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일공동체의 영성

다일영성수련회

이강학 목사

 

 

 

이강학(UC버클리 G.T.U. 영성신학 박사과정)

1. 나와 다일공동체: 첫 만남

한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처음 알게 되고 내 인생의 구주로 영접하게 된 나는, 평생 섬길 교회를 찾아 나섰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모델 삼아 내가 참여하고 싶은 교회의 기준 세 가지를 정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 세 가지 기준은 첫째,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교회일 것, 둘째,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교회일 것, 셋째, 개혁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일 것이었다. 1991년 가을 어느 날, 나에게 <창세기>를 배우던 한 후배가 청량리에 있는 어떤 목사님과 그 교회를 소개했다. 그 후배를 따라 참여했던 첫 주일예배의 충격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의 한국판이라고 할 만한 청량리 역전 5층 상가 건물 옥탑에 있던 가건물, 카펫 위에 무릎 꿇고 앉은 서른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의 발 냄새, 성례전을 집례 하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엉엉 우시던 최일도 목사님, 축도 후 동그랗게 둘러서서 목사님을 따라 돌아가며 한 사람씩 반갑게 끌어 안아주던 성도들, 식사 후 다시 원을 그리고 앉아 지난 한 주간의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 예배당을 정리한 후 큰 국통과 밥통, 식기들을 리어카에 싣고 청량리 역전을 지나 공동체로 가면서 난생 처음으로 본 청량리 588 거리와 언니들, 언니들이 낚아채간 안경을 겨우 돌려받고 식은땀을 흘리며 공동체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성자되기 첫걸음은 설거지부터”라는 문구, 설거지를 마친 후 방에 들어가 차를 마실 때 천정에서 들리던 쥐들의 마라톤 소리. 나는 그 날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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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 기독교 영성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영성학자 샌드라 쉬나이더스에 의하면 기독교 영성은 “기독교 신앙에 기반 한 삶의 전반적인 경험”을 주 소재로 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모든 삶의 경험”이 기독교 영성이다. 기독교 영성을 이해하려면 단순한 듯 보이는 이 표현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기독교 영성의 출발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또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은 기독교 영성이 된다. 3-4세기에 이집트와 시리아의 사막으로 나가 평생을 살면서 예수님의 “청결한 마음”(the purity of heart)을 추구하던 안토니와 파코미우스를 비롯한 사막교부들의 경험이 기독교 영성이다. 그 사막교부들로부터 큰 영감을 얻어 5-6세기에 이탈리아의 산에 정주수도원을 세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과의 일치”(the union with God)를 추구하던 베네딕트를 비롯한 수도원장들의 경험이 기독교 영성이다. 12-13세기, 부유해지고 타락한 수도원을 개혁하기 위해 “예수님의 가난과 전도”(the poverty and evangelization)를 추구하던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를 비롯한 탁발 수도회의 경험이 기독교 영성이다. 또, 중세에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예수님의 고통”(the passion of Christ) 마저도 남김없이 맛 보기 원했던 시에나의 카타리나, 폴리뇨의 안젤라, 노르위치의 줄리안 등 여성 수도자들의 경험이 기독교 영성이다. 16-17세기, 타락한 카톨릭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복음의 은혜성”(sola gracia)과 “성경의 중요성”(sola scriptura)을 강조했던 루터와 칼빈의 경험이 기독교 영성이다. 20세기 대표적인 기독교 영성은 서양에서는 본회퍼, 마틴 루터 킹, 테제의 로제, 마더 데레사, 한국에서는 길선주, 김익두, 주기철, 손양원, 이현필과 같은 인물들의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외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든 알려져 있지 않던 시대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받아 살았던 “구름과 같이 허다한” 기독교 영성가들이 있고 그들의 경험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둘째, 기독교 영성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역사하신 결과이다. 믿음을 고백한 기독교인의 모든 경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가는 자신의 경험 자체를 공로화, 절대화하지 않는다. 다만, 겸손하게 광야에서 구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따라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고 성령이 일으키시는 깨달음과 마음을 따라갈 뿐이다.
셋째, 기독교 영성의 대상은 그 믿음 위에서 나오는 “모든 삶의 경험들”이다. 성령의 역사는 공간적으로 교회 안에만, 시간적으로 예배 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의 영성에 예배가 중심인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기독교 영성은 우리의 모든 일상도 성령이 활동하시는 영역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들꽃이 주는 깨달음, 한 마디 말이 가져 온 상처 또는 위로 등을 포함해서 우리 눈이 본 것, 우리 귀가 들은 것 등 외부에서 우리 마음으로 들어 온 자극, 또는 우리 마음 안에서 스스로 일어난 느낌, 생각, 깨달음 등 모든 것 안에 잔잔한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내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엘리야가 들었던 잔잔한 바람 같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침묵하며 모든 일상을 주시할 때 나오는 경험이다. 그 경험 안에서 일상은 신비가 되고 신비는 일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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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무지개

