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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시무식에 이어 설곡산 다일공동체 가족들이 한해를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스마일님은 계속되는 다일영성수련 접수와 사무업무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역시 DTS훈련을 마친 다일가족답게 밀려드는 사무업무 외에 육체노동인 주변정리정돈, 청소도 빼놓지 않습니다. 태풍님은 여전히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활동량을 보여줍니다. 방송실에서, 식당에서, 설곡산 시설관리 업무 등으로... 그런데 왜 살은 안 빠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금나팔님의 목공예 작품은 날로 그 예술적 감각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다일영성수련 화두 하나하나를 담은 작품은 매우 뛰어납니다. 사무엘님은 나이 40줄이라며 눈이 시리고 근육통에 아파하는 것은 나이 때문이라며 몸 관리 못한 것을 숨깁니다.^^ 방학을 맞이해, 청소의 달인 디모데님이 잠시 머물다 갔습니다. 머무는 동안 설곡산이 다시금 정돈되었습니다. 설곡산 모든 다일가족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무엘님과 아우(이강학 영성신학박사)님을 통해 진행된 올해 첫 침묵수련에는 영적지도 시간이 강화되었습니다. 모든 벗님들이 마음을 열고 침묵가운데 하나님을 체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2010년 첫 1단계 아름다운세상찾기(118기)에 80여분의 벗님들이 참여해 모두가 아름다운세상찾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설곡산다일공동체 본원에서 최일도 목사님과 김연수 사모님이 함께 수련안내를 하셔서 매우 든든히 수련이었습니다. 그동안 진지도우미로 수고하셨던 아리수님이 주방장으로 소임을 맡으셨습니다. 첫 주방장 소임으로 많이 긴장하시고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였다 합니다.^^ 그래도 다른 도우미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최선을 다해 주셔서 식당에서 진지알아차리기가 즐거웠고 은혜가 넘쳤습니다.

특별히, 이번 수련에 한 벗님이 수련을 시작하기 직전, 마음의 상처와 부담으로 수련을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수련원까지 데려다 주신 어머니가 뜻하지 않게 대신 수련에 참여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갑작스레 참여하시게 된 수련이었지만 많은 깨달음을 얻고 집에 돌아가 깨달은 대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러자 그 자녀가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리더라고, 감사하다고 전화해 왔습니다. 일체은혜감사뿐입니다.

최일도 목사님은 1단계에 이어 2단계 수련이 이어지면서 육체적으로 피로가 누적되었음에도 거기에 감기를 앓고서도 수련을 진행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수고와 열정에 환호하고 감사뿐입니다. 이번에도 2단계 특유의 깊고 깊은 깨달음이 2단계 수련 도반님들에게 가득했습니다.

2월 다일노동기도학교에 겨자씨님이 참여하여 말씀묵상과 노동기도와 성찰기도의 단순한 삶을 통해 작은 다일공동체 생활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삐콤C님과 시냇물님이 열흘간 봉사한 흔적을 남겨놓았습니다.

다일자연치유센터는 실내공사를 남겨둔 채 공사 진행이 잠시 멈춰져 있는 상태입니다. 앞으로 7억 정도면 공사가 최종 마무리되어 개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후원이 있길 원합니다. 그래서 다일자연치유센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마음의 상처에서 회복되어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데, 자연치유센터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5층 갈보리채플에서 함께 예배하는 시간이 속히 오도록 많은 사랑과 기도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름다운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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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냐고 이야기 합니다.

좋은 직장 내려두고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렸냐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힘들지도, 대단한 결단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저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더 알고 싶었고 주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에 순종 했을 뿐입니다.

아름다운 이곳에 와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주님의 이름 아래 한가족 되어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세상의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주님께서는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보다 많은 것들로 보답해 주셨습니다.

30여년을 살아오면서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명예, 물질, 성공이었습니다.

