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일공동체

작은천국 가족들이 쓰는 성경필사 노트들


다일공동체

작은천국의 매일 성령임재시간(찬양시간)



  ‘다일작은천국’은 천국이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면 얼마든지 천국같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으로 명명된 것입니다. 실제로 다일작은천국 일상 생활 중에 하나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아, 여기가 천국이야, 천국!” 하며 감탄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 함께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은 있고 성격차이로 인해

친가족들간에도 불화와 갈등이 있으련만, 특히 가족과 등진 채 혼자 이리저리 떠도는 삶을 살았던 이 분들이야말로 상처로

찢기워진 마음에 몸은 중병까지 얻은 상황이니, 생면부지의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서 공동생활 한다는 게

얼마나 더욱 어렵겠어요?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함께 깔깔거리며 친가족처럼 살뜰한 정을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투닥투닥 다툼이 일어나고 서로 삐지기도 합니다.

이 분들의 그런 모습을 볼 적이면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웅다웅 하면서라도 함께 살아간다는 게

오히려 마음 한 켠 고맙게 느껴집니다. 함께 더불어 산다는, 생명이 살아있다는, 바로 그런 반증 아닐까요? 

이따끔씩 그렇게 한 바탕 작은 소란을 피우다가도 매일 드리는 성령임재시간(찬양시간)을 통하여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 중 몇몇 분들은, 요즘, 성경필사 열기가 가득합니다. 처음엔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혹은

시간 때우기용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하루 하루 성경필사를 하면서 사막에서 꽃이 피듯, 믿음도 생기고 그 연약한 믿음에서

싹도 나고 이파리도 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직은 겨자씨만한 여린 믿음들이지만, 이들이 성경필사를 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갈 적마다 우리 주님께서

직접 양분을 뿌려주셔서 믿음의 여린 싹이 잘 성장하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혹 누가 알아요? 

아직은 불어오는 바람에 이러저리 흩날리며 나부끼지만, 고 겨자씨만한 믿음이 자라나서 맛난 열매를 주렁주렁 달리게 할

큰 과실나무가 될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 후원천사님들께서도 함께 기도해주실 거죠?  

다음은 다일작은천국 가족 중에 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서00님이 쓴 편지 일부랍니다.

요즘은 깊은 가을이네요.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하고 이제 추위까지 살살 느껴집니다. 곧 겨울도 오겠지요? 

제가 이 곳 다일작은천국에 오기 전엔 인사도 할 줄 모르고 웃을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두려움으로 꽁꽁 얼어있던 제 마음이 열리고, 절로 웃음이 나오고 먼저 인사하게 되고, 여러 선생님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담배도

끊고. . . .  이제야 사람답게 되어가는 것 같아요.

요즘은 성경을 쓰면서 알게 모르게 얻어지는 깨달음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며, 남의 것을 탐내지 아니하며,

악행을 하지 아니하며, 선행을 행하면 그 선행을 받되, 악행을 하게 되면 죄악을 받게 됨을 성경에서 배우며 깨닫게 됩니다.
 
  저에게 성경쓰기는 이제 시간 때우기가 아니며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라 제가 이제껏 모르고 살아왔던 배움과

깨달음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루하루 변해가기를 서두르지 아니하시며

사랑의 기도로 기다려주심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전 한번씩 6층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가끔은 참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위해 달리는 걸까?” 이런 생각도 잠시 해보구요.

그런 것 하나 하나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 곳에 올 수 없었다면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일작은천국, 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 다일작은천국 입소자들을 위하여 사랑어린 후원금과 물품을 보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모든 후원천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일작은천국에서는 가장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섬기기 위하여 만사회원” “자원봉사자” “후원물품을 기다립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함께 나누고, 함께 섬기고,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이 땅에 작은 천국을 가꿔주세요. 바로 당신이 작은천국을 천국되게 하는, 작은 이들을 위한 천사가 되실 수 있습니다.

만사회원 : 한달 1만원씩 1년 동안 후원함으로써 가장 가난하고 병든 분들을 위해

얼굴없는 천사가 되어주실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자 : 누구든지 관심과 사랑만 있다면 가장 가난하고 병든 분들을 위하여 식사

수발, 목욕, 이미용, 세탁, 주방, 청소 등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의

프로그램 운영, 호스피스 케어, 장례봉사 등 보다 전문적인 봉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필요한 후원물품 : 겨울내의, 팬티, 양말, 수건, 치약, 샴푸, 휴지 등 생필품류

문 의 : 02-2213-8004

 

Posted by 다일공동체

 201111월 하얀 눈이 내린 설곡산다일공동체에서 133기 벗님들이 깨어남의 기쁨을 안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를 잘 마친 모든 벗님들께 전창근 목사님의 글을 전해드립니다
^^
여러분들의 깨달음에 또 다른 깨달음이 더하여지길 소망합니다
.
감사합니다.