3. 영성수련, 영성식별, 영성지도

기독교 영성생활의 목표는 전통적으로 “하나님과의 일치”(Union with God)에 있었다. 하나님과의 일치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고 사신 삶의 모범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본받아 살려고 하는 모든 노력이 기독교영성생활의 주 내용이 되었다.
또 기독교 영성가들은 영성 생활의 과정을 이해하기 쉽도록 자신들의 경험을 근거삼아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기를 좋아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화(purification), 조명(illumination), 그리고 일치(unification)이다. 정화의 단계에서 나는 자유를 잃고 사는 나를 발견한다. 율법과 틀의 노예가 되어 사는 나를 발견한다. 이기적인 욕심, 미움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상처투성이인 나를 발견한다. 동시에,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은 강한 욕망이 일어난다. 조명의 단계에서 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나를 아는 지식을 충만하게 경험한다. 이 때의 지식은 머리를 키우는 정보의 지식(informational knowledge)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을 포함해서 총체적인 삶을 변화시키는 영적 지식(transformational spiritual knowledge)이다. 일치의 단계에서 나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 하나님은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개념으로 정의될 수 없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관상(contemplation)할 뿐이다. 이 관상의 순간은 너무 짧기도 하고 너무 길기도 해서 세상의 시계로 잴 수 없다.
하나님과의 일치를 경험한 기독교 영성가들은 그 삶이 예수님을 닮아갔다. 그들은 많은 신비 체험을 하고 치유의 기적들도 일으켰지만, 더욱 스스로를 작다고 하며 겸손해졌다. 그래서 주변에 제자들이 모여들어 함께 살며 배우기 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 스승에게 영성 생활에 대해 물었다: 특별히, 기도에 대해서, 공동생활에 대해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 성령의 역사를 식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것이 영성식별(spiritual discernment) 과 영성지도(spiritual direction) 라는 오랜 기독교 전통을 만들었다.
영성식별과 영성지도는 “하나님과의 일치”(union with God)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기”(imitation of Christ)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모든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도구들이다. 아빌라의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그리고 이냐시오 로욜라 같은 영성가들은 영성지도자의 도움 없이 영성생활의 성숙은 없다고 공히 선언했다. 또한 올바른 영성지도자를 찾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올바른 영성지도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했듯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을 안내할 능력, 경험, 그리고 성품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영성지도자는 스승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워 자기가 갔던 길만이 옳다고 모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서 그 사람을 어디로 부르시는가를 예민하게 살피고 그 부르심을 그 사람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친절하고 솔직한 표현으로 도와준다. 영성지도자는 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다양한 기도의 방법을 알고 있고 그 사람에게 맞는 기도의 방법이 어떤 것인지 찾도록 도와준다. 영성지도자는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사람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들을 때, 상대방의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공명할 수 있다.
영성식별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지혜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영적 지혜이다. 영성식별은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하고, 영성수련을 통해 계발되기도 한다. 영성식별의 직관이 뛰어난 소수의 사람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영성수련을 통해 식별의 능력을 키워가야 한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영성식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냐시오 로욜라(Ignatius of Loyola)는 “영신수련”(The Spiritual Exercises)이라는 수련교본에서 “성찰 기도”(The Examination of Conscience) 와 “영성 식별법”(Rules for Spiritual Discernment)을 제시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종교적 정감”(Religious Affections)이란 책에서 미국 영적대부흥기(The Great Awakening)에 경험한 일들 중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종교적 정감의 특징 열두 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파커 팔머(Parker Palmer)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Courage to Teach)를 포함한 여러 저작에서 퀘이커의 영성식별법인 “맑게하는 모임” 또는 “명료 위원회”(Clearness Committee)를 소개하고 있다. 영성식별의 요지는 결국 내 생각(thoughts) 과 느낌(feelings)의 근원(roots) 과 방향(direction) 을 알아차리는데(noticing) 있다. “알아차리기”가 영성 식별의 주요 자료가 된다. 따라서, “알아차리기”는 가장 중요한 영성 수련들 중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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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4. 다일공동체의 영성
 