그것들이 나의 본질이 아니었기에,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내가 중요했기에 세상에서의 나의 삶은 행복함보다는 공허함이 컸고 보다 더 나은 모습의 내가 되지 못한 자괴감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의 나는 다릅니다.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고, 주님은 나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 것은 마술이고,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 기적이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변화된 나는 기적의 증거이며, 살아있는 간증이 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영성생활을 배우는 D.T.S 훈련은 별다른 커리큘럼이 없습니다.

모든것이 기도의 삶에서 얻어지는 나의 깨닳음이며, 나의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8시간의 노동, 8시간의 기도, 8시간의 휴식으로 드려지는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온전히 나의 본질에 대면하며,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시간들입니다.

D.T.S 생활의 기본이 되며 힘이 되어주는 하루 세 번의 기도는 - 조도(아침기도)에서의 하루의 다짐과 주님이 주시는 말씀, 대도(점심기도)의 중보기도, 만도(저녁기도)에서의 하루의 성찰과 반성의 시간들,,, - 기도가 삶이며 기본이 되는 삶은 또 다른 나로 변화되어 가는 훈련이며, 영성생활의 근본입니다.

이곳에서의 모든 사람들은 말로만 사랑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행함으로, 섬김으로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다일의 영성의 본질은 지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함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지체가 나의 스승이며, 제자입니다.

나의 부족한 모습들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에게 그대로 내보이며, 사랑하기에 서로의 약함을 보듬고 이해하며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다양함을 이해하며 일치된 모습으로 하나되어 나가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다일의 모습 그대로를 살아갑니다.

이 곳에서의 저는 설레임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기적에 체험에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변화된 나의 모습에 감사드리며 또한 변화될 나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DTS10기 훈련생 다윗님(최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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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저희 다일 평화의 마을에 함께 하는 가족들은 대망의 2010년을 새로운 다짐으로 다일 공동체의 처음 정신, 작은 촛불 하나 밝혀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전했던 청량리 밥퍼 나눔 운동 본부에서 모두 함께 이 땅에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상처받은 주님으로 오신 노숙자와 행려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사랑의 식탁 나눔으로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땅에 아무 의지 할 곳이 없이 사는 가난한 이들이 막지막 생을 아름답게 지내시다가 천국으로 가실 수 있도록 준비하고있는 다일 천사병원 임종자의 집 공사를 위해 기구와 자재 운반을 위해 이틀간 열심히 기도가 노동이요 노동이 기도인 삶을 살았습니다.

앞으로 개원할 임종자의 집을 통해 세상이 줄 없는 사랑과 평화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이렇게 귀한 일에 저희 써 주시는 우리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림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묵안리 마을 모든 주민들이 올 한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월12일,13일 양일 간 마을의 화해와 하나됨과 평화를 위해 마을 모든 주민들에게 자그마한 사랑의 쌀 나눔 행사를 하였습니다.

마을의 독거 노인과 어른신들을 찾아가서 저희들의 사랑을 담아 쌀을 전달하고,외로웠던 마음도 위로하며 아픈 몸도 주물러드리고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을의 이장님과 반장님과 부녀회장님들도 먼저 솔선 수범하는 모습을 보여 주셔서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마을 모두가 올 한 해는 행복이 넘치길 기원합니다.

요즘 저희들은 필리핀 사역지를 위해 날마다 기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저희가 십시일반으로 모은 35만원을 다일 복지재단에 헌금하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을 동포들을 위해서도 그곳에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밥퍼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와 땀과 눈물이 가난에 울고 있는 그들의 배고픔과 눈물을 닦아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더 높고 넓은 주님의 뜻을 위하여 올 한해 주님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열방을 나가는

묵안리 평화의 마을 가족들이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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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을 시간만 채우려고 첫날 왔었다. 하지만, 어색한 첫날과 달리 두 번째날부터는 봉사가 재밌어졌다. 책상 닦기를 하면서, 감사하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보람을 느끼면서 재밌어졌고, 이제는 스태프분들과도 친해졌다. 헤어지긴 아쉽지만 방학 때 시간나면 와야겠다. 12.16 김지훈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봉사하시고, 헌심함에 가슴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발은시렵고 허리는 아프지만, 이런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뵙고 갑니다. 다시한번 도구로 써주심을 감사드립니다. 12.22 김영덕

