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대와 다일영성수련회

                                                           
                                                       유 장춘
           (한동대학교 사회복지학교수/청하교회 협동목사)

그 때 나는 군중 속에 섞여서 흐느끼고 있었다.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의 어깨가 바라보이는 곳, 아아! 그 고독한 옆모습, 거기서 나는 왜 예수님과 함께 옆에 서 있어 드리지 못할까!’ 라고 탄식하며 눈물만 삼키고 있었다. 문득 예수님의 고개 숙인 얼굴이 내 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그 입가에 미미하게 떠오르는 미소를... 그리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신 그분의 마음을 분명히 눈치 챌 수 있었다. 그 미소와 함께 나는 모든 슬픔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래, 예수님이 나의 마음을 알아 주셨어. 그러면 됐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야말로 예수님과 내가 주고받은 그 시선과 미소 속에서 존재와 존재가 연결되는 것을 경험한 것이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여러 시간 울고 또 울었다. 설곡산에서 있었던 다일공동체 영성수련 하나님과 동행하기수련 중에서 예수님의 빌라도 법정을 기록한 마가복음 15장을 묵상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이다.

그 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누구와도 사랑의 관계를 맺으리라 작정했고, 공동체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으며, 스스로 가난해지길 결심했다. 이제 내 삶은 더 이상 내 삶이 아니고, 내 소유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 것에 대하여 뭔가 글로 써서 남겨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쓸 수는 없었다. 그 감격과 기쁨이 글로 표현되기에는 너무 강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나 할까... 여러 번 쓰고 싶었던 말들, 그러나 막상 쓰려고 하면 망설여지곤 했던 생각들, 그냥 그런대로 놔두고 싶었던 기억의 편린들을 다시 꺼내어 쓰려고 하니 또 다시 막막해진다.

그 겨울날 온몸에 쏟아지던 햇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던 바람, 사방에 가득했던 적막, 발밑에 바스락 거리는 낙엽, 너무나도 진지했던 존재의 근본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깊은 침묵과 함께 내 마음에 애잔히 흐르던 그 고백들... 사방에 둘러싼 모든 것이 예리한 의식의 날카로운 의미로 다가오던 그 때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기억의 가장 초기부터 나는 목사의 아들로 자라났다. 그 많은 배움의 과정들 속에서 알고 깨달은 것들은 사실 생각의 영역 속에 갇혀 있었다. 다일공동체 영성수련회 아름다운 세상 찾기에서 아내와 함께 참여했던 나는 여러 사람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많은 눈물과 함께 아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를 되찾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동료들을 찾았고 그리고 아름다운 나 자신을 찾았다. 왜 살지? 뭘 위해 살지? 어떻게 살지? 그 질문들에 대한 생각들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끌어내리고 나는 자유를 경험했다. 이미 배워서 잘 외우고 있었던 것들,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지만 아직도 그것들은 머리에만 담겨 있던 것들이었다. 50이 넘어선 나이, 이제야 그 본질을 향한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오고 가는 세월 속에서 오직 의미 있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순간들이다. 영원하지 않은 그 무엇도 한 순간과 같이 사라지는 것들일 뿐이다. 이 우주조차도 영원하지 않기에 잠시 쓰다가 망가지면 버려지는 장난감과 같은 것이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들만 영원한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갈 것이다.

설곡산다일공동체 영성수련원으로 가는 길은 나에게 있어서 그 영원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 곳에서 얻은 나의 마음을 시 비슷한 것으로 표현해 보았다.

 

그렇게 살고 싶다.
 

좋은 일을 하고도 이름을 내지 않고

선한 일을 하고도 얼굴 들어내지 않으며

큰 업적을 이루어도 공을 내세우지 않고

위대한 깨달음을 얻어도 깊이 침묵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많은 돈을 벌어도 가난하게 살며

높은 지위에 올라도 소박하게 살며

권위 있는 자리에 앉아도 친절하게 대하고

나이가 많아져도 어린애처럼 순진한

그래, 그런 삶을 살고 싶어.

 

모욕을 당해도 미소를 잃지 않고

억울해도 변명하지 않으며

늦어도 조급하지 않고

빼앗겨도 아까워하지 않는

그렇지, 그런 삶을 살아보자!

 

바위처럼 견고하게

물처럼 자유롭게

햇볕처럼 따듯하게

바람처럼 시원하게

별처럼 영롱하게

그래!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거야!

 

한 세상 사는 것 부질없다 하지만

이왕 한 번 사는 것 그렇게 살고 싶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어찌 그리 모자란지

부끄러워 후회하며 또다시...

그렇게 살고 싶다. 

                              (2009년 겨울 설곡산에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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