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05. 24
~ 최일도 목사의 마음 나누기 ~
“넬슨 롤리 흘라흘라 만델라”
열 여섯 번째 미주 다일영성수련을 위하여 동역자인 최일인 목사님과 KAL기와, 아시아나로 30분 간격으로 각각 따로 출발하였는데 비행기 이착륙 사정으로 현지시간 23일 오전 11시 경 거의 같은 시간에 함께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
시카고 오하이어 공항까지 태평양 건너 12시간 비행하는 동안 영화를 두번 보았는데 “만델라”만 거듭 두번 보았습니다.
만델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식 이름 ‘넬슨’과 아버지가 지어준 아프리카 이름인 ‘롤리 훌라 훌라’입니다. 우리는 보통 ‘넬슨 만델라’라고 부르지만 저는 몰랐으면 몰라도 알게 된 오늘 이후부터는 그의 아프리카 이름 ‘롤리 흘라흘라’도 함께 불려 주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남겨 준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오래 남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종종 아프리카 민담을 들려줍니다.
늙고 병든 여인이 여행자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여행자는 눈꼽이 덕지덕지 낀 늙은 여인의 눈길을 피해 지나 가 버립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다른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눈꼽을 닦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여행자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늙은 여인의 눈곱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 순간 여인은 젊고 아름답게 변신했고 여행자는 그녀와 결혼해서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어린 만델라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습니다. 그는 이야기합니다. 눈에 보이고 의사가 고칠 수 있는 상처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훨씬 크고 아프다고, 남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은 잔인한 운명으로 고통 받게 만드는 것이라고,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라고, 용감한 사람은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인정하고 정복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는 또 이야기합니다. 빈곤퇴치는 자선의 몸짓이 아니라 가장 의로운 행동이라고.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권,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수호하는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그는 남아공 백인들의 더러운 눈꼽을 손수 지극 정성으로 닦아준 섬김의 종이며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용사이면서 화해와 용서를 실천한 위대한 정치인입니다.
그럴지라도 한 인간이 27년 6개월의 그 긴긴 감옥생활을 어떻게 참고 견디어 내며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단 말인가? 그 자신이 말한 것처럼 그것이 타고난 것인지? 교육 받은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감옥에서 교도관에게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반바지를 긴 바지로 바꿔 달라는 것부터 요청 해 볼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얼마나 친근한지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려는 그 마음이 전달이 되고 공감되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두 번 거듭 보고 나서 기내에서 창밖을 보며 흰 구름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의 하얀 치아와 미소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영화로 만델라를 두 번 보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자료를 뒤지고 자선전을 한권 구해 읽고 있는데 느낌이 참 좋습니다.
그는 항상 머리를 태양을 향해 똑바로 치켜들고 발을 내딛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인간성에 대한 나의 신념이 혹독한 시련을 겪는 어두운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으려 했고 굴복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곧 패배와 죽음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신형을 언도받고 27년 이상을 감옥에서 살았지만 이렇게 헛되게 죽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질 않았다고 했습니다. 준비만 잘 한다면 언젠가는 자유인으로 아프리카 대지를 두 발로 반드시 힘차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사고를 했습니다.
그는 정말 철저한 낙관론자입니다. 처음엔 열악했던 감옥생활이 여러 번에 걸친 투쟁으로 점점 교도관과도 친하게 지내기 되면서 로벤 섬은 마치 정치범들의 대학과 같은 느낌으로 읽히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 생활을 잘하고 오히려 투쟁의 노하후가 더 좋아지는 것을 우려해서인지 정부에서는 교묘한 술책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수차례에 걸쳐 만델라에게 탈옥 제의를 한 것입니다. 만델라는 강한 유혹을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탈옥을 시킨 후 사살할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채소밭을 만들었습니다. 묘목을 구해 나무도 심었습니다. 이 모습이 그렇게도 감동적이며 눈물 나는 대목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과격한 운동권 청년들이 당신은 이곳에서 채소밭이나 가꾸고 있느냐고 힐난하지만 그때 그는 더이상 무기로 무장한 젊은 날의 만델라가 아닙니다. 싸우는 투사에서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는 큰 인물로 거듭나 있게 됩니다.
감옥에서 꾸준히 채소밭을 가꾸고 날마다 맨손 운동을 하면서 자신부터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감동을 주고 변화시킨 사람!!
넬슨 롤리 흘라흘라 만델라!!
결국 그가 실천한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자신부터 실천한 행동들은 남아프리카에 인종 차별 철폐로 이어졌고 폭력 대신에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도 수상하게 됩니다.
인간성을 차단하고 죽이기 위해 가두어 놓은 감옥에서 그는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고 고상한 성품이 됩니다.
1990년 2월 11일 오후 4시가 되기 직전에 그는 27년 만에 자유를 되찾고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내 비록 일흔 한 살이지만 나는 내 인생이 이제야 막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느낍니다!!"
