 못하고 그대로 벌컥 내던지면 상대편도 맞받아치지요.”

▼ 마지막 프로그램인 ‘나와의 만남’에서는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최고의 존재로 깨닫게 합니다. 자기를 긍정하는 것은 좋지만 사회생활에서 패배한 ‘약자의 처세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누가 승자고 누가 패배자인지, 누가 강자고 누가 약자인지도 생각의 틀에서 나오는 겁니다. 약자 속에도 강한 것이 있고 강자 속에도 약한 것이 있습니다. 잘못된 생각으로 자존감이 추락한 사람일수록 인간관계 갈등이 심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가치는 자신이 결정하므로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라’는 겁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 1박2일 동안 체험담을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부모님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며 감격하는 사람도 있었고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며 좋아하는 아내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 아직까지 혼란스럽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권 교무 등 프로그램 진행자와 참가자들은 그런 발언에 대해 어떤 사족도 달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이별의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 마가스님 -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은 단순명료한 자비명상

마가스님.

마가스님은 1985년 도선사에서 현성 스님을 은사로 계(戒)를 받고 1990년 중앙승가대 복지학과를 졸업했다. 마곡사 포교국장 재임시 처음으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실시했으며 현재 충남 천안 만일사 주지로 있다. 중앙대 겸임교수로 ‘내 마음 바로보기’ 강의를 하고 있는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사찰, 대학, 기업, 교도소 등지에서도 ‘자비명상’ 프로그램을 지도하고 있다.

마가스님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기쁨공동체’에 들어가면 각종 자비명상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쉽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 속에 묘한 감동이 있다. 지난해 4월 동국대 CEO 과정에서 행한 마음 다스리기 과정을 보면, 양손의 엄지 검지로 네모 모양의 사진기 틀을 만들어 찍게 한다. 처음에는 좁게 네모 모양을 만들었다가 점점 네모 모양을 크게 해서 나중에는 네모 모양 자체를 없애도록 한다. 무심결에 장난스럽게 따라하던 이들도 이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 크기를 상징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마가스님이 중앙대에서 하는 강의는 인기가 좋아 수강생이 집중적으로 몰린다. 지난해 12월11일 오전 11시 중앙대 강의실은 종강에 참석하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도시공학과 4학년 강영모군은 “이 강의를 통해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이제까지 편지를 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부모님 답장을 받게 되니까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강의는 어떻게 진행합니까.

“자기 마음속의 응어리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긍정명상부터 합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기억이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달리기라도 1등 했으면 그런 기억부터 먼저 찾게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미워하면 남과 세상이 모두 미워지거든요. 추운 겨울에는 꽃이 피고 싶어도 주위 공기가 차가워 필 수 없어요. 봄이 돼야 자연스럽게 꽃이 피지요. 이 프로그램은 그런 따뜻한 분위기,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게 스님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절 생활을 체험해 깨달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지요. 발우공양 할 때 쌀 한 톨을 학생들에게 갖다주면서 대화를 하게 합니다. 볍씨가 논에 떨어져 여기에 올 때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적게 합니다. 보통 88세를 미수(米壽)라고 하는데 쌀 ‘미(米)’자를 쓰는 이유를 제 나름대로 해석하면 쌀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공기와 물과 농부의 손길 등 88번의 은혜를 입었다고 보는 거지요. 그러고 나서 발우공양하면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마음의 주인이 되는 길

▼ 자비명상 프로그램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감정을 뱉어버리면 마음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생기는 감정을 살펴보고 반응하면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치유되지 않는 한 남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교재에 보면 자기 인생 곡선 그리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때 고통스러웠는지 쓰게 합니다. 자기 인생의 드라마에서 마음의 노예처럼 살지 말고 삶의 주인공이 되라는 겁니다.”

이처럼 단순한 명제에 도달하기까지 겪은 마가스님의 인생역정은 간단하지 않다. 그는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유머스럽게 펼쳤다.

“어머니가 막내인 저를 임신한 지 7개월 됐을 때 ‘잘생긴’ 아버지를 어떤 여성이 몰래 스카우트해버렸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는 아버지가 옆에 계시지 않았지요. 중학생 때까지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광주에 사시던 아버지 댁으로 들어갔어요. 그때부터 ‘멋진’ 인생이 펼쳐졌습니다. 학교 성적은 꼴찌에다 친구들과 싸워 경찰서에 들락거였어요. 아버지를 괴롭히는 묘한 쾌감을 느꼈어요. 21세 때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복수로 자살을 결심하고 광주에서 강원도 오대산까지 38일을 걸어 도착한 뒤 수면제를 먹었어요. 사흘 만에 눈을 뜨니 월정사 절방이더군요. 노스님이 저를 보고 ‘자네는 다시 태어났네’ 하는데 하느님 음성처럼 들렸어요.”

▼ 그전에는 불교와 인연이 없었습니까.

“한때 교회에 다녔어요.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요. 갈 곳도 없어 행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스님들의 생활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태백과 장성 등 탄광을 전전하며 만행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성질이 날카로웠어요. 등산객이 절 마당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나가면 따라가서 다시 줍게 했어요.”

▼ 겉모습만 스님이었군요. 어떻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까.

“인도 여행을 맨발로 6개월 동안 했는데 나름대로 특별한 체험도 있어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나름대로 법거량을 하려고 큰스님들을 찾아갔는데 만나주질 않아요. 그런데 태안사의 청화 큰스님이 ‘자네는 출가 전에 어떻게 살았는가’ 한마디를 던지시는데 그 순간 가슴이 턱 막혀요. 아버지에 대한 미운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저 밑바닥에 눌려 있다가 가슴으로 다시 올라온 겁니다. 한 달 반 동안 큰스님 곁에 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데 은연중에 자비심을 느꼈어요. 그런 어느 날 내 입에서 ‘아버지 고맙습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면서 엄청난 눈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 후에는 등산객이 절에 담배꽁초를 버리고 가면 제가 주워 담았어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감사로 바뀌면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거예요.”

