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디 있느냐? (1)”

 

설곡산 다일공동체 예배실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걸린 글씨가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는데 “네가 어디 있느냐?”는 창세기 3장 9절의 말씀입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써주신 글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자신이 스스로에게 직접 묻는 화두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라면 “네가 어디에 있느냐? 는 나는 누구인가와 동일한 질문처럼 들리지만 공간과 시간을 넘어 계신 초월자와 유한한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궁극적이며 너무도 꼭 필요한 필연적인 질문입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던진 첫 번째 질문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는 질문이었던 것처럼 여러분이 마음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귀를 갖고 듣고자 한다면 여러분을 향해서 하나님은 여전히 오늘도 이렇게 물어 오실 것입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범죄한 아담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4:10)” 하나님의 첫 질문과 아담의 이 대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러분이 혼자서 목욕을 할 때 누구도 보고 있지 않다면 내가 옷을 벗고 있는 것이 과연 부끄러울까요? 혼자서도 자기의 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조금 문제가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또 있다면 서로 한 몸을 이룬 부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중 앞에서 거룩한 서약을 하고 온전히 하나된 부부는 서로 벗은 몸을 보고 보이더라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부부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렇다면 그 부부가 아직 한 마음과 한 몸이 덜 되었다는 증거겠지요. 죄의 결과로 하나님과 분리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생겨난 순간부터 “나”를 의식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나의 생명, 나의 재산, 나의 가족, 나의 명예, 나의 그 무엇에 매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하고 애써 귀를 막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서보지도 그 음성 들어보지도 못하고 한 세상 그렇게 아무 깨달음 없이 낙엽처럼 가버리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친구 여러분,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잘 묵상해보시길 권합니다. 아직 무언가 부끄러워하고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면 그 숨겨둔 부분들이 하나님과 하나 됨을 막고 있는 가장 큰 장벽이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서 계신 그곳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고백과 사죄의 은총을 누리는 자리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하나님께 등을 돌린 부끄러움의 자리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태도는 두 가지뿐입니다. 꼭꼭 숨어버리든지 제가 여기 있나이다 하던지 입니다. 아하! www.dail.org

 

 

Posted by 다일공동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