추운날씨에 힘들었지만, 너무 많은것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배운데로 제게 주어진 삶속에서 그 사랑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파이팅!! 1.12 이다혜

오늘 오랜만에 '밥퍼'에 왔다. 아침에 너무 추워서 봉사가 힘들꺼라고 예상했지만 예상대로 발도 시렵고 몸도 뻐근했다. 하지만 어른, 노인분들께서 밥을 맛있게 드시고 다른 분들도 열심히 해서 많이 힘들진 않았다. '밥퍼'는 무지 뜻깊은 봉사단체고 나중에 친구들 데리고 또 오고 싶다. 1.7 정예영

이번겨울 가장추운날 이었습니다. 영하15도의 날씨에서도 다들모여서 한끼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서로서로 힘을 모았네요. 오전시간에 방학이라 늘 잠으로 보냈었는데 다들 고생이 많으신걸 보고 많이 느끼고 갑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좀더 이웃에게 도움이되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13 김아름

하나님 은혜감사하며, 남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건강주심을 감사하며, 그동안 많이 수고하신분께 진심으로 존경하며, 하나님사업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13 김숙남권사

오늘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해서 걱정을 안고 밥퍼에 왔습니다. 주방에 솥을 닦았는데, 추위에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밥한끼 대접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말 뿌듯합니다. 밥퍼 파이팅!! 1.13 박재현

가장춥다는 서울날씨 속에서, 함께 함에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작은손길에 많은 살마들이 기쁨을 누림에 감사함을 느끼고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밥을 굶는이가 없는 대한민국을 소망하며.. Fighting!! 1.13 온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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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일천사병원

사시칸트꾸마


-28살의 인도청년 사시칸트꾸마

"안녕하세요~, 사시칸트입니다"

크고 맑은 두 눈과 수줍은 듯한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는 분명 인도사람이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모습보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모습과 매운 김치찌개를 땀흘리며 먹는 모습에서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다운 맛을 느낀다.

사시칸트는 인도뉴델리에서 유일하게 한국어학과가 있는 대학에서 한국어와 문화를 전공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시작했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장학생으로 한국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로 유학오는등 그는 인도에서 말하는 소위 엘리트학생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왼손과 두발에 선천성 절단및 합지증으로 지금껏 불편함과 남과 다름을 감수한 채 살아왔던 사연이 있었다. 맘속으로는 수술에 대한 소망이 있을 지언정 현실의 거대한벽에 눌려 내색도 못한 그였다.

어느날

방학중에 잠시 들렀던 인도에서 통역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도마더하우스 방문차 들르신 최일도 목사님을 만난다. 며칠동안 사시칸트를 보며 그의 사정을 안 목사님께서는 그에게 수술에 대한 소망이 현실로 이뤄질수 있음을 확인시켜주셨다.

드디어 2009년 인도에서 시작된 만남이 결실이 되어 올해 2010년 1월 사시칸트는 상계백병원에서 장장 10시간의 밴딩및 분리수술을 이겨내고 지금은 회복기에 있다.

최일도 목사님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희년선교단체와 상계백병원의후원으로 연결되었고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 그저 감사하다고만 말하는 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28세 청년 사시칸트에게 앞으로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 한국 외국어대 대학원 경제학과 마지막 석사논문 준비중이에요. 그리고 나면 한국에서 취직을 할꺼에요 지금 면접본데도 있구요.. 돈을 벌게되면 인도친구들 10명과 인도에도 한국의 다일 천사병원 같은 무료병원을 꼭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럼 돈을 아주 많이 벌으셔야겠는걸요?" 라는 장난기 섞인 질문에

" 병원은 돈 받으면 안됩니다. 시간은 걸리지만 결단했으니 할 겁니다."