다일공동체의 20년은 긴 기독교 역사의 지평에서 볼 때는 무척 짧은 순간에 불과하겠지만, 20년 사이에 하나님이 다일공동체를 통해 일으키신 일을 보면, 기독교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성령의 역사를 집약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한국 기독교 영성사에 길이 남을 큰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일공동체는 영성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기도와 실천 또는 관상과 실천(contemplation and action)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 균형 잡힌 영성은 기독교 영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모든 존경받고 신뢰받는 영성가들은 기도와 실천에 균형이 잡혀있다는 특징이 있다. 혹자는 사막의 영성가들이나 봉쇄수도원의 영성가들이 세상을 도외시하지 않았는가하고 의문을 던지지만, 그들 역시 기도를 통해 교회의 일치와 세상의 정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알 수 없다. 끌레르보의 버나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깊이 있는 신비기도 체험의 소유자였지만, 부와 권력으로 타락한 수도원을 개혁하고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실천에도 큰 역할을 했다.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는 탁발수도회의 창시자로서 세상 속을 다니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지만, “태양의 노래”와 같은 기도문에 담겨있는 그의 기도의 깊이는 어느 사막 영성가, 봉쇄 수도원의 영성가 못지 않다. 봉쇄수도원인 트라피스트 겟세마니의 수도사였던 토마스 머튼은 전혀 신문을 읽지 않았지만, 그에게 기도와 영성지도를 요청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보낸 친구들의 편지를 통해, 누구보다도 세상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 편지의 내용을 상황(context)으로, 기독교의 영성고전들(text)을 바탕으로 해서, 현대인이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영성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글로 써서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이끌었다. 본회퍼 역시 그의 저술 “Life Together”에 잘 나타나듯이, 깊이 있는 공동체 기도 생활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잘못된 길을 바로잡기 위한 비밀 공작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일공동체는 영성생활수련원을 통해 기독교영성사의 기도 생활 즉 관상 생활의 맥을 잇고 있는 한편, 밥퍼나눔운동본부와 다일천사병원 및 중국,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 있는 공동체의 사역을 통해 기독교영성사의 실천 즉 구제긍휼사역의 맥을 잇고 있다.
둘째, 다일공동체의 영성은 기도와 실천의 균형을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와 실천 그 각각에 있어서도 기독교 영성사에 기반한 바른 기도의 길, 바른 실천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대다수 한국개신교인에게 “기도”는 무엇인가? 그 형식에 있어서는 소리를 내서 하는 구송기도로서 집단적 통성 기도와 대화식 기도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는 “주시옵소서!”를 강조하는 청원 기도가 주를 이루고 감사 기도와 찬양 기도가 보태지고 있다. 기도의 도입으로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큐티(Quiet Time) 또는 찬송하기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영성의 전통에는 훨씬 깊이 있고 다양한 기도에 대한 이해와 방법들이 있다. 우선, 내 생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청원 기도는 기도의 주목적이 결코 아니다. 기도의 주목적은 “하나님과의 일치”에 있다.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다. 그리고, 기도에 있어서 소리는 극히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기도의 대부분은 침묵이다. 말을 하기 보다는 듣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기도의 시작은 성경 묵상, 기도문 암송, 성화관상, 자연 묵상 등에서 시작한다. 기도 시간에는 성경 묵상을 머리로 연구하고 따지기보다는 가슴으로 다가오는 말씀을 찾으려고 애쓴다. 시편이나 영성가들의 기도문은 좋은 기도의 안내자가 된다. 성화(icon)를 보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나 느낌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하기도 한다. 나무나 풀, 시냇물 소리가 기도의 좋은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기도의 수단들은 하나님과 머리로 만나는데서 그치지 않고, 가슴으로 만나도록 이끄는 수단일 뿐이다.(이 기도의 수단들을 넓은 의미로 영성수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뒤로 하고, 내 생각과 느낌도 뒤로 하고, 마침내 하나님과 나만 함께 있는 상태에서 잠시나마 그 하나님을 지극한 사랑의 눈을 바라보며 만나는 것에 이른다. 이 상태의 기도를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라고 한다. 다른 표현으로는 “사랑의 시선으로 오래 바라보기”(a long loving look at the real)라고 하기도 한다. 이 관상기도의 경험은 하나님을 아는 경험이기도 하고 나를 아는 경험이기도 하다. “기독교강요”에서 칼빈이 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나를 아는 지식”에 이르기 위한 경건 생활은 결국 바로 이 기독교 영성사의 깊은 관상기도의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다일영성생활수련원에서는 기독교영성사에 바탕을 둔 침묵기도, 예수호칭기도(Jesus Prayer), 거룩한 성경 읽기(Lectio Divina), 자연묵상 등을 소개함으로써 한국 개신교인들의 기도에 깊이와 넓이를 더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
다일의 영성은 바른 기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할 뿐만 아니라, 바른 실천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다일공동체가 처음 출발하던 80년대 시절만 해도, 복음주의적 기독교인은 실천이라고 하면 개인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와 선교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목회자이자 한국 복음주의 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친 빌하이벨스 목사의 고백을 필두로, 교회의 양적 성장만을 목표로 한 복음 전도와 선교는 영성의 천박성과 함께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편 진보적 기독교인은 민중신학적 이념에 기반한 사회 정의를 위한 운동만이 진정한 실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하는 실천은 그 명분이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역시 그 한계를 보이고 말았다. 다일공동체는 말로만 전하는 복음 전도와 선교가 아니라, 청량리 윤락가 한복판에서 살면서 노숙자, 독거노인들에게 밥을 퍼주고 언니들을 감동시키며 말이 아닌 몸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다. 또 다일공동체는 운동권의 머리가 아니라 “생활권”의 가슴으로 사회의 밑바닥 생활에서부터 나오는 진정한 부르짖음을 대변했다. 다일공동체의 바른 실천에 대한 이런 끊임없는 질문과 응답이 오늘 복음주의적 기독교인과 진보적 기독교인의 공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셋째, 다일공동체의 영성은 한국적 영성과 서양 기독교 영성을 적절하게 통합하고 있다. 앞에서 열거한 영성수련, 영성식별, 영성지도 등의 방법은 모두 서양 기독교 영성가들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다일공동체는 기독교 영성사에 있는 영성 수련의 방법들에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현대 기독교 공동체들에도 관심을 갖고 교류를 하고 있다. 떼제공동체와 브루더호프공동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교회의 본질이 공동체성에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 상처 받은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공동체성의 회복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다일의 영성은 한국적 영성이다. 영성이 자기 중심성과 이기적 욕심을 초월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다룬다고 할 때, 그 경험은 다분히 기도하는 사람의 문화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이 “은혜 받았다”고 말하는 경험과 서양 기독교인이 영적 감동을 받는 경험은 상당히 다르다. 문화심리학자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서양인들의 자아(self)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사람들의 자아가 다르다는 것을 든다. 서양인의 자아는 독립적(independent)이고 개인적(individualistic)인 반면, 한국인의 자아는 관계적(relational)이고, 의존적(interdependent)이고, 집단적(collective)이다. 한국인은 관계로 매이고 관계로 푼다. 관계에서 오는 한국인의 상처는 서양인에 비해 무척 심각하다. “화병”은 한국인의 문화에서 발생하는 고유한 병이라고 세계의학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다일영성생활수련에서 “화”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 것도 “화”를 생성하게 되는 관계가 한국인에게 얼마나 심각한가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화”의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 받는다면 한국인의 인간 관계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아울러, 인간 관계와 직결되어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더욱 원활한 소통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일 영성의 한국적 특성은 “밥”이라는 낱말에 모두 담겨 있다. 다일의 영성은 “빵”의 영성이 아니라, “밥”의 영성, “진지”의 영성이다. 청량리의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매일같이 최상의 쌀로 지어져서 나누어지는 “밥”에 다일의 영성이 담겨 있다. 또한, 다일공동체의 식사시간마다 드려지는 “진지기도”에 다일의 영성이 담겨 있다. 아울러, 다일 영성생활수련 때 행해지는 “진지 알아차리기”에 다일 영성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진지 상에 오른 알곡들, 채소들과 고기들의 색깔, 크기, 모양을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살겠습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결심하는 모든 경험이 지극히 친근한 한국적인 경험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일의 영성은 그 이름 그대로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영성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가 곧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 다름이 곧 틀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일공동체는 내 기준과 고정관념으로 나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전에, 다름에서 오는 개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 다름을 아름답게 조화시킬 수 있는 일치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다일의 영성이 지향하는 바이다.