~ 최일도 목사의 마음 나누기 ~
“넬슨 롤리 흘라흘라 만델라”
열 여섯 번째 미주 다일영성수련을 위하여 동역자인 최일인 목사님과 KAL기와, 아시아나로 30분 간격으로 각각 따로 출발하였는데 비행기 이착륙 사정으로 현지시간 23일 오전 11시 경 거의 같은 시간에 함께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
시카고 오하이어 공항까지 태평양 건너 12시간 비행하는 동안 영화를 두번 보았는데 “만델라”만 거듭 두번 보았습니다.
만델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식 이름 ‘넬슨’과 아버지가 지어준 아프리카 이름인 ‘롤리 훌라 훌라’입니다. 우리는 보통 ‘넬슨 만델라’라고 부르지만 저는 몰랐으면 몰라도 알게 된 오늘 이후부터는 그의 아프리카 이름 ‘롤리 흘라흘라’도 함께 불려 주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남겨 준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오래 남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종종 아프리카 민담을 들려줍니다.
늙고 병든 여인이 여행자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여행자는 눈꼽이 덕지덕지 낀 늙은 여인의 눈길을 피해 지나 가 버립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다른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눈꼽을 닦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여행자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늙은 여인의 눈곱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 순간 여인은 젊고 아름답게 변신했고 여행자는 그녀와 결혼해서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어린 만델라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습니다. 그는 이야기합니다. 눈에 보이고 의사가 고칠 수 있는 상처보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훨씬 크고 아프다고, 남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은 잔인한 운명으로 고통 받게 만드는 것이라고,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라고, 용감한 사람은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인정하고 정복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는 또 이야기합니다. 빈곤퇴치는 자선의 몸짓이 아니라 가장 의로운 행동이라고.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권,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수호하는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그는 남아공 백인들의 더러운 눈꼽을 손수 지극 정성으로 닦아준 섬김의 종이며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용사이면서 화해와 용서를 실천한 위대한 정치인입니다.
그럴지라도 한 인간이 27년 6개월의 그 긴긴 감옥생활을 어떻게 참고 견디어 내며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단 말인가? 그 자신이 말한 것처럼 그것이 타고난 것인지? 교육 받은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감옥에서 교도관에게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반바지를 긴 바지로 바꿔 달라는 것부터 요청 해 볼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얼마나 친근한지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려는 그 마음이 전달이 되고 공감되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두 번 거듭 보고 나서 기내에서 창밖을 보며 흰 구름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의 하얀 치아와 미소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영화로 만델라를 두 번 보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자료를 뒤지고 자선전을 한권 구해 읽고 있는데 느낌이 참 좋습니다.
그는 항상 머리를 태양을 향해 똑바로 치켜들고 발을 내딛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인간성에 대한 나의 신념이 혹독한 시련을 겪는 어두운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으려 했고 굴복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곧 패배와 죽음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신형을 언도받고 27년 이상을 감옥에서 살았지만 이렇게 헛되게 죽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질 않았다고 했습니다. 준비만 잘 한다면 언젠가는 자유인으로 아프리카 대지를 두 발로 반드시 힘차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사고를 했습니다.
그는 정말 철저한 낙관론자입니다. 처음엔 열악했던 감옥생활이 여러 번에 걸친 투쟁으로 점점 교도관과도 친하게 지내기 되면서 로벤 섬은 마치 정치범들의 대학과 같은 느낌으로 읽히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 생활을 잘하고 오히려 투쟁의 노하후가 더 좋아지는 것을 우려해서인지 정부에서는 교묘한 술책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수차례에 걸쳐 만델라에게 탈옥 제의를 한 것입니다. 만델라는 강한 유혹을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탈옥을 시킨 후 사살할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채소밭을 만들었습니다. 묘목을 구해 나무도 심었습니다. 이 모습이 그렇게도 감동적이며 눈물 나는 대목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과격한 운동권 청년들이 당신은 이곳에서 채소밭이나 가꾸고 있느냐고 힐난하지만 그때 그는 더이상 무기로 무장한 젊은 날의 만델라가 아닙니다. 싸우는 투사에서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는 큰 인물로 거듭나 있게 됩니다.
감옥에서 꾸준히 채소밭을 가꾸고 날마다 맨손 운동을 하면서 자신부터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감동을 주고 변화시킨 사람!!
넬슨 롤리 흘라흘라 만델라!!
결국 그가 실천한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자신부터 실천한 행동들은 남아프리카에 인종 차별 철폐로 이어졌고 폭력 대신에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도 수상하게 됩니다.
인간성을 차단하고 죽이기 위해 가두어 놓은 감옥에서 그는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고 고상한 성품이 됩니다.
1990년 2월 11일 오후 4시가 되기 직전에 그는 27년 만에 자유를 되찾고 이런 말을 남깁니다.
"내 비록 일흔 한 살이지만 나는 내 인생이 이제야 막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