50년 만에 화해한 부부

어린이같이 천진난만한 마가스님의 사인.

▼ 자비명상은 불교 전통의 간화선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불교계 일각에서는 저보고 간화선을 하지 않고 자비명상을 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자비명상은 간화선을 하기 전에 하는 예비수행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초보자가 간화선을 하는 것은 한글 자모도 배우지 않고 바로 작문을 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스님 같은 수행자 역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몇 십 년을 수행해도 고생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리, 즉 깨달음에 싹이 트기 위해서는 자비라는 바탕이 필요합니다. 한국 불교가 깨달음 지상주의인데 득도(得道)는 바로 자비입니다. 일반인은 자비명상만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 고통이 반드시 나쁜 겁니까.

“고통은 행복해지기 위한 소스(원천)입니다. 고통을 당하지 않고는 행복을 모릅니다.”

▼ 그렇다면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삶 아닙니까.

“일상생활에서는 마음속에 쌓아두는 것보다 표현해버리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상에서는 감정이 폭발하기 이전의 마음, 말하기 이전의 마음은 어떤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에서 감정을 그냥 표현해버리면 자기도 다치고 상대편도 다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자각하면 그런 일은 없습니다.”

▼ 마음은 뭡니까.

“신기루입니다.”

▼ 그 신기루에 에너지가 있습니까.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에 자꾸 에너지를 넣으면 화가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해요. 명상은 이쪽으로 오는 에너지를 저쪽으로 가져가는 겁니다. 에너지가 빠진 화는 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불가에서는 성공설(性空說)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비어있고 거기다 무엇을 채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을 채우느냐 선을 채우느냐는 내가 결정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부부나 가족을 위한 자비명상 프로그램도 있는지 물었다. 그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얼마 전 자신의 가족을 위해 행한 치유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지난해에 50년 만에 아버지가 어머니께로 돌아오셨어요. 어머니가 받아주긴 하셨는데 아버지가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으니까 어머니는 속상하셨죠. 그래서 두 분이 다투시다가 어머니는 제가 있는 절로 들어오셨어요. 2주 전에 어머니 팔순을 맞아 가족들을 모두 절로 초청했어요. 업(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아버지 눈을 손수건으로 가린 뒤 ‘무조건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았는데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 후 아버지께서 일어나셔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삼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 길로 두 분이 손잡고 내려가셔서 잘살고 계십니다.”

▶▷ 최일도 목사 - 밑바닥 인생으로부터 내공 다진 강렬한 영성수련

최일도 목사.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는 서울 청량리역 부근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밥퍼 목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회봉사활동 못지않게 영성생활수련 지도자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기 가평군 설곡리에 있는 다일영성생활수련원에서 현재까지 8000여 명이, 미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베트남 등 해외에서는 1000여 명의 교민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정치인, 공직자, 예술인, 전문직 종사자도 많이 다녀갔다. 2007년 8월 연극배우 윤석화씨가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았다”고 허위학력을 고백한 것도 영성수련 프로그램 참여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 목사가 수녀 출신인 아내 김연수씨와 함께 진행하는 영성수련프로그램은 모두 3단계로 구성돼 있다. 1단계는 아름다운 세상 찾기. 참가자들이 4박5일 동안 침묵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고 자아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프로그램이다. 대화는 오로지 프로그램 진행자와만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화가 날 일입니까’ ‘네가 어디 있느냐’ ‘싫은 것입니까’ ‘정죄할 일입니까’ 등이 성찰의 ‘핵심물음’이다.

1996년 시작한 영성수련프로그램은 1월18일 현재 118회를 기록했다. 해외 프로그램은 200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시작했다. 지난해 12월11일 오후 서울 청량리역 인근의 다일천사병원에서 만난 최 목사는 애틀란타에서 귀국한 지 채 하루가 안 됐는데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진지 알아차리기

▼ 해외의 영성수련프로그램은 국내 프로그램과 다릅니까.

“기본 골격은 같지만 지역별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을 약간 변화시킵니다. 유럽 지역은 유학생이 많아 지적인 측면을 고려합니다. 미국에서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식을 직접 만들어줬더니 ‘진지 알아차리기’ 프로그램에서 큰 감동을 받아요. 미국은 음식이 풍족하니까 많이 남기는데 식사할 때 가져간 음식을 모두 먹게 하고 마치 세척한 접시처럼 되가져오라고 했더니 ‘충격’을 받는 동시에 밥과 음식에 담긴 깊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요. 김지하 시인도 ‘밥이 하늘이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생명이 생명을 살리는 겁니다. 밥을 먹어야 살지요. 이 보이는 생명의 양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아차리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입에 넣기만 했지요. 밥상 위에 놓인 음식은 산과 바다와 들에서 자란 생명들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바쳐진 거죠.”

최 목사가 진행하는 영성수련프로그램 중 신혼시절 아내가 싫어하는 지렁이를 놓고 말다툼을 벌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싫은 것입니까’라는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고착된 관념에 얽매인 것을 풀어주는 과정이다. 참가자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물음은 ‘누구의 것입니까’다.

