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03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제 너무도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팔뚝에 소름이 쫘악 돋아나면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속울음을 안으로, 안으로만 삼켰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전쟁사를 연구하며 자료발굴에 전념하는 현역 육군 소령의 증언이 마음을 울컥하게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도 떨렸고, 눈물을 흘리는 듯 했습니다. 그는 어제 때마침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역전의 용사 세 분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미국땅을 떠나 한국전쟁에 참전할 때, 그의 어머니들도 눈물을 삼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유를 위하여 그들의 어머니들도 자신의 생명보다 더욱 귀한 아들들을 태평양 멀리 이 한반도에 보내서 피를 흘리게 했던 것입니다.

어제 만난 참전용사들의 증언 중에는 제가 아버님께 구전으로 한 번도 들은바 없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처음 들은 이야기라 너무도 놀란데다가 충격에 가까워서 더 이상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서 “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하며 더 이상 아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 놀라운 사실은 다름아닌 3만명의 켈로부대 전사들 중에 20%가 여성대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6천명 이상의 꽃다운 처녀들과 어린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던 젊은 엄마들이 집과 전쟁터를 오고가며 많은 피를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 기록문서가 이미 공개되었고, 한국에도 상세히 구체적인 자료에 의해 알려질 것이라는 사실에 저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여전사들 뿐만아니라 켈로부대원들의 부인들 역시도 사선을 넘나드는 전쟁터의 전사나 다름없이 살았습니다.

그분들 중 한 분이 바로 저희 어머님이십니다. 어머님은 6.25 사변이 터진 그 해에 큰누나를 낳았습니다. 그 핏덩이를 안고 아버지의 고향인 장연을 떠나 월내도로 간신히 탈출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인민군 몰래 부하들이 잠입하여 어머님을 모시고 섬으로 왔는데, 그렇게 육지에서 섬으로 오고가는 길에 바다에 빠져 죽은 여성들, 총에 맞아 죽은 엄마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용맹스러운 켈로부대 전사들은 서해5도 뿐만아니라 더 북쪽에 있는 16개의 모든 섬을 다 장악했습니다. 자유수호의 의지로 뭉친 용사들이 집결하여 군사훈련을 받은 뒤 피난민들을 L.S.T로 후송할 뿐만아니라 목숨건 치열한 전투가 항상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저희 어머님과 켈로부대 부대원들의 부인들은 월내도에서 대청도로, 대청도에서 백령도로, 서해의 섬들을 유랑하며 사선을 넘나들었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같은 경우는 서해의 섬들뿐만 아니라 전라도까지 피난갔다가 다시 대청도와 백령도를 거쳐 휴전 이후엔 인천에서 둘째누나를 낳으시고 키우셨습니다.

그 시절 하도 많은 처절한 비명과 한 숨을 듣고 보게 되면서 하나님께 탄식속에 눈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전쟁이 끝나고 하루속히 평화가 오게 해주세요.. 고향 땅에 돌아가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어머님은 혈혈단신 핏덩이만을 안고 내려오셔서 부모형제들의 생사도 모른채 오늘도 평화통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전쟁터에서 고생하신 어머님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다시 듣다가 무명용사들만 수고하고 희생한 것이 아니라, 이제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오분의 일이나 되는 여전사들이 있었고, 부대원들의 부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지킬 뿐만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던 켈로부대 여전사들과 부대원의 부인들의 땀과 눈물과 피에 또다시 목이 메이고 속울음이 나옵니다.

당시의 여전사들은 어머니와 같이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고, 30-40대 부인들도 있었다는 사실에 그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면서 저 자신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만약 예측 못한 전쟁이 또다시 터진다면? 그 때처럼 3만의 무명용사들이 자유를 지키겠다고 분연히 일어날 수 있을까? 군인들이 아닌 민간인들도 자원하여 최전선에 뛰어들 수 있을까?

그 용사들의 오분의 일이나 되는 6천명 이상의 여성들이 자자손손에게 이 자유를 물려주기 위해 가정과 아이들을 집에 두고 때로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전쟁터로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최전선에 나갈 수 있을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은 미국 땅에서 태어난 페트릭 헨리만이 부르짖은 자유 쟁취의 구호가 결코 아닙니다.

60년전 이 땅의 3만명의 무명용사들과 6천명의 여전사들이 입술이 아닌 온 몸으로 실천한 고귀한 자유를 향한 몸부림입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과 투쟁의 산물로만 얻어낼 수 있는 진정한 가치입니다.

60년 이상을 이산가족으로 살아가시는 어머님을 비롯한 이름모를 수많은 여전사들의 그 고귀한 수고와 희생에 오늘도 저는 목이 메이고 맙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몸부림과 평화통일을 위한 눈물의 기도를 함께 드립니다.
“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아하!!”
 

 

 

Posted by 다일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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