다일영성수련2011년 겨울 설곡산다일공동체

[설곡산다일공동체]
밥퍼 최일도 목사가 인도하는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의 기독교 영성에 대하여

전창근 목사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MATS)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Ecumenical D.Min, 기독교영성 전공)
미주다일공동체 지부장 

 

설곡산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원 침묵의성지설곡산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원 '침묵의성지'





들어가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다일공동체와 최일도 목사는 청량리 588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는 밥상공동체로 알려져 있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일공동체는 최초의 개신교 무료병원인 다일 천사병원을 통해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다일공동체가 나사렛 예수의 영성을 추구하는 영성공동체임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20091117일부터 21일까지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다니엘기도원에서 있었던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 미주 9기에 참석하기 전까지 다일공동체에 대한 나의 이해도 위와 마찬 가지였다. 하지만 이때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을 통한 다일의 기독교영성과의 만남은 내 삶과 영성의 중대한 전환점의 시작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일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져 가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다일공동체가 추구하는 영성의 열매이며, 그 뿌리가 바로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에 있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깨달아가고 있다. 다일공동체의 기독교영성과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에 관한 보다 전문적은 글은 추후에 다시 소개 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小考에서는 설곡산 가는 길의 창간을 축하하며 다일공동체 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의 신학적 구조의 독특성에 관한 일반적인 특징을 소개하고자 한다.


설곡산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원설곡산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원 영성수련 프로그램 중에서..




기독교 영성이란?  

영성은 정의를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단어이다. 사실 영성이란 말만큼 다양한 함의를 지닌 단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영성에 대한 정의는 영성신학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데, 그것은 사람마다 영성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성에 대한 매력이기도 하다. 영성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어떤 개념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삶이 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성이라는 단어 앞에 기독교라는 말로 수식이 될 때 좀 더 구체성을 가지고 크리스챤인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성신학자, 마이클 다우니(Michael Downey)는 기독교 영성을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의 한 방식으로 정의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기독교 영성은 보이지 않은 초월의 세계에 대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에서 그 현재적 삶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독교 영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뿌리내린, 성령안에서 그리스도인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태도라고 본다. 이러한 기독교 영성에 대한 이해는 자신과 이웃과 우주와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응답을 요구한다 

기독교 영성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태도라고 이해할 때, 다일영성생활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그 나름의 독특함이 있다.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아래와 같이 5가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특한다

 

첫째,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침묵수련을 지향한다.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침묵의 영성에 물줄기가 잇대어 있다. 한국 개신교 영성이 소홀히 여겼던 침묵의 힘을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에서는 강조한다. 침묵(silence)은 언어다. 침묵은 하나님을 만나는 언어이다.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를 알아차리게(noticing)하는 하늘의 언어이다.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 1단계는 침묵에 익숙하지 못한 벗님들을 위해 외적침묵을 강조한다. 2단계와 3단계는 외적침묵을 넘어, 내적침묵으로 그리고 완전한 침묵 안에 머물도록 수련한다. 침묵 없이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침묵은 그 자체로도 좋은 영성수련이 되지만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에서 특별히 침묵을 강조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이다 

둘째,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가슴으로 경험되어 지는 앎을 지향한다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 1권 첫 머리에서 "" 특히 하나님에 대한 앎과 나에 대한 앎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물론 존 칼빈이 말하는 은 머리로 아는 앎(information)을 말하지 않는다 결혼한 부부가 서로를 아는 것 같이 경험되어지는 앎이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기독교에 대하여 머리로만 아는 앎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 가슴으로 내려오질 않는다.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머리로 아는 앎(정보, information)이 아니라 가슴으로 경험되어 지는 앎(변화, transformation)을 지향한다. 이런 이유로 다양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 "마음으로의 여행" ”내가 나를 만나는 여행이라고 불리어진다 

셋째,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삼위 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을 지향한다.  