“자기가 가진 재산, 소중한 물건 등을 놓고 누구의 것인지 성찰하게 하면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눈치 빠른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얼른 ‘정답’처럼 말하는데 그 물음의 목적은 소유의 차원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기에 그런 사람일수록 큰 충격을 경험합니다. 특히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당신 아들이 누구의 것입니까’라는 질문만 던져도 도전과 충격을 받습니다. 자식에 집착하면서 마음고생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일찍 아버지를 여읜 최 목사는 청소년기에 많은 방황을 한 끝에 영성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장로회신학대학에 입학한 뒤 유학을 꿈꿨다. 최 목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1988년 청량리역 앞에 쓰러진 노인의 눈빛이었다. 이 노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무의탁 노인들과 노숙자들에게 봉사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영성수련에 대한 이론뿐만 아니라 더 깊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30년 전부터 저와 아내는 그림 같은 초원에 공동체를 세우고 영성수련을 하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청량리 밑바닥으로 저희들을 내몰면서 막장 인생을 체험하게 했어요. 섭리지요. 밑바닥 인생에서 CEO까지, 말단공무원에서 대통령까지, 이등병에서 군 장성까지 두루 만나게 해준 겁니다.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을 통해 누구와도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겁니다.”

▼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입니까.

“청량리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가 가장 절망적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좌절해서 용문산으로 올라가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몸부림치다 거의 실신해 죽게 되었을 때, 밥 냄새에 의식이 깨어나 기어가 보니 한 노인이 밥을 짓고 있었어요. 좀 달라고 했더니 그 노인이 ‘젊은 놈이 늙은이가 한 밥을 그냥 얻어 먹으려 한다’고 호통을 치면서 ‘청량리에 가서 최일도 목사를 만나 자원봉사를 하고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 노인을 통해 ‘청량리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겁니다. 최일도를 그냥 쓰시기에는 모난 데가 많으니까 정으로 쪼고 대패질을 하신 겁니다.”

강원용 목사가 부러워한 영성운동가

▼ 개인적인 고통이 영성수련프로그램에 반영되어 있습니까.

“한때 아내가 지친 나머지 정식으로 이혼하자고 두 번이나 요구했고 어머니와 아들은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창피하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큰 절망에 빠져 겪은 아픔이 영성프로그램 안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란 함께 생활하면서 생긴 거니까 함께 풀어보자는 겁니다. 영성수련프로그램을 통해 이혼하고 헤어졌던 사람들도 이렇게 헤어져서는 안 된다며 화해를 합니다. 가장 많은 경우가 아들이 아버지를 용서 못해 괴로워하다가 화해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던 아들이 프로그램 마지막 날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장면을 수백 번 보았습니다.”

▼ 다른 종교에서도 영성수련과 유사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체험해봤습니까.

“그런 프로그램들이 유행하기 전부터 다양한 영성수련프로그램을 거의 모두 해봤습니다. 그러나 저는 종교다원주의자는 아닙니다. 다른 종교의 수련전통과 다양성은 존중하되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진리를 믿고 그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 불교의 참선 수행이나 명상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불교의 참선이 자신의 수행을 통해 스스로 부처가 되는 과정이라면 기독교 영성수련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출발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일치를 향해 가는 과정이죠. 이것을 체험하게 되면 내가 하나님을 붙들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일반인이 4박5일이라는 시간을 내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는데, 주말을 이용한 단축 프로그램을 개설할 생각은 없습니까.

“4박5일 프로그램 자체가 정수를 모은 겁니다. 줄여서 한번 해봤는데 효과가 나지 않아요. 그래도 주말 시간을 이용하는 분들을 위해 주말에 두 차례 나눠서 하는 프로그램을 올해 5월부터 실시할 예정입니다.”

수녀원에서 영성수련을 받은 적이 있는 최 목사의 부인 김연수씨는 고(故) 강원용 목사가 운영하던 ‘크리스찬아카데미하우스’에서 개신교 목사들을 대상으로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4년동안 실행한 경험이 있다.

이런 인연으로 최 목사를 알게 된 강 목사는 생전에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나는 ‘밥짓는 시인’ 최일도 목사처럼 살고 싶었다. 그러나 머리와 생각만으로 그랬다. 다일공동체에는 내가 본받고 싶었던 성 프란시스코와 일본이 낳은 거리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의 영성이 모두 함께 녹아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말한 강 목사도 한때는 최 목사를 아내만 고생시키는 ‘이상주의자’라고 오해했다. 나중에야 한국교회를 맑게 살리는 ‘영성운동가’로 인정한 것이다.



안기석│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daum@donga.com│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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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겸비 2011.12.05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하여 주소서.

  2. sj 2011.12.05 1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을 다스린다는것-

  3. Sandule 2011.12.06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공부...
    나도 갈길이 멀고, 멀다~~

  4. shine 2011.12.06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마음을 잘 알고 내면의 소리에 잘 귀 기울이는 시간, 다양한 마음의 주인이 있지만 지금내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지 잘 알아차려봅니다...

  5. 질기 2011.12.06 2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빵(밥)이다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온 삶으로 입증하신 이 시대의 진정한 영성가!!

한동대와 다일영성수련회

                                                           
                                                       유 장춘
           (한동대학교 사회복지학교수/청하교회 협동목사)

그 때 나는 군중 속에 섞여서 흐느끼고 있었다.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의 어깨가 바라보이는 곳, 아아! 그 고독한 옆모습, 거기서 나는 왜 예수님과 함께 옆에 서 있어 드리지 못할까!’ 라고 탄식하며 눈물만 삼키고 있었다. 문득 예수님의 고개 숙인 얼굴이 내 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그 입가에 미미하게 떠오르는 미소를... 그리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신 그분의 마음을 분명히 눈치 챌 수 있었다. 그 미소와 함께 나는 모든 슬픔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래, 예수님이 나의 마음을 알아 주셨어. 그러면 됐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야말로 예수님과 내가 주고받은 그 시선과 미소 속에서 존재와 존재가 연결되는 것을 경험한 것이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여러 시간 울고 또 울었다. 설곡산에서 있었던 다일공동체 영성수련 하나님과 동행하기수련 중에서 예수님의 빌라도 법정을 기록한 마가복음 15장을 묵상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이다.