천사병원의 박혜란 원장님을 보자 엄마라 부르며 좋아하는 천진난만함 속에 결심을 한 것을 이루겠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벌써 그 계획이 시작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글/설정희 간호사 (다일천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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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달 동안 함께 살았던 너희들과의 생활을 정리하고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왔다. 돌아온 현실은 이것 저것 잴 것이 많단다. 5개월의 짐은 하루 이틀이면 쌀 수 있지만 마음이란 쉽지 않더구나. 아직도 눈을 뜨면 갈색 톤의 그곳이 아른한데, 이곳에서 살아낸다는 게 내가 내 삶을 살기보다는 둥둥 떠 다니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공동체 생활을 해 본 것도 처음인데, 나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내가 이모로서 너희들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나를 향해 있는 경험을 하지 못했어.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지만 너희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이 곳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지금의 나라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은 너희들을 내가 가진 상식으로 판단하려 했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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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내가 여기 온 이유도 나를 위해 무엇을 한다기보다는 너희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 속에 내 자리가 없는 것에, 너희들을 탓하기보단 너희들에게 내 진심이 향해 있는지를 되묻게 되었어. 그러니 '너 중국 가서 뭐했냐'라고 물었을 때, 반드시 답해야 할 것 같았던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사라지더라. 하루 하루 함께 삶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귀중한 것일 뿐더러, 시간은 서로를 적응하게 만들더구나. 아, 이제야 너희들과 함께 산다고 여길 때 '내 평생 언제 이렇게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즐겁고 행복했다.

아쉬운 것은 말이다. 마지막까지, 머리는 아는데 가슴은 늦더라. 적극적으로 너희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것이 너희가 나에게 필요로 했던 것이지만, 부끄럽게도 오히려 내가 너희들로부터 더 많은 안식과 기쁨을 얻었다. 그런데도 내가 가진 너희를 향한 내 마음을 힘껏 드러내진 못했다. 모든 감정을 쏟아내면 나중에 주워 담기가 더 힘들 것 같아서.

눈물 보이지 않고 웃으며 쿨하게 떠났지만, 미치도록 그립구나.

1월 23일 짧은머리(头发) 이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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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윤자혜

- 대사협 해외봉사단 캄보디아1팀 '러브깜디' 부리더

대학교에 들어올 때까지 나에게는 '대입'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후 인생의 목표가 없어졌기 때문에 여름방학의 나는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들을 없애기 위해서 2009년 2학기에 이것저것 많은 활동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해외봉사에 지원을 했던 것이었다. 다른 단원들처럼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거나 어떠한 성취감을 위해서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특별한 활동을 해보고 싶었고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그 끝에 해외봉사가 있었다.

그랬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단원들과는 달리 준비과정에서 설레고 들뜨는 마음이 미미했던 것도 사실이다. 출국하루 전, 아니 인천공항에서 출국 심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과연 낯선 캄보디아의 땅에서 계획한 대로 잘 활동하고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조차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국으로 입국하게 됐을 때 스스로가 어떻게 변화했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캄보디아의 땅을 밟았다.

우리가 했던 봉사는 크게 '밥퍼, 빵퍼봉사', '지역봉사', '교육봉사' 이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빵퍼봉사는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가장 많이 반성하게 하고 많은 울림을 주었던 활동이었다. 점심식사를 다 하고 나서 빵이 나올 시간이 되면 그 앞에서 기다렸다가 간식으로 소보로 빵 하나를 꼭 챙겨먹었었다. 봉사하던 마지막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빵퍼봉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아직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수많은 아이들이 소보로빵 하나를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하나를 더 얻기 위해서 마치 받지 않았다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받은 빵들을 다리 밑에 숨기고 옷 속으로 숨기는 모습에서 차오르는 눈물을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살겠다고, 정말 목숨을 부지하겠다는 그 목적 하나만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여태 내가 도대체 무슨 만행을 저지른 것인지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 아이들에게는 절실한 주식인 식량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은 먹지 않았어도 되는 그런 간식에 불과했을 뿐인데, 그것을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눈치를 보고, 더 많이 먹을수록 내 포만감에 뿌듯해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아직까지도 고작 내 욕심 때문에 몇몇 아이들의 주식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이 너무나도 크게 나를 죄어온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축복받고 혜택 받은 사람인지,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은 당장 오늘 하루의 끼니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절박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아이들의 눈빛을 행동을 절대 잊지 않고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을 굳힌 것이 이 때였다.