한국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영성적 경험은 영성의 한쪽 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오직 기도”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예수등 그 자체로는 너무 귀하지만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다른 한쪽은 소홀히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기독론을 강조하다보니 삼위 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수련에 취약하다.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 1,2,3 단계 수련은 조직 신학적으로 볼 때, 창조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종말론 등이 유기적으로 녹아져 있다. 

좀 더 이 부분을 설명해 본다면, 1단계에서는 조직신학적으로 창조론, 특히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인간창조를 분명하게 깨달음에 이루도록 이끌어간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창세기 131절의 말씀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달아지는 경험으로 이끌어간다. 그래서 1단계에 참석하는 벗님들마다 1단계가 끝마쳐 질 때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또한,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 1단계는 인간론을 다룬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의 것인가?” 등의 화두를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이런 궁극적인 질문을 통해 형이상적인 인간론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하신 본질된 인간으로서의 를 깨닫게 되어 자신과 이웃에 대하여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I am special” “You are special”을 고백하게 한다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 2단계의 중심은 기독론이다. 그래서 2단계는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품과 역량을 본받아 작은 예수로 살기위한 다양한 영적수련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기독교적 종말론에 기초한 유서쓰기와 임종체험 수련은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영적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 3단계의 중심은 성령론이다. 1단계와 2단계에서도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특별히 3단계에서는 대 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종교개혁이후에 개신교 안에서 소홀히 여겨졌던 복음관상과 관상기도를 통해 성령님과 일상생활에서 동행하도록 돕는 수련이다 

이처럼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선을 굿 듯 구분되어지지 않지만, 1단계는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께, 2단계는 구원자이신 성자 예수님께, 3단계는 보혜사이신 성령님께 보다 집중하며 1,2,3단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삼위 일체적으로 균형 잡힌 영성수련회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깨달음을 지향한다.

  인도출신의 예수회 사제인 엔소니 드 멜로는 영성이란 깨어남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깨어남은 깨달음을 통해서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깨달음을 지향한다. 그 깨달음은 책을 통한 깊은 연구와 사색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밥퍼 최일도 목사님이 가장 밑바닥 인생인 청량리 588 근처 오고갈 곳 없는 노숙자들에게 한 그릇 라면을 끓여 대접하는 삶의 한 복판에서의 처절한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에서는 식사 시간이 없다. “진지 알아차리기시간이 있을 뿐이다. 설거지라는 말 대신 성자되기 첫걸음이라고 부른다.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에서는 한 순간의 깨달음을 얻는 경험을 아멘과 할렐루야를 합쳐 아하(Aha)"라는 외침을 통해 표현한다. 이런 아하 모먼트(Aha Moment)는 본질적인 화두를 반복적으로 묻고 또 묻는 과정에서 어느 한 순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의 깨달음을 경험하게 된다  

다섯째,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일상생활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열매를 지향한다.

  설곡산다일공동체 영성수련원과 미주 다일공동체에서 진행하는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세대가 다양하다. 20대부터 70대까지 참여한다. 교파도 다양하다. 1단계 아름다운 세상 찾기는 신앙이 없는 사람도, 천주교인도, 타종교인도 참여한다. 민족을 초월한다.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인도 참여한다. 그 다양성 가운데 일치되는 점은 참여하는 벗님들 모두가 변화를 경험한다. 이것을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사실의 세계에 눈을 뜰 때, 나를 넘어 이웃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다. 변화의 결과이다. 변화는 생각의 변화, 느낌이 변화, 그리고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다일영성생활수련(다일영성수련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삶의 자리인,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먼저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는 화해와 일치, 나눔과 섬김의 삶의 열매를 맺는다. 성령의 열매가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기독교 영성수련으로서의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에 대한 중요한 식별의 표지라고 할 수 있다.

  나가면서 

한국개신교는 선교 초기부터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원색적이고 강력한 영성을 바탕으로 일치성을 강조해 왔다. 반면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안에 면면히 흘러내려온 기독교 영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 누리는데 인색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는 새로운 영적의 경험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199945,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 초라한 농가주택에서 최일도 목사님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된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지금까지 국내 설곡산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원(다일영성수련회)에서만 1단계 130, 2단계 41, 3단계 13기까지 진행되었고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된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을 포함하면 모두 200회 가까이 진행되었다.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를 경험한 이들이 1만 명이 넘는다. 카톨릭에서는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의 의해 기독교 신앙의 깊은 신비를 체험하고 있지만 한국 개신교 안에는 그와 같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공인된 영성수련의 장이 없던 때에,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은 메마른 대지에 한줄기 빗줄기와 같이 한국 개신교회 영성에 밑거름이 되었다.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이 완벽한 개신교 영성수련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척박한 한국개신교회안에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을 통해 주어진 영적인 부요함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설곡산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원에서 실시된 다일영성수련회(다일영성수련)에 참석한 벗님소감

