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소나무들처럼 독야청청하기를..."

 

나 또한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까요?

소나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겹게 보인다던데

설곡산의 소나무들을 만날 때마다

정겹다 못해서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먼저 인사를 건네게 됩니다.

 

우뚝 솟아 있으면서도

산세에 순응하면서 과묵한 소나무

밤이면 밤마다 달님과 별님과

아무 말 없이도 많은 말을 주고 받더니

또 시간만 되면 하늘을 우러러

침묵기도를 드리더니

늘 푸른 잎으로 독야청청 우뚝 서서

이 산을 온 종일을 든든히 지켜주는

소나무들은 이미 헤어질 수 없는

애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공동예배를 마친 후 경내를 산책하다가

방안에 들어와서 그림책을 펼쳤는데

추사가 그린 ‘세한도’에

그만 눈길이 멈추어졌습니다.

보다가 ‘아하!’하며 무릎을 딱 쳤습니다.

 

추사가 귀향살이를 할 때

관직에 있던 그의 제자가 끝까지

사제지간의 예와 의리를 지킨 사실에 감탄하여

그를 송백에 비유하며 그림으로 표현한 ‘세한도’

끝까지 예를 갖춘 제자의 의리가 보이고

제자에 대한 깊은 정과 고마움을 표현한

스승의 깊은 정과 사랑도 보이면서

그만 감동이 가슴 깊이 물결 쳐와서

그림이 말을 걸어온다는 경지가

바로 이 경지겠구나 싶었습니다.

 

백년을 하루 같이

천년을 한해 같이

늘 푸르게 푸르게 사는

설곡산의 소나무들처럼

다일공동체 가족들이여!

그대들의 꿈과 기상이야말로

저, 소나무들처럼 독야청청하기를...

아하!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사제지간 예와 의리를 지킨 사실에 감탄하여... 아하!



Posted by 비회원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한 청년이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목사님, 제가 꿈에 지옥을 갔었는데요,
아, 글쎄 지옥에서는 천국이 보이는데
천국에서는 지옥이 안보인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 청년은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지옥에서는 천국이 다 보이니까요.
아니, 저 녀석이 천국에 가있어?
저런 저런, 저럴 수가! 아, 또 저 사람은 뭐야?
나보다 얼마나 형편없이 산 인간인데, 아이고!
나는 지옥에 있고 저사람은 천국에 있어?
그러면서 계속 분노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꿈속의 이야기이지만 그 친구 이야기처럼
지옥생활은 내가 나를 못보고
늘 다른 곳만 바라보는 마음 같습니다.


비교와 경쟁이 난무하는 곳
판단과 정죄와 원망으로 늘 고통스러운 곳.
저세상은 안가봐서 몰라도
이세상에 현존하는 지옥은
늘 남만 바라보며 열등감으로 인해 모함하는 곳
우월감으로 인해 남을 멸시하는 마음이
지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자기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뽑아주겠다며
결사적으로 덤벼드는 오만과 독선이야말로
지옥 같은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시기와 질투와 다툼과 중상모략 일삼는 마음이 
지옥 아니면 과연 그 어디가 지옥일까요?


자유와 기쁨과 감사와 노래는
도무지 찾을 길이 없고 생명 있음 만으로도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 못하는 마음,
생명의 주인까지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
천하보다도 귀한 한 생명을 경시하는 마음이
현존하는 지옥 아닐까요?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하!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Posted by 비회원

名作을 만드는 인생으로...

몇 백년이 흘러도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고
후세사람들에게 명작이라고 명명되는 것은,
물감이나 재료를 많이 썼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부피나 크기가 있어서만도 아닐 것입니다.
빨리 그렸다거나 오래 걸려서도 아닐 것이고
그 작품에 쏟아부은 작가의 열정과 고뇌와
고통의 산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전에 쉽게 만나보지 못했던
작가만의 상상력과 창의력일 수도 있는데
명작은 벌써 대하는 순간부터
가슴에 무엇인가 꽂히는 감동이 일어납니다.
그만큼 작가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했고
혼신의 힘을 다 쏟았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명작은 언제 보아도 힘이 있고
누가보더라도 그 작품성을 인정하며
후손 대대로 전해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부디, 서두르지 마시고
큰 것만을 원하지도 마시고
재료나 사람들을 많이 모으려고 애쓰지 맙시다

맡겨진 일이 작든 크든 
남이 알아주든 말든
늘 불꽃같은 정열로 그려갈 수 있다면
태워도 태워도 재가되지 않는 참사랑으로
꾸준히 온맘다해 정진 할 수만 있다면
그 인생이야 말로 하나님의 걸작품이요
명작 중에 명작으로
오래오래 기억될테니까요...
아하!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名作을 만드는 인생으로...

Posted by 비회원

"청년 준모에게 청년 일도가…"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설날 인사를 남기다가
내친구 준모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스무살 풋풋한 청년으로 다일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지금은 다일교회 집사가 된 준모형제의 글을 읽고
어찌나 감동이 되고 눈물이 고이던지요.


정신 지체 장애인들을 섬기는
마라 그룹홈의 영원한 교사인 내친구 준모는
본인 자신도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이미 극복된 장애는 더 이상의 장애가 아니기에
나는 처음부터 단 한번도 그를 장애인으로
바라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그는 항상 떳떳한 친구요
다일교회 담임목사로 이십년 생활 중에 만났던
수 많은 청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 가운데 한사람입니다.


마라 그룹홈은 부모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장애아를
일정기간 위탁받아 돌보는 시설입니다.
명절때가 되면 모두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에
잠시 쉼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건만
그런데, 어떤 아이의 부모님이 병으로 고통당하여
명절에도 집에 갈 수 없는 아이가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장애아이들의 선생님인 준모는
설 연휴에도 꼼짝없이 그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 돌보아야 했답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은
자신이 설연휴를 반납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장애아를 가진 부모님들은
단 하루도 맘 편히 아플 수도 없이 마음 졸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가슴 아픈 현실이
너무너무 안쓰럽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준모 나이가 벌써 마흔이 넘었지만
저에게는 늘 이십대 초반의 청년으로 보입니다
청년 준모에게 청년일도가 설날 인사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준모야!
극복된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고마운 준모야!
난, 자네를 참으로 소중하게 여길 뿐만아니라
그런 자네를 진실로 존경하는 동역자로 여긴다네
자네의 지속적인 사랑이 살맛없는 그분들을
살맛나게 하고. 꾸준히 밥맛나게 하는거 잘 알지?
그러니 자네도 제발 아프지 말고
부디, 건강 잘 챙기시게나!
우리 빠른 시일내 꼭 만나서
따뜻한 밥에 동태찌개 나누어 먹자꾸나
사랑해! 사랑한다구!...”
아하!

아하목사의 행복편지

2009년 정준모 형제의 사진전에서...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