다일영성수련회

강의중이신 이강학 목사님

5. 나와 다일공동체: 그 후

나는 그 후 다일교회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결혼을 하고, 교육 전도사와 교육 목사의 사역을 하였다. 유학 가면 신약성서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1999년 다일영성생활수련 1단계에서 큰 은혜를 경험하고, 최일도 목사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기독교 영성을 공부하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영성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라는 진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가진 재능 중에 그나마 “배워서 남 줄 수 있는 것”이 책 읽고 공부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어 가장 심오하다는(?) 학문에 도전하였다. 흔히 박사 과정 학생들이 공부를 할수록 더 메말라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기독교 영성은 그와는 달리, 배우면 배울수록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고 더 자유해지고 더 뜨거워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다일공동체교회를 통해 다일의 영성을 경험하고 기독교 영성을 공부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일 영성의 산 증인 중 한 명이 된 것이 무척 영광스럽다. 다일공동체 20주년을 맞이하며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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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성일 2016.10.23 0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사님, 파커 팔머의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읽다가 보게되었습니다. 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 목회자의 눈으로 본 다일영성수련회 
                                                     _다일교회 담임목사 김유현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저는 현재 다일교회 2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김유현 목사입니다. 
저의 출신과 학력배경은 조금 다양하고 재미있습니다. 대학은 고신대에서, 신대원과 목사안수는 합동교단 총신에서, 현재 목회사역은 통합교단에서 하고 있습니다. 또 목회를 하기 전 6년간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캠퍼스간사로 섬기기도 했습니다.
저의 이런 다양한 신학과 신앙배경의 경험이 수년전 다일공동체와 만나면서 머리의 신학이 가슴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요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이전부터 알고 있던 ‘다일’은 청량리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밥을 퍼주는 기독교 구제사역의 대표적인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다일공동체와 만나면서 이분들 안에 깊은 기독교 영성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리차드 포스터나 헨리누엔의 책에서만 맛보았던 기독교 고전의 영성이 공동체의 예배와 노동과 섬김 속에 온전히 녹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큰 도전과 감동을 준 것은 ‘다일영성수련회’이었습니다.

2008년에 105기로 다일영성수련회에 아내와 함께 참여하면서 저희 부부는 기독교 영성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허락하셨는지를 저의 지, 정, 의 전 인격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마음에 모든 두려움과 정죄와 비교가 사라진 참 자유와 평안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다가 주님 앞에 가야할 지도 분명히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일복지재단의 사무국장과 밥퍼 본부장으로 일했고, 2010년에 최일도 목사님의 후임으로 다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담임목사가 되어 목회를 해보니, 이 다일영성수련회를 통해 교회가 너무나 큰 유익을 경험한다는 것을 또한 실감했습니다.

교인들을 심방 해보면 가족들 중에 마음의 오랜 상처나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새가족이나 성도들 중에도 이런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성도에겐 궁극적인 해결이 됨을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엔 전문적인 기독교 상담치유사역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전문치유상담을 받도록 권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런 치유사역에도 한계가 있음을 봅니다. 특히 믿지 않는 가족들에겐 그런 권면 자체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일영성수련회는 이 점에서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되고, 접촉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누구에게나 있는 정체성의 문제, 상처와 화의 문제를 다루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합니다. 이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정도 성경적인 대답을 바로 제시하지 않고, 일반은총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시작하여 특별은총의 기독교 복음으로 연결해 갑니다. 그래서 다일영성수련회 마지막 날엔 참석자들에게 성경공부를 통해 깨달음의 결론을 내리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없는 분들이 다일영성수련회를 참석하고서 자기 내면의 문제를 해결받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교회를 나와서 지금까지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많으며, 다일교회에는 그런 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그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 “예수믿으라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좋았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는 우리같은 비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이 없도록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였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다일영성수련회 이후에 스스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하며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다일영성수련회가 직접적으로는 복음을 드러내진 않지만, 그 중심은 얼마나 복음적인가 하는 것을 증명한다 하겠습니다.

