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체험을 하며 나는 내 자신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대학교 시절, 서울역 공중전화 박스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뒤돌아보니 머리를 감지 않아 굳어버린 두상과 세탁한지 오래된 옷차림의 행색이 말이 아닌
한 노숙인이 배가고파 밥을 사 먹어야 하니 자그마한 돈을 보태달라고 말을 걸기 위해
내 어깨를 두드렸던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니,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노숙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는 무엇인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못한 채 그대로 줄행랑을 쳐 버렸다.
그 날 하루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다시금 그 일이 떠오르게 되면 왠지 모를 미안함과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단지 나에게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할 약간의 돈을 보태달라고 다가왔을 뿐이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 크게 반응하고 무서워했을까?
노숙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 형제를 생각해 보니 참으로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 이었다.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패기 있는 젊은이 시절을 보냈을,
누군가의 아버지였을지도 모를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일 뿐인데 나는 왜 그리도
그를 경계했을까!
노숙체험을 하기위해 서울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잠시 그 때 그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밤늦은 10시 30분쯤부터 우리는 노숙하는 분들에게 라면을 나누어 드렸다.
한 분 한 분씩 찾아가며 라면을 나누어 드릴 때, 이런 저러한 사연의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 내가 이때까지 보여주었던 타인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피상적이고 추상적이었구나...’
서울역 지하도를 걸으며 현실 속 그 들을 만나게 되니 내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행동으로
섬김의 삶을 살겠다고 해왔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 참으로 마음이 씁쓸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결심했을 때, 사랑하기로 결심한 대산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깊이 있는 공감은 매우 중요한 듯하다. 그에 반해 내가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보여주었던 행동들과 표현은 굉장히 유치하고 미성숙한 단계의 진심어린 공감이 부족한 사랑 나부랭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도 한 곳에 자리를 잡아 라면박스를 깔고 침낭을 덮고 앉아있으니 서서히 한기가 올라왔다. 
묵안리 평화의 마을, 따뜻한 보금자리와 부러울 것 없는 매일의 양식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곳에서 매일 따뜻하고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며 무엇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노동으로 기도를 드린다고 하며 단지 내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급급해 있는 것은 아닐까?  말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그 사랑이 진정 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어떤 이미지 안에서 머무르면서 현실 속으로는 파고들지 못하는 그런 가벼운 사랑은 아닐까?‘
생각에 생각을, 고민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날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했었던 이런 저러한 것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고
나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정말 미성숙한 사람이었구나...’
함부로 말하고 생각없이 행동한 지날 날들의 시간 속에서 나는 참으로 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하나님, 제 자신이 남은 DTS기간 동안 진정으로 참 된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 안에서 제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재미위주를 떠나 보다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일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함께함의 중요성을 더욱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목적과 뜻을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그 안에서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고 저의 길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 뿐만 아니라 다일 평화의 마을 훈련원에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하여 주사
 “천국은 무한한 공감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말이
지금 이 곳에서 성취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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