다일공동체 홍보대사다일영성수련 참가벗님 배우 류승범님다일공동체 홍보대사다일영성수련 참가벗님 영화감독 류승완님


류승범 (영화배우)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을 통해 저는 천국의 잔치를 맛보았습니다.
치유와 회복, 자유와 기쁨을 새롭게 체험한 저에게 이 세상은 참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류승완 (영화감독)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의 4박 5일 시간이 제게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다줬어요.
침묵하면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됐어요.
창조의 질서가 보여서 참 신기하고 놀라웠죠.
사실을 보는 힘!
진실을 아는 힘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온몸으로 느낀 것 같아요.
그 진실이 보이니까 제 자신과 예수님이 보였던 것 같아요.

다일공동체 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 참가벗님 한비야님다일공동체 홍보대사다일영성수련 참가벗님 한성주님

한비야 (유엔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
내 인생에서 못해본 여행이 딱 두가지 있다.
신혼여행과 우주여행.
신혼여행이 얼마나 멋질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경험한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의 영적우주여행은
여태까지 내가 한 여행중에서 가장 멋지고 황홀한 여행이었다.

한성주 (아나운서)
다일공동체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찾은 저는 참 기쁨으로 천국의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주님 주신 자유의 노래를 부르며
일체 은혜 감사뿐임을 고백합니다.

Posted by shinekang



날씨가 추워지면서 노숙인들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점퍼를 입히기보다
영적으로 깨우쳐주는, 의미있는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이 열렸습니다.

이들은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 사흘동안
지나온 날을 돌아보고
재활의 의지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송주열 기잡니다.

햇살이 화사한 주일아침.
예배에 참석한 노숙인들이 성도들로부터
십자가 목걸이와 꽃을 선물 받고 서로를 축복합니다.

다일영성수련최일도목사

이들은 사흘 동안 진행된
다일영성수련을 마친 노숙인들입니다.

3일 전, 다일영성수련(다일영성수련회)을 시작할 때는
노숙인들이 과연 공동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최일도목사 / 다일영성수련원장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마쳤어요.
어쩌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잘 따라하셨는지"

서울지역 12개 쉼터에서 모인 38명의 노숙인들은
섬김을 자처한 자원봉사자 52명과 함께
지금까지의 삶과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큰 깨달음은
자신도 소중한 하나님의 작품이란 것이었습니다.

다일영성수련인도자 최일도목사



서갑희(52세)/노숙인
"목사님과 봉사자가 발에다 입을 맞추는 예배 의식이 있었습니다.
눈물로 드릴 때는 저희도 사람이구나..."

사업실패와 이혼,
그리고 3년의 노숙생활 뒤 남은 것은 폐암 4기 선고.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던 김세동 씨는
이번에 관용과 용서를 배웠습니다.

김세동(59세)/노숙인
"지금까지는 즉흥적으로 살았는데
최일도목사님 강연 중에 몇 번 느낀 것인데,
아 저렇게 하면은 제가 성경말씀 모르지만은
오른 뺨 내주면 왼뺨 내준다 하데요.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일영성수련최일도목사와 함께..



모든 관계가 다 끊어진 듯 했던 노숙인들.
이들은 지난 3일 동안 자신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적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다일영성수련회] 다일영성수련, 도대체 뭐기에?  _ 다일영성수련 소감문



                                                                                                                           - 이 명 현 (질그릇의 기쁨)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으로부터 다일영성수련에 가보라는 추천을 처음 받았을 때, 솔직히 난,

그 곳이 어떤 곳인지를 전혀 알지 못 했었다.

다일공동체의 초창기, 청량리역 주변 허름한 건물 꼭데기에 있을 때 그 거리를 지나면서 본 적이 있었고,

최일도목사님은 TV 를 통해 두어번 뵌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사역을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그 곳을 찾아가봐야겠다 라고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다일영성수련에 대해서는 전혀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평소에 심령이 갈급할 때면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즐겨 찾아가거나 아니면

서울 가까운 곳 조용한 기도원이나 수도원 같은 곳을 찾아다니곤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곳은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나와 같은 예장 통합 측에 속한 최일도목사님이 직접 인도하신다는 다일영성수련에 대해서는

내가 전혀 들은 바가 없어서 생소하였고, 그 생소함은 나로 하여금 왠지 모르게 썩 마음 내키지 않게 작용하였다.