 최근에도 한 여집사님과 남편이 다일영성수련회를 다녀온 이후, 오랫동안 교회에 발길을 끊었던 남편이 그 다음 주일 스스로 교회를 나오셔서 등록하고 자녀들까지 너무나 행복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을 봅니다. 또 부부간의 큰 갈등으로 이혼 위기까지 갔던 가정들도 이 다일영성수련회를 통해 치유되고 회복되는 일도 많이 봅니다.

 

이 귀한 사역을 위해 교회 담임목사직까지 내려 놓으시고 헌신하시는 최일도 설립목사님이 너무나 고맙고, 다일교회의 목회사역과 다일영성수련회 사역이 함께 좋은 동역의 관계로 계속해서 성도들에게 큰 유익이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다일영성수련회] 교회의 큰 부흥을 가져온 다일공동체 영성수련회                          _파리선한장로교회 성원용 목사

 

 

다일영성수련회를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며 축복이었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를 통해서 나는 내 마음에 있는 돌과 잡초를 제거함으로 주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서 열매를 맺도록 마음 밭을 기경하는 경험을 했고, 목회의 위기를 적절하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입었으며, 행복하고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02년에 파리선한 장로교회를 개척하고 2년 반 동안 무탈하게 목회하며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10명이 모여서 시작된 교회였지만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로 1년 안에 주일 출석 130명이 넘어섰고, 파리 교민 사회에도 좋은 소문이 났고, 교인들도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회는 35년이 힘드니 그때를 잘 넘어가야 한다.”는 어느 선배 목사님의 조언처럼, 교회 개척 3년이 될 즈음에 파리선한교회와 나의 목회에도 위기가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주도하려는 사람들, 과거에 목회자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목회자에 대해서 불신과 비판으로 일관하는 사람들, 마음이 변해서 다른 교회로 옮겨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들, 권유와 설득에도 교회생활 깊숙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교회가 사랑이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목회가 혼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상황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내 마음에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감당해 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성도들과 배신하고 떠나는 성도들을 위해서 넉넉한 마음으로 축복하고 기도해주고 품어줄 수 있는 여유보다는 그들을 향한 서운한 마음과 분노가 내면을 채우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밤잠을 이룰 수 없었고 심혈관질환이 발생했고 성격도 날카로워지고 있었습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에 최일도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 부흥집회를 인도하시게 되었습니다. 부흥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대 성황을 이루었고, 집회 기간에 성령님께서 우리 교회를 어루만지셨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그때 다일영성수련회를 소개 받게 된 것입니다. 나는 지체 없이 설곡산을 찾았고, 다일영성수련회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 2단계 작은 예수 살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수련회 기간에 계속되는 침묵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계속 말만 하며 살던 내가 모든 말을 멈추고 며칠을 지냈다는 것도 기적이며 그때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와 내면 깊은 곳에 들려주시는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은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내면의 분노를 털어내며 자유를 얻게 되었고 비로소 성도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일체은혜 감사,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지만,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너무나도 높은 이상이라고 여겼는데, 그 고지를 향해서 다가가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자, 변화된 내 모습에 성도들이 기뻐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유지되겠느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계속되었고, 어떤 상황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도 쉽게 털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몸의 건강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마음도 점점 안정과 행복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목회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고, 교회는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해 최 목사님께 요청하여 제 1차 유럽 다일영성수련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본원을 떠나서 하는 최초의 시도이며 유럽의 상황이 특수한지라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1년 동안 기도하며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수련회는 대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성도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수련회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셨고 가정들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수련회를 통해서 성도들이 충성스럽고 선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로 변화되어갔습니다. 시간마다 성령께서 인도하셨고, 어루만지셨고,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나는 다일영성수련회를 목회에 적극적으로 적용하였습니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가진 경우가 많기에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기도 힘들고 건강한 신앙생활도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유럽 다일 영성수련회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는 매년 계속되었으며, 해마다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참가하여 회복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제는 유럽 각국에서 수련회를 찾아오고 있으며, 우리 교회에서는 필수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특히 교회의 중직을 맡게 되는 성도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며,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하는 성도들도 의무적으로 참석하도록 하고 있으며, 모든 성도들이 경험하게 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벌써 내년도에 있을 다일영성수련회를 기다립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회복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다일영성수련회]
다일영성수련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영성수련이라                                          _전창근목사(영성신학박사)



다일영성수련회 1,2,3단계 수련은 조직 신학적으로 볼 때, 창조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종말론 등이 다함께 균형잡혀 있으면서 유기적으로 녹아져있습니다

좀 더 이 부분을 설명해 본다면,

다일영성수련회 1단계 에서는 조직신학적으로  
창조론 특히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인간창조를 분명하게 깨달음에 이르도록 이끌어 갑니다

다일영성수련회 2단계의 중심은 기독론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품과 역량을 본받아 작은 예수로 살기 위한 다양한 영적 수련들로 구성되어 있는것이 다일영성수련회의 특징입니다.

