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04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죽더라도 아니 잊을 것입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남북간의 대화통로 마련과 한반도 평화 추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발표한 남북간의 첫 합의 문서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최초로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대결 구도를 탈피하여 통일과 관련한 합의 문서를 온 세상에 드러낸 역사적인 날이라 어린 시절의 저 역시도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의 합의 없이, 정부 당국자들간의 회담을 통한 합의라는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평화통일의 원칙을 도출해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지 꼭 한 주 후에 아버님의 동료들과 부하대원들이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통곡하시던 그... 날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거저, 평화통일이 이루어져서 우리는 고향에 갈 것인데, 우리 최 대장님은 이 소식도 못 듣고 황망히 가시다니...”

철모르던 청소년 시절이었지만 그 기억만은 간직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너무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 날이 아버지의 1주기 추모일 바로 다음날이었기 때문입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기 한 해 전, 71년 7월 10일 저희 아버님은 갑작스럽게 하늘의 부름을 받고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시던 고향, 황해도 장산곶을 그저 바라만 보시다가 땅 한번 밟아보지도 못하시고 소천하셨습니다.

고향에 두고온 부모님과 가족들이 하도 그리워서 인천 앞바다에서 수평선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그 고독한 얼굴이 마치 어제 뵈었던 것처럼 또렷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꼭 60년전, 월내도와 오작도 등에 주둔해 있던 저의 아버님과 8240 부대원들이 목숨걸고 우리땅을 사수하겠노라고, 그 섬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찍은 그 낡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또다시 제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라고 불리울 정도로 존경받는 손원일 제독께서 섬으로 찾아가 저희 아버지를 포함한 부대장들을 모아놓고 눈물로 설득하셨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백령도보다도 더 북쪽에 있는 서해 16개 섬을 이미 다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전후 이 분들을 설득하고 이동시키기 위해서 모두가 눈물겨운 날들을 섬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를 포함한 용사들은 하루아침에 형제들과 고향을 잃고 오로지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 평화롭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꿈에도 소원인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숨 걸고 투쟁한 본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육안으로도 훤히 바라다보이는 가까운 고향땅을 바라보며 UN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장악하고 있던 16개 섬을 떠나오실 때 얼마나 처절하게 울며 마음아파 하셨을까요...

이분들이 저희 집에 모여서 아버님과 함께 지난 과거를 회상하실 때 “피눈물을 흘리며 내려왔다!...”는 가슴아픈 이야기를 어린 저도 어깨너머로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잘 전달이 되고 공감이 됩니다.

신문 보도에는 UN군이 점령하고 있었다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8240부대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8240부대는 UN군에 소속되어 있는 특수부대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UN군이라고 하면 한국전에 참여한 16개 우방국의 참전용사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8240부대는 전원이 이북 출신인 용맹한 무명용사들, 바로 군번 없는 군인들이셨습니다.

백령도보다 더 북쪽에 있는 16개 섬을 떠나 지금 우리 영토인 서해5도 소청도와 대청도 연평도 등으로 이 분들이 한 걸음 내려와서 주둔하고 또 주민으로 살아 오셨기 때문에 오늘의 서해5도가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느 해인가 아버님의 추모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신자가 아닌 분들도 아버님 추도예배에 오셔서 예배가 마친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을 이루자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셨는데, 그 노래를 부르시던 8240 부대원들의 눈물과 눈빛을 지금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저역시 그분들의 성함이 가물가물하여 확실하게 기억나는 분들이 몇 분 안됩니다. 그런데 오늘, 신문에 난 용사들의 사진과 기사를 보시고 너무도 반가워서 묻고 또 물어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필리핀 다일공동체 빈민촌까지 전화를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내가 최희화 대장과 함께 전선을 지켰던 사람이야,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 최 목사님을 꼭 만나 못다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네다” 8240부대의 생존자요 아버지의 동료이신 분들의 전화에 얼마나 제 가슴이 뛰고 또다시 눈물이 흐르는지요...

그 때 그분들의 얼굴은 점점 잊혀져 가지만 제 가슴에 살아있는 그분들의 눈빛과 결연한 각오는 저또한 죽을때까지 잊지 못 할 것이며, 살아있는 동안 오고 오는 다음세대에 반드시 전할 것입니다.

이 사실만은 현재 NLL을 두고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보이는 여야의 모든정치 지도자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위하는 정당과 당원들이라면 어느 당이든 당리당략을 떠나서 분명히 해두고 가야 할 대목입니다. 우리 국민들도 각자 처해있는 입장과 자기주장과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서 이 시점에 하나님앞에서 역사 앞에서 진정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어떤 보상과 대가도 없이 조국을 지켜온 이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란 말인가?

그토록 수많은 용사들이 왜? 피를 흘리며 전쟁터에서 죽어갔다는 말인가? 자유를 수호하고자 온 몸을 바쳐 몸부림을 치셨다는 말인가?

그분들의 정신과 희생을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더욱더 모범을 보이고 계승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오직, 자유수호와 평등사회를 위해서 목숨을 내던진 애국선열과 무명용사들의 희생정신을 제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고 실천하시는 지도자들이 되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죽더라도 아니 잊을 것입니다!

 

아하!!

Posted by 다일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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