다시 말하면, 난 나를 추천한 분의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등떠밀려서 마지못해 가게 된 것이었다.

그 분은 왜 내 등을 떠미는 것이었을까?

다일영성수련, 도대체 뭐기에?

 




그렇게 등떠밀려 다일영성수련을 참석해 보니 참으로 생소했고 진행되어지는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다일영성수련을 영적우주여행이라 부르고, 최일도목사님을 인도자 북극성님이라 부르고,

인도자가 말씀을 전할 때에는 영성수련 참석자들이 아멘 대신 아하~ 로 화답하고,

아하~ 는 아멘과 할렐루야의 합성어라는 설명은 들었지만 왠지 좀 어색했고,

식탁을 앞에 놓고는 진지알아차리기를 하고....

졸지에 외계인의 세계에 온 듯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만 나도 모르게 스스로 달팽이처럼 웅크리게 되었다.

이 생소한 모임에서 괜히 이상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더듬이를 곧추 세워야 했다.

그리고 여차 하면 단단한 껍질 속에 얼른 몸을 숨기리라.

 

다일영성수련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진행방식이 매우 파격적이었다.

이미 사도신경 신앙고백을 하며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계속 “당신은 누구입니까?” 를 집요하게 묻지를 않나,

화두를 돌리면서는 “그게 화가 날 일입니까?” “그러면, 당신은 왜 화를 냈습니까?” 를 반복 반복하면서 묻지를 않나,

정말이지 그 집요하고도 끈질긴 질문 때문에 오히려 화가 팍! 나서 중도에 포기하고 나와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생소하고 낯설기 짝이 없는 영성수련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다른 한 켠으로는,

하나님께서 내게 친히 육성을 들려주시는 듯 순간 순간 화살처럼 성경말씀들이 나의 가슴으로 팍 팍 날아와 꽂히는 것이었다.

달팽이 같았던 내 마음이 서서히 풀리면서 마치 예수님의 발치에 앉은 마리아처럼 그렇게 말씀 앞에서 집중하고 있었다.

나중에 어떤 벗님의 말에 의하면,  내가 북극성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리없이 눈물만 주루륵 주루륵 흘리더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달고 얼마나 오묘하던지,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웠다.

밥퍼와 천사병원을 비롯한 다일공동체의 모든 사역들이 지극히 작은 자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최일도목사님과 김연수사모님을 통하여 친히 행하신 큰 역사였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심지어는 두 분의 열애와 결혼조차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치밀한 섭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하나님의 사랑이 성경 속에서 튀어나와 이 시대에 우리 눈 앞에서 직접 펼쳐지는 듯 했다.

 





특히 내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축제였다.

우리 기독교에서 이런 축제가 가능하다니?

늘 경건과 엄숙함과 억제된 듯한 교회의 분위기에 젖어있던 내게

다일영성수련 중의 한 테마인 경축훈련은 내게 신선하고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아, 우리 기독교인들도 이런 축제를 즐길 수 있다니,  

음주가무가 아니고도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맘껏 즐긴다는 건 나로선 상상도 못 했었다.   

아아.... 우린 기독교적 신앙적 분위기 아래 그 얼마나 틀 안에 갇혀 지냈던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이 시대에도 살아있었고 우리 앞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렇다.

난 다일영성수련을 통하여서 진정으로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답던지,

어줍잖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비감이 물결처럼 다가와 내 가슴을 적시었다.

“아아... 사람이 꽃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평생토록 탄식만 했던 내가

다일영성수련을 통하여서 “아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를 목청껏 노래하게 되었다.

 





어디 나 뿐인가? 다일영성수련에 참석한 다른 벗님들에게서도 놀라운 일들이 목격되었다.

남편과의 이혼을 작정하고 다일영성수련에 참석한 한 벗님은

“언니, 형부와 이혼하더라도 제발 그 전에 다일영성수련에 한 번만 참석해줘. 그리고 나서 이혼해도 늦지 않으니까 언니 제발! ” 라고

호소하던 동생의 간곡한 청 때문에 억지로 다일영성수련에 참석했다가 깨어남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찾은 벗님.