다일영성수련회 수련 3단계의 중심은 성령론입니다. 
1단계와 2단계에서도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특별히 3단계에서는 대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안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처럼 다일영성수련회는 선을 그어 구분되어지지는 않지만

다일영성수련회 1단계는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께  

다일영성수련회 2단계는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님께 

다일영성수련회 3단계는 보혜사이신 성령님께 보다 집중하며  

1,2,3단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일영성수련회는 삼위 일체적이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영성수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일영성수련회] 나 자신을 만나는 오솔길에서 만난 주님
                                                                                                _박명희 권사(소망교회)

 

 

나 자신을 만나는 오솔길에서 만난 주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마음을 아는 듯

차분하게 동행해 주던

촉촉이 내리는 비는 다정한 친구였으리

 

생각과 느낌의 틈새의 숨막힘이여, 설레임이여!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누구의 것입니까?

나는 아내의 것, 내 옷은 내것

허튼 소리 되뇌이면서도

호기심으로 가득히 문을 연다.

 

나 자신을 만나는 오솔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비밀스러운 길을 걸으며

거룩한 침묵에 무릎을 꿇었어라

 


* 이 시는 박명희 권사께서 20041단계 다일영성수련을 마치고 감동을 받아 쓴 시입니다.









[다일영성수련회] 다일영성수련회를 통해 결핵성 뇌수막염 치유                                             _ 다일영성수련회 한지혜


저는 다일영성수련
1단계 113, 2단계 32, 3단계 12기를 경험한 한지혜(기쁨)입니다.

다일영성수련을 통하여 제가 경험한 치유와 회복, 제가 경험한 하나님을 전하고자 글을 적습니다.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의 저는 영육간에 그야말로 좌절과 절망,소망이 끊어진 처참한 상태였습니다. 4년여 동안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석사과정을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던 중에 졸업학기를 남겨두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일 병원에서 척추 측만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오르간연습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4-5개월만 버티면 석사를 마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침 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으며, 마비가 오고 부축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상태를 견뎠습니다.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건강상태였지만, 한국에서 한 달간 치료를 받으면 괜찮을 정도라고 여겼습니다. 한 달간의 짧은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치료를 받을 생각으로 , 짐을 들 수도 없이 힘이 없는 쇠약한 상태로 작은 핸드백 하나를 간신히 걸치고 한국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2009년 2월 27 집에 도착해서, 3 2일 한국에서 병원응급실로 들어갔을 때, 독일에서 진단받은 것이 오진이었고, 속립성 폐결핵, 척추결핵,결핵성 뇌수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았다고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을 통보하였습니다. 그리고부터 가족들의 눈물의 기도와 많은 중보기도자의 기도를 받으며 긴 치료의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2주는 긴박하게 흘렀던 것 같습니다. 척추손상으로 이미 마비증상이 있었고, 손상된 부위가 전신마비의 위험이 있어, 수술을 해도 같은 위험을 안고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수술을 결정하고 수술날이 다가가면 고열과 구토증상이 심해져 전신마취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3번이나 수술스케줄이 늦춰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뇌수막염이 MRI상으로 머리의 90% 이상이 염증으로 차는 등 의학적으로 사망 확률이 높다는 쪽으로 증상이 더욱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결핵치료는 둘째 문제로 뇌수막염과 척추결핵치료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2-3달을 지냈습니다. 그리고는 저의 엄마께서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병이고 영이 살아야 몸도 산다고 강제로 퇴원을 시켜 6 15일 거동하기도 힘든 저를 설곡산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첫날은 진통제를 먹어도 듣지 않아 눈물이 나는   통증을 참아가며, 일차적으로 참가비 생각에 열심히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지 알아차리기 시간에는 구토증상이 있었으므로 주머니에 비닐을 챙기고 다녔지만, 너무도 신기하게 설곡산에 들어와서는 매일 식사 때, 하물며 물을 마실 때도 했던 구토를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45일의 시간, 시간이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특히 수련장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 전에 24시간을 누워서만 있던 저에게 너무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번, 두번..회가 지날수록, 화두가 하나, 둘 지날 때마다 깨어짐이 시작되듯이 다리에 힘이 생기며 치유가 되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도 좌절하고 절망하고 혼돈에 빠진 저의 영혼이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일도 목사님의 깨어남에 대한 말씀에 마지막 날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졌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설곡산의 고요함, 평온함, 진지 알아차리기 시간마다 사랑자체인 진지들, 주님 품 같은 편안한 잠자리가 질병과 각종 인위적인 치료에 지친 제 육신을 평안하게 해주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편히 잠잘 수 없었던 전과 달리 편히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4 5일 지나고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설곡산을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처음 몇 주는 회복되는 듯했지만 다시 계속되는 약물치료로 마음이 지치기 시작하면서 저희 엄마께서 1단계로는 부족하다며 2단계에 또 데려다 놓았습니다. 1단계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2단계도 경험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1단계 때 힘들었던 45일이었던 터라, 56일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고 지금이 아니고, 몸이 더 좋아지면 했음하는 마음이 더 컸었습니다. 암튼, 또다시 엄마의 강요로 설곡산에 왔을 때, 여전히 거동은 불편했고,약물치료 중이었습니다. 1단계를 마친 후 머리의 염증이 많이 가라앉아 2단계를 마친 다음날 척추수술을 위한 재검사가 잡혀있었습니다. 1단계 경험 후 가장 생각났던 것은 설곡산의 고요함과 평온함, 사랑 자체인 진지들, 편안하고 따뜻한 잠자리였습니다. 집과 병원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평안이 있었습니다. 2단계 시간들 역시 육체적 저에게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시간 깨달으면서 영과 육체가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다음날 재검사를 하고, 2주일 후 검사결과를 확인하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흉추 4-7번의 손상으로 인공뼈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새끼손톱반보다도 작은 구멍만 남기고 모두 정상이 된 것입니다. 의사선생님은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며 고개를 갸우둥 하시고는 MRI 사진을 보고 또 보고 희귀사례로 학회에 보고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다일영성수련을 통해 영적으로 제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육체적으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 일은 확실히 전할 수 있습니다.

