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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사회봉사단 김도현

- 대사협 해외봉사단 캄보디아1팀 '러브깜디' 리더

내가 다일과 함께 캄보디아로 떠난 건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0월 초쯤 최일도 목사님께서 명지대학교에 채플강연을 오신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다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저 밥퍼운동을 시작하신 분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날 최 목사님께서 보여주신 한 편의 영상은 내 가슴을 심하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바로 캄보디아 빈민촌의 참담한 현실과 구순구개열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수술 받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차오르는 눈물을 견디기 힘들었고, 보다 많은 학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강연이 끝난 후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께선 작은 종이에 정성스레 어떤 목사님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주셨고, 이내 두 손 맞잡으며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꼭 한 번 다일에서 봉사하고 싶다. 저 아이들을 꼭 만나보고 싶다.'

이것이 그날부터 시작된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그렇게 다일과 처음 인연을 맺고 얼마 후, 대사협 해외봉사단 모집공고를 접했다. 10개국 14개 지역 가운데 '캄보디아-다일공동체'가 있었던 건 놀라운 일이었고, 난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사협 해외봉사단 캄보디아1팀의 단원이 되어 11월 26일 다일과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캄보디아에서 보낸 2주간의 시간은 첫날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짠한 감동이자 눈물이었다. 첫날 '밥퍼'를 할 때였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 헤진 비닐봉지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식을 시작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빈자리로 데려다주면서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여섯 살 쯤 되었을까, 한두 살 어림직한 동생을 꼭 품에 안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근데 그 어린 녀석이 자기 식판에 담긴 밥은 그 너덜너덜한 봉지에 옮겨 담고, 동생 입에 밥을 떠먹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 1달러로 온가족이 생활한다는 캄보디아의 빈민들, 그 어린 꼬마가 집에 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은 굶고 동생만 밥을 먹였던 것이었다. 그 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그 녀석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렸었다.

캄보디아에서의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어느새 달라진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도 감동적이었다. 누가 봐도 더러운 아이들, 한국에 있었더라면 피해 다녔을지도 모를 아이들인데, 어느새 그 아이들이 먹던 빵을 한입씩 나누어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젠 눈앞의 더러움보단 그 속에 숨은 사랑이 먼저 보이는 듯해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공에 맞아 눈을 다친 단원에게 직접 밥을 떠먹여주던 아이, 고된 작업에 잠시 쉬고 있을라치면 금방 달려와 어깨를 주물러주던 아이, 내 품에 안겨야만 웃어주던 갓난아이, 들꽃을 묶어 예쁜 꽃다발을 선물해준 아이, 겨우 사탕 하나에도 두 손 예쁘게 모으고 '어꾼'이라 말하던 아이들, 겨우 세 번 배운 리코더로 멋진 합주를 해낸 아이들, 두 팔 벌리고 소리치면 후다닥 달려와 내 품에 안겨주던 아이들, 먼저 마지막을 알고 내 품을 떠나지 않았던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나하나 말하자면 끝도 없을 캄보디아에서의 아름다운 기억들.

우리가 러브깜디란 이름으로 캄보디아에서 행한 가슴 뜨거운 일들, 다일이 하나님의 사명으로 캄보디아에서 행하는 가슴 따뜻한 일들, 이 모든 것들이 시작은 미약할지나 세상을 따뜻하게 울리는 큰 메아리로 울려 퍼질 것을 난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나 역시 더 많이, 더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이처럼 아름다운 젊음을 선물해준 다일과 대사협, 러브깜디 모두에게 가슴 가장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과 뜨거운 사랑을 전하고 싶다.

"감사드립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젊음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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