그 벗님은 축제 때 동생을 따라서 쭈삣쭈삣 찾아온 남편 앞에서 무릎꿇고 용서를 구하며 어찌나 통곡하던지 그만

그들을 지켜보던 우리도 함께 울고 말았다.

또 부모와 자식 간에도 어쩜 그리도 서로들 주고받은 상처들이 많던지, 축제 때 그 가족 앞에 무릎꿇고 용서를 구하며 서로 얼싸안고

통곡하는 풍경은 참으로 가슴 저리게 아름다왔고 마냥 부러웠다. 

난 엄마를 떠올리며 한참을 울었다. 난 엄마에게 못 되게 군 막내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엄마는 이미 돌아가셔서 난 엄마에게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지 않은가? 가슴이 미어져왔다.

내 눈 앞에서 벗님들이 가족의 목을 얼싸안고 서로 서로 화해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난

하늘에 계신 나의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고 혼자 울고 또 울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벗님 중의 한 분은 모 방송국 PD였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이 분은 최일도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는 “목사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나쁜 놈입니다.” 하면서

흑흑흑 소리내어 울었다. 그 분의 고백인 즉,

“방송국 PD로 일하면서 일부 사람들이 목사님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는 나도 덩달아 비난했습니다.

사실 난 목사님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지요.

그러면서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싶어서 다른 사람들 말에 맞장구치고 동조했습니다.

근데 저도 마누라와의 문제 때문에 이렇게 직접 다일영성수련에 참석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목사님 말씀을 직접 들어보니 이제는 알겠습니다.

목사님이야 말로 저희같이 병들고 어린 양들을 돌봐주시는 진정한 목자인 것을,

목사님이야 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거장이신 것을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요즘 이 시대엔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을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입을 놀렸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면서

이 덩치 큰 벗님은 거의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면서 울었다.

최일도목사님은 그 덩치 큰 PD를 일으켜 안아주면서

“아닙니다. 제가 벗님을 용서할 게 무어 있겠습니까? 평소에도 그렇게 나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나를 욕하는 걸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벗님은 나에게 이런 말이라도 해주니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지요.” 하시더니

두 사나이가 서로 목을 끌어안고 또 얼마나 울던지...

그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여 함께 울었던 기억이 지금껏 내 가슴 속에 따뜻한 그림으로 남아있다.

그 다음 달, 그 PD의 부인은 너무도 변해버린 남편의 태도가 의아해서 남편의 권면에 못 이기는 척

영성수련에 참석하고는 깊은 깨달음과 은혜를 받아 행복한 가정을 되찾았다.

 

다일영성수련 최고의 백미는, 마지막날, 성경말씀으로 하는 총정리 시간이었다.

그 동안 왜 그렇게 먼 길을 돌아왔는지 뒤돌아보면서 그 고비 고비 마다에 숨어있는

하늘의 비밀들을 성경 말씀으로 풀어가는 그 재미라니!   가히 꿀맛이었다.

마치 성경말씀이 눈 앞에서 생동감있게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었다. 내 온 영혼이 감지하면서 전율하였다.

온 세상이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신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의 말씀으로 충만하였다.

 






닷새간 진행되었던 다일영성수련은 내게 있어 충격 그 자체였다.

오래 익숙했던 교회의 기존 분위기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일방적으로 설교만 듣는 게 아니었다.

질문을 통하여 스스로 깨닫도록 하기 위한 길고 긴 영적 여정, 깨어나기, 가족간의 화해, 그리고 축제와 자유의 춤,

이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두 눈과 두 귀를 열리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쪽 귀로만 듣고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지...

우리에게 양 귀와 양 눈을 주신 하늘의 뜻이 깨달아졌다.

등떠밀려서 억지로 마지못해 다일영성수련에 참석했던 나는 영성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집에 가면 씻는 것부터 하고 잠부터 실컷 자야지”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씻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여행짐을 내려놓고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꿇어엎드려 기도를 올려드렸다.

몸치의 극치인 내가 몸으로 드리는 기도를 무려 두 세 시간 동안이나 하면서.....