화두가 제시될 때마다 혼란했던 생각과 느낌들이 제자리를 찾고, 죽음이란 것을 가까이 두고 혼란에 빠진 신앙관 또한 바른 믿음, 바른 삶을 향하여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저의 엄마의 영이 살아야 육이 산다라는 믿음처럼 저는 다일영성수련과정을 통하여 영육간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였습니다.

설곡산에 자연치유센터가 지어지고 있는데, 저와 같이 영육간에 병든 많은 영혼들이 이곳을 통하여 치유와 회복, 소생시키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것을 확신합니다.

3단계를 통하여 경험한 하나님을 갈망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영적경지를 매일 매일 경험하고자 소망하고 있습니다.

다일영성수련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

 

** 현재 한지혜님은 질병이 깨끗하게 완치되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다일 영성생활 수련의 신학적 독특성에 관하여

전창근 목사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MATS)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Ecumenical D.Min, 영성전공)
시카고 다일공동체 지부장


들어가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다일공동체와 최일도 목사는 청량리 588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는 밥상공동체로 알려져 있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일공동체는 최초의 개신교 무료병원인 다일 천사병원을 통해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다일공동체가 ‘나사렛 예수의 영성을 추구하는 영성공동체’임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2009년 11월 17일부터 21일까지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다니엘기도원에서 있었던 다일영성생활 수련 미주 9기에 참석하기 전까지 다일공동체에 대한 나의 이해도 위와 마찬 가지였다. 하지만 이때 다일영성생활 수련을 통한 다일영성과의 만남은 내 삶과 영성의 중대한 전환점의 시작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일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져 가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일공동체가 추구하는 영성의 열매이며, 그 뿌리가 바로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있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깨달아가고 있다. 다일영성과 다일영성생활수련에 관한 보다 전문적은 글은 추후에 다시 소개할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본 小考에서는 “설곡산 가는 길”의 창간을 축하하며 다일영성생활수련의 신학적 구조의 독특성에 관한 일반적인 특징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독교 영성이란?

영성은 정의를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단어이다. 사실 영성이란 말만큼 다양한 함의를 지닌 단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영성에 대한 정의는 영성신학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데, 그것은 사람마다 영성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성에 대한 매력이기도 하다. 영성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삶이 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성이라는 단어 앞에 기독교라는 말로 수식이 될 때 좀 더 구체성을 가지고 크리스챤인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성신학자, 마이클 다우니(Michael Downey)는 기독교 영성을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의 한 방식”으로 정의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기독교 영성은 보이지 않은 초월의 세계에 대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에서 그 현재적 삶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독교 영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뿌리내린, 성령안에서 그리스도인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태도”라고 본다. 이러한 기독교 영성에 대한 이해는 자신과 이웃과 우주와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응답을 요구한다.

기독교 영성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태도”라고 이해할 때,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그 나름의 독특함이 있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아래와 같이 5가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특한다.
 




첫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침묵수련을 지향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침묵의 영성에 물줄기가 잇대어 있다. 한국 개신교 영성이 소홀히 여겼던 “침묵의 힘”을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강조한다. 침묵(silence)은 언어다. 침묵은 하나님을 만나는 언어이다.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를 알아차리게(noticing)하는 하늘의 언어이다. 다일영성생활 수련 1단계는 침묵에 익숙하지 못한 벗님들을 위해 외적침묵을 강조한다. 2단계와 3단계는 외적침묵을 넘어, 내적침묵으로 그리고 완전한 침묵 안에 머물도록 수련한다. 침묵 없이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수 없기 때문이다. 침묵은 그 자체로도 좋은 영성수련이 되지만 다일영성생활 수련에서 특별히 침묵을 강조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이다.





둘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가슴으로 경험되어 지는 앎을 지향한다.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 1권 첫 머리에서 "앎" 특히 하나님에 대한 앎과 나에 대한 앎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물론 존 칼빈이 말하는 “앎”은 머리로 아는 앎(information)을 말하지 않는다 결혼한 부부가 서로를 아는 것 같이 경험되어지는 앎이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기독교에 대하여 머리로만 아는 앎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 가슴으로 내려오질 않는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머리로 아는 앎(정보, information)이 아니라 가슴으로 경험되어 지는 앎(변화, transformation)을 지향한다. 이런 이유로 다양영성생활 수련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 "마음으로의 여행" ”내가 나를 만나는 여행” 이라고 불리어진다.