그 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누구와도 사랑의 관계를 맺으리라 작정했고, 공동체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으며, 스스로 가난해지길 결심했다. 이제 내 삶은 더 이상 내 삶이 아니고, 내 소유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 것에 대하여 뭔가 글로 써서 남겨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쓸 수는 없었다. 그 감격과 기쁨이 글로 표현되기에는 너무 강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나 할까... 여러 번 쓰고 싶었던 말들, 그러나 막상 쓰려고 하면 망설여지곤 했던 생각들, 그냥 그런대로 놔두고 싶었던 기억의 편린들을 다시 꺼내어 쓰려고 하니 또 다시 막막해진다.

그 겨울날 온몸에 쏟아지던 햇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던 바람, 사방에 가득했던 적막, 발밑에 바스락 거리는 낙엽, 너무나도 진지했던 존재의 근본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깊은 침묵과 함께 내 마음에 애잔히 흐르던 그 고백들... 사방에 둘러싼 모든 것이 예리한 의식의 날카로운 의미로 다가오던 그 때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기억의 가장 초기부터 나는 목사의 아들로 자라났다. 그 많은 배움의 과정들 속에서 알고 깨달은 것들은 사실 생각의 영역 속에 갇혀 있었다. 다일공동체 영성수련회 아름다운 세상 찾기에서 아내와 함께 참여했던 나는 여러 사람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많은 눈물과 함께 아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를 되찾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동료들을 찾았고 그리고 아름다운 나 자신을 찾았다. 왜 살지? 뭘 위해 살지? 어떻게 살지? 그 질문들에 대한 생각들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끌어내리고 나는 자유를 경험했다. 이미 배워서 잘 외우고 있었던 것들,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지만 아직도 그것들은 머리에만 담겨 있던 것들이었다. 50이 넘어선 나이, 이제야 그 본질을 향한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오고 가는 세월 속에서 오직 의미 있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순간들이다. 영원하지 않은 그 무엇도 한 순간과 같이 사라지는 것들일 뿐이다. 이 우주조차도 영원하지 않기에 잠시 쓰다가 망가지면 버려지는 장난감과 같은 것이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들만 영원한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갈 것이다.

설곡산다일공동체 영성수련원으로 가는 길은 나에게 있어서 그 영원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 곳에서 얻은 나의 마음을 시 비슷한 것으로 표현해 보았다.

 

그렇게 살고 싶다.
 

좋은 일을 하고도 이름을 내지 않고

선한 일을 하고도 얼굴 들어내지 않으며

큰 업적을 이루어도 공을 내세우지 않고

위대한 깨달음을 얻어도 깊이 침묵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많은 돈을 벌어도 가난하게 살며

높은 지위에 올라도 소박하게 살며

권위 있는 자리에 앉아도 친절하게 대하고

나이가 많아져도 어린애처럼 순진한

그래, 그런 삶을 살고 싶어.

 

모욕을 당해도 미소를 잃지 않고

억울해도 변명하지 않으며

늦어도 조급하지 않고

빼앗겨도 아까워하지 않는

그렇지, 그런 삶을 살아보자!

 

바위처럼 견고하게

물처럼 자유롭게

햇볕처럼 따듯하게

바람처럼 시원하게

별처럼 영롱하게

그래!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거야!

 

한 세상 사는 것 부질없다 하지만

이왕 한 번 사는 것 그렇게 살고 싶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어찌 그리 모자란지

부끄러워 후회하며 또다시...

그렇게 살고 싶다. 

                              (2009년 겨울 설곡산에서)


Posted by shine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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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겸비 2011.12.05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다른 사람의 시선 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이로 사는 것..
    외롭고 고독하지만 그래도 가는 것

  2. Sandule 2011.12.06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은 모욕을 당해도 웃을 수 없지만...
    마음을 비워 나가며...

  3. shine 2011.12.06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참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생각납니다. 아굴이 이야기 합니다..."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4. sj 2011.12.06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높이 솟은 산이되기 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멋진 시 감사합니다! :)

  5. 질기 2011.12.06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장춘교수님, 글 읽으며 감동 많이 받았습니다. 그 깊은 은혜를 글로 풀어낼 수 없음에 대하여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 표현하신 것, 잘 전달이 되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6. shanti 2011.12.06 2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신 교수님, 존경합니다. 깨달음이 머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이어질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이지요.

  7. 싼옹 2011.12.09 0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군가를 정죄합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판결합니다.
    마치 나는 결백하고 죄없고, 흠 없는것 처럼....
    오늘도...

  8. 임현숙 2013.10.07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혜받았습니다

  9. 임현숙 2013.10.16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리라고 자신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끝까지 이기는 자로 남을 수 있을까 매순간 두렵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 목회자의 눈으로 본 다일영성수련회 
                                                     _다일교회 담임목사 김유현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저는 현재 다일교회 2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김유현 목사입니다. 
저의 출신과 학력배경은 조금 다양하고 재미있습니다. 대학은 고신대에서, 신대원과 목사안수는 합동교단 총신에서, 현재 목회사역은 통합교단에서 하고 있습니다. 또 목회를 하기 전 6년간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캠퍼스간사로 섬기기도 했습니다.
저의 이런 다양한 신학과 신앙배경의 경험이 수년전 다일공동체와 만나면서 머리의 신학이 가슴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요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이전부터 알고 있던 ‘다일’은 청량리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밥을 퍼주는 기독교 구제사역의 대표적인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다일공동체와 만나면서 이분들 안에 깊은 기독교 영성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나 헨리누엔의 책에서만 맛보았던 기독교 고전의 영성이 공동체의 예배와 노동과 섬김 속에 온전히 녹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큰 도전과 감동을 준 것은 ‘다일영성수련회’이었습니다.

