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일치유센터-나 만나러 가는길

다일자연치유센터 '나' 만나러 가는 길

마음이 복잡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그물처럼 잘도 엮이어 조금씩 거대해지고 있던 찰나였다. 서울에서 2시간은 족히 걸릴 곳에 취재하러 가야 한다는 부담 또한 단단히 한 몫 하고 있었고. 그러나 햇살 좋은 날, 경춘가도를 달리며 조여오던 그물눈이 조금씩 하늘 향해 풀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창문을 열고 달리다 사이드 미러 앞으로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움직여 본다. 바람이 만져진다. 내 못생긴 손은 마치 바람에 몸을 맡기며 날갯짓 하는 작은 새 같다. 다일자연치유센터. 그 곳에 가며 나는 이미 치유 받고 있었다.

‘!’알아차리기

꽤 깊은 산골이다 싶을 때 즈음 화사한 벽돌색 건물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모세라고 소개하며 친절히 취재에 응해주는 분을 자세히 보니 작년 초가을, 신문에서 언뜻 본 적이 있는, 개신교 최초의 독신수사로 알려졌던 이태형 수사다. 다일자연치유센터는 본래 최일도 목사가 다일공동체 사역자들을 위해 만든 영성생활수련원을 모태로 한다고 한다. 사역을 하다 보면 지치는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 쉼을 얻으며 회복할 수 있는 공간과 영성수련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다일공동체 사역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영성수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게 되었고, 3년 전 이곳에 다일자연치유센터를 새롭게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갈망하며.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침묵’에 이어 ‘신발 알아차리기’ 문구가 눈에 띈다. 신발이 있어야 할 곳을 ‘알아차림’으로써 영성수련이 시작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따뜻한 나무소재의 식당에서는 ‘진지 알아차리기’가 이어지고, 깨끗하게 정돈된 숙소에는 ‘나’를 알아채기 위한 ‘!’가 침묵 속에서 선명해진다. 특히 설거지를 ‘성자되기 첫걸음’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마음을 씻지 못하며 마지못해 설거지 해왔던 모습에 내심 부끄러워진다. 쩝.
200여명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강당, 그 앞에는 십자가가 없다. 대신 탁 트인 유리창 너머로 소나무가 눈부신 햇살에 반짝거리며 여전한 푸르름을 흔들어댄다. 강당과 바로 연결된 개인기도실에는 바지런히 놓여 있는 방석 위로 기도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고, 오렌지색 조명을 켜고 기도 여행을 시작한다. 주로 2단계 영성수련시 이용하는 기도실은 따로 있다. 무릎을 꿇어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리자, 작은 탄성이 절로 인다. 카타콤을 연상시키는 곳 안에 한 벽면을 가득 메운 십자가와 그 앞에 엄숙하게 자리한 관. 공간이 주는 기운과 조명이 밝히는 어두움의 무게는 진한 상징이 되어 나를 사로잡은 듯 압도한다.
각 방에 하나씩 걸려있는 다양한 십자가 형상이 눈길을 끈다. 늘 보았던 십자가인데, 하나하나 새롭고 강하게 다가와 한참을 응시해본다. 너무 흔해 쉽게 지나쳤던 도심 속 빨간 십자가, 그 얄팍한 시선을 꾸짖기라도 하듯. 다일자연치유센터의 모든 것은 이처럼, 쭈욱 둘러보며 한 번에 선을 휙 긋기 보다는, 한 곳에 꽤 오래 서서 힘주어 점을 그리는 기분으로 한 두 박자 쉬고 천천히 숨을 고른 후에야 발걸음을 띄게 한다.

우주여행으로의 초대

 다일자연치유센터는 현재 ‘아름다운 세상 찾기(1단계)’, ‘작은 예수 살아가기(2단계)’, ‘리더 세우기(3단계)’를 마련하여 최일도 목사와 김연수 사모 및 그 외 안내가들이 이 영적 우주여행을 함께 인도하고 있다. 또한 5박 6일간의 ‘침묵피정’ 프로그램이 올해부터 새로 선보인다. 침묵을 통해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듣고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내가 누구인지, 어느 곳에 있는지, 무얼 바라보는지 물어본다. 이태형 수사에게도 처음 다일공동체를 접하며 자신을 이끌었던 질문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 였다고 한다. 나의 문제 때문에 내가 보던 것만 보고, 듣던 것만 들으며 살아왔지만, 영성수련 과정을 통하여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내 자신이 열려간다. 그렇게 옥토로 기경된 마음밭에 말씀이 뿌려지기 시작하고 ‘아하!’ 하는 깨달음은 이전과는 다른 실천의 삶을 살게 한다. 


 건물 주위에는 나무로 정돈된 친절한 산책로가 있다. 이 길을 걸을 땐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물과 돌과 흙과, 그리고 나와 하나님만 있으면 좋겠다. 입춘이 지나 내린 눈 때문인지 채 녹지 못한 눈이 작은 호수를 덮고 있다. 얼어 있는 듯 보였던 개울가를 지나는데, 졸졸졸…. 아, 물소리다. 돌과 돌 사이에서 청아하게도 울린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올 수록 이 자연 속에 그저 파묻혀 있고픈 어리광이 늘어가지만, 설곡산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하는 길,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행은 가끔, 가고 오는 길이 외려 더 좋다. 어딘가를 향하는 것 자체가 내포하는 ‘생기’ 때문이겠지. 새싹을 향하는 앙상한 가지에게서, 물이 되는 꿈을 꾸며 기지개를 켜는 하얀 눈에게서, 그 ‘생기’를 듬뿍 받으며 봄을 마중하자. 참다운 나를 향하여 걸어가는 그 길에 서서 이제 봄을 살아내면 좋겠다.
눈 녹아 물이 되듯, 진정한 영성은 일상에서 녹는다.

문화매거진 오늘, 노영신 기자|belief1120@hanmail.net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