Posted by 비회원

한동대와 다일영성수련회

                                                           
                                                       유 장춘
           (한동대학교 사회복지학교수/청하교회 협동목사)

그 때 나는 군중 속에 섞여서 흐느끼고 있었다.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의 어깨가 바라보이는 곳, 아아! 그 고독한 옆모습, 거기서 나는 왜 예수님과 함께 옆에 서 있어 드리지 못할까!’ 라고 탄식하며 눈물만 삼키고 있었다. 문득 예수님의 고개 숙인 얼굴이 내 쪽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그 입가에 미미하게 떠오르는 미소를... 그리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신 그분의 마음을 분명히 눈치 챌 수 있었다. 그 미소와 함께 나는 모든 슬픔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래, 예수님이 나의 마음을 알아 주셨어. 그러면 됐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야말로 예수님과 내가 주고받은 그 시선과 미소 속에서 존재와 존재가 연결되는 것을 경험한 것이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여러 시간 울고 또 울었다. 설곡산에서 있었던 다일공동체 영성수련 하나님과 동행하기수련 중에서 예수님의 빌라도 법정을 기록한 마가복음 15장을 묵상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이다.

그 날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누구와도 사랑의 관계를 맺으리라 작정했고, 공동체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으며, 스스로 가난해지길 결심했다. 이제 내 삶은 더 이상 내 삶이 아니고, 내 소유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 것에 대하여 뭔가 글로 써서 남겨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쓸 수는 없었다. 그 감격과 기쁨이 글로 표현되기에는 너무 강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나 할까... 여러 번 쓰고 싶었던 말들, 그러나 막상 쓰려고 하면 망설여지곤 했던 생각들, 그냥 그런대로 놔두고 싶었던 기억의 편린들을 다시 꺼내어 쓰려고 하니 또 다시 막막해진다.

그 겨울날 온몸에 쏟아지던 햇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던 바람, 사방에 가득했던 적막, 발밑에 바스락 거리는 낙엽, 너무나도 진지했던 존재의 근본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깊은 침묵과 함께 내 마음에 애잔히 흐르던 그 고백들... 사방에 둘러싼 모든 것이 예리한 의식의 날카로운 의미로 다가오던 그 때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기억의 가장 초기부터 나는 목사의 아들로 자라났다. 그 많은 배움의 과정들 속에서 알고 깨달은 것들은 사실 생각의 영역 속에 갇혀 있었다. 다일공동체 영성수련회 아름다운 세상 찾기에서 아내와 함께 참여했던 나는 여러 사람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많은 눈물과 함께 아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를 되찾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동료들을 찾았고 그리고 아름다운 나 자신을 찾았다. 왜 살지? 뭘 위해 살지? 어떻게 살지? 그 질문들에 대한 생각들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끌어내리고 나는 자유를 경험했다. 이미 배워서 잘 외우고 있었던 것들,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지만 아직도 그것들은 머리에만 담겨 있던 것들이었다. 50이 넘어선 나이, 이제야 그 본질을 향한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오고 가는 세월 속에서 오직 의미 있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순간들이다. 영원하지 않은 그 무엇도 한 순간과 같이 사라지는 것들일 뿐이다. 이 우주조차도 영원하지 않기에 잠시 쓰다가 망가지면 버려지는 장난감과 같은 것이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들만 영원한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갈 것이다.

설곡산다일공동체 영성수련원으로 가는 길은 나에게 있어서 그 영원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그 곳에서 얻은 나의 마음을 시 비슷한 것으로 표현해 보았다.

 

그렇게 살고 싶다.
 

좋은 일을 하고도 이름을 내지 않고

선한 일을 하고도 얼굴 들어내지 않으며

큰 업적을 이루어도 공을 내세우지 않고

위대한 깨달음을 얻어도 깊이 침묵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많은 돈을 벌어도 가난하게 살며

높은 지위에 올라도 소박하게 살며

권위 있는 자리에 앉아도 친절하게 대하고

나이가 많아져도 어린애처럼 순진한

그래, 그런 삶을 살고 싶어.

 

모욕을 당해도 미소를 잃지 않고

억울해도 변명하지 않으며

늦어도 조급하지 않고

빼앗겨도 아까워하지 않는

그렇지, 그런 삶을 살아보자!

 

바위처럼 견고하게

물처럼 자유롭게

햇볕처럼 따듯하게

바람처럼 시원하게

별처럼 영롱하게

그래!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거야!

 

한 세상 사는 것 부질없다 하지만

이왕 한 번 사는 것 그렇게 살고 싶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어찌 그리 모자란지

부끄러워 후회하며 또다시...

그렇게 살고 싶다. 

                              (2009년 겨울 설곡산에서)


Posted by shine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