2008년에 105기로 다일영성수련회에 아내와 함께 참여하면서 저희 부부는 기독교 영성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허락하셨는지를 저의 지, 정, 의 전 인격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마음에 모든 두려움과 정죄와 비교가 사라진 참 자유와 평안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다가 주님 앞에 가야할 지도 분명히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일복지재단의 사무국장과 밥퍼 본부장으로 일했고, 2010년에 최일도 목사님의 후임으로 다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담임목사가 되어 목회를 해보니, 이 다일영성수련회를 통해 교회가 너무나 큰 유익을 경험한다는 것을 또한 실감했습니다.

교인들을 심방 해보면 가족들 중에 마음의 오랜 상처나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새가족이나 성도들 중에도 이런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성도에겐 궁극적인 해결이 됨을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엔 전문적인 기독교 상담치유사역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전문치유상담을 받도록 권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런 치유사역에도 한계가 있음을 봅니다. 특히 믿지 않는 가족들에겐 그런 권면 자체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일영성수련회는 이 점에서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되고, 접촉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누구에게나 있는 정체성의 문제, 상처와 화의 문제를 다루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합니다. 이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정도 성경적인 대답을 바로 제시하지 않고, 일반은총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시작하여 특별은총의 기독교 복음으로 연결해 갑니다. 그래서 다일영성수련회 마지막 날엔 참석자들에게 성경공부를 통해 깨달음의 결론을 내리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없는 분들이 다일영성수련회를 참석하고서 자기 내면의 문제를 해결받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교회를 나와서 지금까지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많으며, 다일교회에는 그런 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예수믿으라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좋았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는 우리같은 비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이 없도록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였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다일영성수련회 이후에 스스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하며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다일영성수련회가 직접적으로는 복음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 중심은 얼마나 복음적인가 하는 것을 증명한다 하겠습니다.

 최근에도 한 여집사님과 남편이 다일영성수련회를 다녀온 이후, 오랫동안 교회에 발길을 끊었던 남편이 그 다음 주일 스스로 교회를 나오셔서 등록하고 자녀들까지 너무나 행복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을 봅니다. 또 부부간의 큰 갈등으로 이혼 위기까지 갔던 가정들도 이 다일영성수련회를 통해 치유되고 회복되는 일도 많이 봅니다.

 

이 귀한 사역을 위해 교회 담임목사직까지 내려 놓으시고 헌신하시는 최일도 설립목사님이 너무나 고맙고, 다일교회의 목회사역과 다일영성수련회 사역이 함께 좋은 동역의 관계로 계속해서 성도들에게 큰 유익이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다일영성수련회] 교회의 큰 부흥을 가져온 다일공동체 영성수련회                          _파리선한장로교회 성원용 목사

 

 

다일영성수련회를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며 축복이었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를 통해서 나는 내 마음에 있는 돌과 잡초를 제거함으로 주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서 열매를 맺도록 마음 밭을 기경하는 경험을 했고, 목회의 위기를 적절하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입었으며, 행복하고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02년에 파리선한 장로교회를 개척하고 2년 반 동안 무탈하게 목회하며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10명이 모여서 시작된 교회였지만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로 1년 안에 주일 출석 130명이 넘어섰고, 파리 교민 사회에도 좋은 소문이 났고, 교인들도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회는 35년이 힘드니 그때를 잘 넘어가야 한다.”는 어느 선배 목사님의 조언처럼, 교회 개척 3년이 될 즈음에 파리선한교회와 나의 목회에도 위기가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주도하려는 사람들, 과거에 목회자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목회자에 대해서 불신과 비판으로 일관하는 사람들, 마음이 변해서 다른 교회로 옮겨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들, 권유와 설득에도 교회생활 깊숙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교회가 사랑이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목회가 혼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상황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내 마음에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성도들과 배신하고 떠나는 성도들을 위해서 넉넉한 마음으로 축복하고 기도해주고 품어줄 수 있는 여유보다는 그들을 향한 서운한 마음과 분노가 내면을 채우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밤잠을 이룰 수 없었고 심혈관질환이 발생했고 성격도 날카로워지고 있었습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에 최일도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 부흥집회를 인도하시게 되었습니다. 부흥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대 성황을 이루었고, 집회 기간에 성령님께서 우리 교회를 어루만지셨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그때 다일영성수련회를 소개 받게 된 것입니다. 나는 지체 없이 설곡산을 찾았고, 다일영성수련회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 2단계 작은 예수 살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수련회 기간에 계속되는 침묵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계속 말만 하며 살던 내가 모든 말을 멈추고 며칠을 지냈다는 것도 기적이며 그때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와 내면 깊은 곳에 들려주시는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은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내면의 분노를 털어내며 자유를 얻게 되었고 비로소 성도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일체은혜 감사,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지만,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너무나도 높은 이상이라고 여겼는데, 그 고지를 향해서 다가가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자, 변화된 내 모습에 성도들이 기뻐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유지되겠느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계속되었고, 어떤 상황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도 쉽게 털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몸의 건강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마음도 점점 안정과 행복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목회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고, 교회는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해 최 목사님께 요청하여 제 1차 유럽 다일영성수련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본원을 떠나서 하는 최초의 시도이며 유럽의 상황이 특수한지라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1년 동안 기도하며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수련회는 대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성도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수련회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셨고 가정들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수련회를 통해서 성도들이 충성스럽고 선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로 변화되어갔습니다. 시간마다 성령께서 인도하셨고, 어루만지셨고,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나는 다일영성수련회를 목회에 적극적으로 적용하였습니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가진 경우가 많기에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기도 힘들고 건강한 신앙생활도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유럽 다일 영성수련회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는 매년 계속되었으며, 해마다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참가하여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는 유럽 각국에서 수련회를 찾아오고 있으며, 우리 교회에서는 필수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특히 교회의 중직을 맡게 되는 성도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며,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하는 성도들도 의무적으로 참석하도록 하고 있으며,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게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벌써 내년도에 있을 다일영성수련회를 기다립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회복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다일영성수련회]
다일영성수련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영성수련이라                                          _전창근목사(영성신학박사)