셋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삼위 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을 지향한다.

한국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영성적 경험은 영성의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오직 기도”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예수” 등 그 자체로는 너무 귀하지만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다른 한쪽은 소홀히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기독론”을 강조하다보니 삼위 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수련에 취약하다. 다일영성생활 1,2,3 단계 수련은 조직 신학적으로 볼 때, 창조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종말론 등이 유기적으로 녹아져 있다. .

좀 더 이 부분을 설명해 본다면, 1단계에서는 조직신학적으로 창조론, 특히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인간창조를 분명하게 깨달음에 이루도록 이끌어간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창세기 1장 31절의 말씀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달아지는 경험으로 이끌어간다. 그래서 1단계에 참석하는 벗님들마다 1단계가 끝마쳐 질때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또한, 다일영성생활 수련 1단계는 인간론을 다룬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의 것인가?” 등의 화두를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이런 궁극적인 질문을 통해 형이상적인 인간론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하신 본질된 인간으로서의 “나”를 깨닫게 되어 자신과 이웃에 대하여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I am special” 과 “You are special”을 고백하게 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 2단계의 중심은 기독론이다. 그래서 2단계는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품과 역량을 본받아 작은 예수로 살기위한 다양한 영적수련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기독교적 종말론에 기초한 유서쓰기와 임종체험 수련은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영적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 3단계의 중심은 성령론이다. 1단계와 2단계에서도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특별히 3단계에서는 대 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종교개혁이후에 개신교 안에서 소홀히 여겨졌던 복음관상과 관상기도를 통해 성령님과 일상생활에서 동행하도록 돕는 수련이다.

이처럼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선을 굿듯 구분되어지지 않지만, 1단계는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께, 2단계는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님께, 3단계는 보혜사이신 성령님께 보다 집중하며 1,2,3단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삼위 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수련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깨달음을 지향한다.

인도출신의 예수회 사제인 엔소니 드 멜로는 “영성이란 깨어남”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깨어남은 깨달음을 통해서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깨달음을 지향한다. 그 깨달음은 책을 통한 깊은 연구와 사색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최일도 목사님이 가장 밑바닥 인생인 청량리 588 근처 오갈데 없는 노숙자들에게 한 그릇 라면을 끓여 대접하는 삶의 한 복판에서의 처절한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다일영성생활 수련에서는 식사 시간이 없다. “진지 알아차리기” 시간이 있을 뿐이다. 설거지라는 말 대신 “성자되기 첫걸음”이라고 부른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에서는 한 순간의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아멘과 할렐루야를 합쳐 “아하(Aha)"라는 외침을 통해 표현한다. 이런 아하 모먼트(Aha Moment)는 본질적인 화두를 반복적으로 묻고 또 묻는 과정에서 어느 한 순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의 깨달음을 경험하게 된다.





다섯째,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일상생활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열매를 지향한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세대가 다양하다. 20대부터 70대까지 참여한다. 교파도 다양하다.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는 신앙이 없는 사람도, 천주교인도, 타종교인도 참여한다. 민족을 초월한다.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인도 참여한다. 그 다양성 가운데 일치되는 점은 참여하는 벗님들 모두가 변화를 경험한다. 이것을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사실의 세계에 눈을 뜰 때, 나를 넘어 이웃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다. 변화의 결과이다. 변화는 생각의 변화, 느낌이 변화, 그리고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삶의 자리인,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는 화해와 일치, 나눔과 섬김의 삶의 열매를 맺는다. 성령의 열매가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기독교 영성수련으로서의 다일영성생활 수련에 대한 중요한 식별의 표지라고 할 수 있다.




나가면서

한국개신교는 선교 초기부터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원색적이고 강력한 영성을 바탕으로 일치성을 강조해 왔다. 반면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안에 면면히 흘러내려온 기독교 영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 누리는데 인색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는 새로운 영적의 경험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1999년 4월 5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 초라한 농가주택에서 최일도 목사님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된 다일생활영성 수련은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1단계 130기, 2단계 41기, 3단계 13기까지 진행되었고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된 영성수련을 포함하면 모두 200회 가까이 진행되었다. 다일영성수련을 경험한 이들이 1만명이 넘는다. 카톨릭에서는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의 의해 기독교 신앙의 깊은 신비를 체험하고 있지만 한국 개신교 안에는 그와 같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공인된 영성수련의 장이 없던 때에, 다일영성생활 수련은 메마른 대지에 한줄기 빗줄기와 같이 한국 개신교회 영성에 밑거름이 되었다. 다일영성생활 수련이 완벽한 개신교 영성수련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척박한 한국개신교회안에 다일영성생활 수련을 통해 주어진 영적인 부요함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Posted by shine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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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겸비 2011.12.05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성 수련을 받을 때 마다 새롭게 들려오고 깨닫게 되는 은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2. Sandule 2011.12.06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사님 이렇게 뵈니 반갑습니다.
    귀한 사역에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3. sj 2011.12.06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양한 경험과 체험,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시간-
    참 은혜입니다 !

  4. 아주나무 2011.12.07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