다일영성수련회 1,2,3단계 수련은 조직 신학적으로 볼 때, 창조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종말론 등이 다함께 균형잡혀 있으면서 유기적으로 녹아져있습니다

좀 더 이 부분을 설명해 본다면,

다일영성수련회 1단계 에서는 조직신학적으로  
창조론 특히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인간창조를 분명하게 깨달음에 이르도록 이끌어 갑니다

다일영성수련회 2단계의 중심은 기독론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품과 역량을 본받아 작은 예수로 살기 위한 다양한 영적 수련들로 구성되어 있는것이 다일영성수련회의 특징입니다.

다일영성수련회 수련 3단계의 중심은 성령론입니다. 
1단계와 2단계에서도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특별히 3단계에서는 대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안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처럼 다일영성수련회는 선을 그어 구분되어지지는 않지만

다일영성수련회 1단계는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께  

다일영성수련회 2단계는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님께 

다일영성수련회 3단계는 보혜사이신 성령님께 보다 집중하며  

1,2,3단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일영성수련회는 삼위 일체적이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영성수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 나 자신을 만나는 오솔길에서 만난 주님
                                                                                                _박명희 권사(소망교회)

 

 

나 자신을 만나는 오솔길에서 만난 주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마음을 아는 듯

차분하게 동행해 주던

촉촉이 내리는 비는 다정한 친구였으리

 

생각과 느낌의 틈새의 숨막힘이여, 설레임이여!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누구의 것입니까?

나는 아내의 것, 내 옷은 내것

허튼 소리 되뇌이면서도

호기심으로 가득히 문을 연다.

 

나 자신을 만나는 오솔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비밀스러운 길을 걸으며

거룩한 침묵에 무릎을 꿇었어라

 


* 이 시는 박명희 권사께서 20041단계 다일영성수련을 마치고 감동을 받아 쓴 시입니다.









[다일영성수련회] 다일영성수련회를 통해 결핵성 뇌수막염 치유                                             _ 다일영성수련회 한지혜


저는 다일영성수련
1단계 113, 2단계 32, 3단계 12기를 경험한 한지혜(기쁨)입니다.

다일영성수련을 통하여 제가 경험한 치유와 회복, 제가 경험한 하나님을 전하고자 글을 적습니다.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의 저는 영육간에 그야말로 좌절과 절망,소망이 끊어진 처참한 상태였습니다. 4년여 동안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석사과정을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던 중에 졸업학기를 남겨두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일 병원에서 척추 측만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오르간연습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4-5개월만 버티면 석사를 마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침 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으며, 마비가 오고 부축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상태를 견뎠습니다.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건강상태였지만, 한국에서 한 달간 치료를 받으면 괜찮을 정도라고 여겼습니다. 한 달간의 짧은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치료를 받을 생각으로 , 짐을 들 수도 없이 힘이 없는 쇠약한 상태로 작은 핸드백 하나를 간신히 걸치고 한국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2009년 2월 27 집에 도착해서, 3 2일 한국에서 병원응급실로 들어갔을 때, 독일에서 진단받은 것이 오진이었고, 속립성 폐결핵, 척추결핵,결핵성 뇌수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았다고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을 통보하였습니다. 그리고부터 가족들의 눈물의 기도와 많은 중보기도자의 기도를 받으며 긴 치료의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2주는 긴박하게 흘렀던 것 같습니다. 척추손상으로 이미 마비증상이 있었고, 손상된 부위가 전신마비의 위험이 있어, 수술을 해도 같은 위험을 안고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수술을 결정하고 수술날이 다가가면 고열과 구토증상이 심해져 전신마취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3번이나 수술스케줄이 늦춰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뇌수막염이 MRI상으로 머리의 90% 이상이 염증으로 차는 등 의학적으로 사망 확률이 높다는 쪽으로 증상이 더욱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결핵치료는 둘째 문제로 뇌수막염과 척추결핵치료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2-3달을 지냈습니다. 그리고는 저의 엄마께서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병이고 영이 살아야 몸도 산다고 강제로 퇴원을 시켜 6 15일 거동하기도 힘든 저를 설곡산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첫날은 진통제를 먹어도 듣지 않아 눈물이 나는   통증을 참아가며, 일차적으로 참가비 생각에 열심히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지 알아차리기 시간에는 구토증상이 있었으므로 주머니에 비닐을 챙기고 다녔지만, 너무도 신기하게 설곡산에 들어와서는 매일 식사 때, 하물며 물을 마실 때도 했던 구토를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45일의 시간, 시간이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특히 수련장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 전에 24시간을 누워서만 있던 저에게 너무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번, 두번..회가 지날수록, 화두가 하나, 둘 지날 때마다 깨어짐이 시작되듯이 다리에 힘이 생기며 치유가 되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도 좌절하고 절망하고 혼돈에 빠진 저의 영혼이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일도 목사님의 깨어남에 대한 말씀에 마지막 날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졌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설곡산의 고요함, 평온함, 진지 알아차리기 시간마다 사랑자체인 진지들, 주님 품 같은 편안한 잠자리가 질병과 각종 인위적인 치료에 지친 제 육신을 평안하게 해주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편히 잠잘 수 없었던 전과 달리 편히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4 5일 지나고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설곡산을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처음 몇 주는 회복되는 듯했지만 다시 계속되는 약물치료로 마음이 지치기 시작하면서 저희 엄마께서 1단계로는 부족하다며 2단계에 또 데려다 놓았습니다. 1단계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2단계도 경험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1단계 때 힘들었던 45일이었던 터라, 56일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고 지금이 아니고, 몸이 더 좋아지면 했음하는 마음이 더 컸었습니다. 암튼, 또다시 엄마의 강요로 설곡산에 왔을 때, 여전히 거동은 불편했고,약물치료 중이었습니다. 1단계를 마친 후 머리의 염증이 많이 가라앉아 2단계를 마친 다음날 척추수술을 위한 재검사가 잡혀있었습니다. 1단계 경험 후 가장 생각났던 것은 설곡산의 고요함과 평온함, 사랑 자체인 진지들, 편안하고 따뜻한 잠자리였습니다. 집과 병원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평안이 있었습니다. 2단계 시간들 역시 육체적 저에게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시간 깨달으면서 영과 육체가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다음날 재검사를 하고, 2주일 후 검사결과를 확인하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흉추 4-7번의 손상으로 인공뼈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새끼손톱반보다도 작은 구멍만 남기고 모두 정상이 된 것입니다. 의사선생님은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며 고개를 갸우둥 하시고는 MRI 사진을 보고 또 보고 희귀사례로 학회에 보고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다일영성수련을 통해 영적으로 제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육체적으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 일은 확실히 전할 수 있습니다.

화두가 제시될 때마다 혼란했던 생각과 느낌들이 제자리를 찾고, 죽음이란 것을 가까이 두고 혼란에 빠진 신앙관 또한 바른 믿음, 바른 삶을 향하여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저의 엄마의 영이 살아야 육이 산다라는 믿음처럼 저는 다일영성수련과정을 통하여 영육간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였습니다.

설곡산에 자연치유센터가 지어지고 있는데, 저와 같이 영육간에 병든 많은 영혼들이 이곳을 통하여 치유와 회복, 소생시키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것을 확신합니다.

3단계를 통하여 경험한 하나님을 갈망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영적경지를 매일 매일 경험하고자 소망하고 있습니다.

다일영성수련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

 

** 현재 한지혜님은 질병이 깨끗하게 완치되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다일 영성생활 수련의 신학적 독특성에 관하여

전창근 목사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MATS)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Ecumenical D.Min, 영성전공)
시카고 다일공동체 지부장


들어가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다일공동체와 최일도 목사는 청량리 588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는 밥상공동체로 알려져 있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일공동체는 최초의 개신교 무료병원인 다일 천사병원을 통해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다일공동체가 ‘나사렛 예수의 영성을 추구하는 영성공동체’임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2009년 11월 17일부터 21일까지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다니엘기도원에서 있었던 다일영성생활 수련 미주 9기에 참석하기 전까지 다일공동체에 대한 나의 이해도 위와 마찬 가지였다. 하지만 이때 다일영성생활 수련을 통한 다일영성과의 만남은 내 삶과 영성의 중대한 전환점의 시작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일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져 가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일공동체가 추구하는 영성의 열매이며, 그 뿌리가 바로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있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깨달아가고 있다. 다일영성과 다일영성생활수련에 관한 보다 전문적은 글은 추후에 다시 소개할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본 小考에서는 “설곡산 가는 길”의 창간을 축하하며 다일영성생활수련의 신학적 구조의 독특성에 관한 일반적인 특징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독교 영성이란?

영성은 정의를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단어이다. 사실 영성이란 말만큼 다양한 함의를 지닌 단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영성에 대한 정의는 영성신학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데, 그것은 사람마다 영성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성에 대한 매력이기도 하다. 영성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삶이 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성이라는 단어 앞에 기독교라는 말로 수식이 될 때 좀 더 구체성을 가지고 크리스챤인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성신학자, 마이클 다우니(Michael Downey)는 기독교 영성을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의 한 방식”으로 정의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기독교 영성은 보이지 않은 초월의 세계에 대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에서 그 현재적 삶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독교 영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뿌리내린, 성령안에서 그리스도인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태도”라고 본다. 이러한 기독교 영성에 대한 이해는 자신과 이웃과 우주와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응답을 요구한다.

기독교 영성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태도”라고 이해할 때,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그 나름의 독특함이 있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아래와 같이 5가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특한다.
 




첫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침묵수련을 지향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침묵의 영성에 물줄기가 잇대어 있다. 한국 개신교 영성이 소홀히 여겼던 “침묵의 힘”을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강조한다. 침묵(silence)은 언어다. 침묵은 하나님을 만나는 언어이다.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를 알아차리게(noticing)하는 하늘의 언어이다. 다일영성생활 수련 1단계는 침묵에 익숙하지 못한 벗님들을 위해 외적침묵을 강조한다. 2단계와 3단계는 외적침묵을 넘어, 내적침묵으로 그리고 완전한 침묵 안에 머물도록 수련한다. 침묵 없이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수 없기 때문이다. 침묵은 그 자체로도 좋은 영성수련이 되지만 다일영성생활 수련에서 특별히 침묵을 강조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이다.





둘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가슴으로 경험되어 지는 앎을 지향한다.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 1권 첫 머리에서 "앎" 특히 하나님에 대한 앎과 나에 대한 앎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물론 존 칼빈이 말하는 “앎”은 머리로 아는 앎(information)을 말하지 않는다 결혼한 부부가 서로를 아는 것 같이 경험되어지는 앎이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기독교에 대하여 머리로만 아는 앎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 가슴으로 내려오질 않는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머리로 아는 앎(정보, information)이 아니라 가슴으로 경험되어 지는 앎(변화, transformation)을 지향한다. 이런 이유로 다양영성생활 수련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 "마음으로의 여행" ”내가 나를 만나는 여행” 이라고 불리어진다.

셋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삼위 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을 지향한다.

한국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영성적 경험은 영성의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오직 기도”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예수” 등 그 자체로는 너무 귀하지만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다른 한쪽은 소홀히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기독론”을 강조하다보니 삼위 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수련에 취약하다. 다일영성생활 1,2,3 단계 수련은 조직 신학적으로 볼 때, 창조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종말론 등이 유기적으로 녹아져 있다. .

좀 더 이 부분을 설명해 본다면, 1단계에서는 조직신학적으로 창조론, 특히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인간창조를 분명하게 깨달음에 이루도록 이끌어간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창세기 1장 31절의 말씀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달아지는 경험으로 이끌어간다. 그래서 1단계에 참석하는 벗님들마다 1단계가 끝마쳐 질때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또한, 다일영성생활 수련 1단계는 인간론을 다룬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의 것인가?” 등의 화두를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이런 궁극적인 질문을 통해 형이상적인 인간론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하신 본질된 인간으로서의 “나”를 깨닫게 되어 자신과 이웃에 대하여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I am special” 과 “You are special”을 고백하게 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 2단계의 중심은 기독론이다. 그래서 2단계는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품과 역량을 본받아 작은 예수로 살기위한 다양한 영적수련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기독교적 종말론에 기초한 유서쓰기와 임종체험 수련은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영적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 3단계의 중심은 성령론이다. 1단계와 2단계에서도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특별히 3단계에서는 대 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종교개혁이후에 개신교 안에서 소홀히 여겨졌던 복음관상과 관상기도를 통해 성령님과 일상생활에서 동행하도록 돕는 수련이다.

이처럼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선을 굿듯 구분되어지지 않지만, 1단계는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께, 2단계는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님께, 3단계는 보혜사이신 성령님께 보다 집중하며 1,2,3단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삼위 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수련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깨달음을 지향한다.

인도출신의 예수회 사제인 엔소니 드 멜로는 “영성이란 깨어남”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깨어남은 깨달음을 통해서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깨달음을 지향한다. 그 깨달음은 책을 통한 깊은 연구와 사색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최일도 목사님이 가장 밑바닥 인생인 청량리 588 근처 오갈데 없는 노숙자들에게 한 그릇 라면을 끓여 대접하는 삶의 한 복판에서의 처절한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다일영성생활 수련에서는 식사 시간이 없다. “진지 알아차리기” 시간이 있을 뿐이다. 설거지라는 말 대신 “성자되기 첫걸음”이라고 부른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에서는 한 순간의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아멘과 할렐루야를 합쳐 “아하(Aha)"라는 외침을 통해 표현한다. 이런 아하 모먼트(Aha Moment)는 본질적인 화두를 반복적으로 묻고 또 묻는 과정에서 어느 한 순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의 깨달음을 경험하게 된다.





다섯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일상생활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열매를 지향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세대가 다양하다. 20대부터 70대까지 참여한다. 교파도 다양하다.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는 신앙이 없는 사람도, 천주교인도, 타종교인도 참여한다. 민족을 초월한다.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인도 참여한다. 그 다양성 가운데 일치되는 점은 참여하는 벗님들 모두가 변화를 경험한다. 이것을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사실의 세계에 눈을 뜰 때, 나를 넘어 이웃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다. 변화의 결과이다. 변화는 생각의 변화, 느낌이 변화, 그리고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삶의 자리인,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는 화해와 일치, 나눔과 섬김의 삶의 열매를 맺는다. 성령의 열매가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기독교 영성수련으로서의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대한 중요한 식별의 표지라고 할 수 있다.




나가면서

한국개신교는 선교 초기부터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원색적이고 강력한 영성을 바탕으로 일치성을 강조해 왔다. 반면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안에 면면히 흘러내려온 기독교 영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 누리는데 인색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는 새로운 영적의 경험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1999년 4월 5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 초라한 농가주택에서 최일도 목사님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된 다일생활영성 수련은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1단계 130기, 2단계 41기, 3단계 13기까지 진행되었고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된 영성수련을 포함하면 모두 200회 가까이 진행되었다. 다일영성수련을 경험한 이들이 1만명이 넘는다. 카톨릭에서는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의 의해 기독교 신앙의 깊은 신비를 체험하고 있지만 한국 개신교 안에는 그와 같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공인된 영성수련의 장이 없던 때에,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메마른 대지에 한줄기 빗줄기와 같이 한국 개신교회 영성에 밑거름이 되었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이 완벽한 개신교 영성수련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척박한 한국개신교회안에 다일영성생활 수련을 통해 주어진 영적인 부요함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Posted by shine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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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겸비 2011.12.05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성 수련을 받을 때 마다 새롭게 들려오고 깨닫게 되는 은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2. Sandule 2011.12.06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사님 이렇게 뵈니 반갑습니다.
    귀한 사역에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3. sj 2011.12.06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양한 경험과 체험,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시간-
    참 은혜입니다 !

  4. 아주나무 2011.12.07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