한국에서 가장 열심히 프로그램을 짜고 준비해 간 것이 교육봉사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만큼을 가르쳐 주면 그것에서 뿌듯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색칠을 하고, 풀을 붙이고, 사진을 찍을 때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나까지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실상 우리가 가르친 것은 없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온 것만 같아 부끄럽고 염치없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봉사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남을 돕기 위해 내 것을 베푸는 것이 봉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시간적,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봉사를 실천하지 못한다는 말에 동의했었다. 그러나 이번 활동을 통해서 봉사라는 것은 내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넘쳐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서 행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내가 퍼주는 것이 아니라 '봉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가 소통하고 있는 것임을 깊이 깨달았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꿈같았던 14박 15일이었고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지 불과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너무 그립다. 매일 아침 우리를 숙소에서 유치원으로 실어 나르던 트럭,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소보로빵의 고소한 냄새, 너무 매워서 혀끝을 얼얼하게 했던 간장 속의 고추,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안기던 아이들과 손을 잡았을 때의 그 촉감, 손만 맞대주어도 하이파이브를 하며 신나했던 아이들의 그 웃음, 도색작업 시 롤러를 밀면 났었던 '쩍~쩍' 거리던 소리, 심지어는 센터에서 숙소를 오갈 때 코를 찌르던 생선 말리는 냄새까지도. 그 모든 날들이, 그 일상들이 너무 그립다.

출국하기 전에는 뿌옇던 모든 것들이 이젠 다 그 빛을 찾았다. 봉사, 행복, 사랑에 대한 나의 가치관, 나아가서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알게 해 주었다. 내 인생에 전환점을 마련해 준 우리 러브깜디 단원들, 단장님, 간사님, 유치원과 센터의 아이들, 그리고 다일공동체의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사랑한단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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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사회봉사단 김도현

- 대사협 해외봉사단 캄보디아1팀 '러브깜디' 리더

내가 다일과 함께 캄보디아로 떠난 건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0월 초쯤 최일도 목사님께서 명지대학교에 채플강연을 오신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다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저 밥퍼운동을 시작하신 분 정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날 최 목사님께서 보여주신 한 편의 영상은 내 가슴을 심하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바로 캄보디아 빈민촌의 참담한 현실과 구순구개열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수술 받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차오르는 눈물을 견디기 힘들었고, 보다 많은 학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강연이 끝난 후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께선 작은 종이에 정성스레 어떤 목사님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주셨고, 이내 두 손 맞잡으며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꼭 한 번 다일에서 봉사하고 싶다. 저 아이들을 꼭 만나보고 싶다.'

이것이 그날부터 시작된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그렇게 다일과 처음 인연을 맺고 얼마 후, 대사협 해외봉사단 모집공고를 접했다. 10개국 14개 지역 가운데 '캄보디아-다일공동체'가 있었던 건 놀라운 일이었고, 난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사협 해외봉사단 캄보디아1팀의 단원이 되어 11월 26일 다일과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캄보디아에서 보낸 2주간의 시간은 첫날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짠한 감동이자 눈물이었다. 첫날 '밥퍼'를 할 때였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 헤진 비닐봉지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식을 시작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빈자리로 데려다주면서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여섯 살 쯤 되었을까, 한두 살 어림직한 동생을 꼭 품에 안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근데 그 어린 녀석이 자기 식판에 담긴 밥은 그 너덜너덜한 봉지에 옮겨 담고, 동생 입에 밥을 떠먹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 1달러로 온가족이 생활한다는 캄보디아의 빈민들, 그 어린 꼬마가 집에 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은 굶고 동생만 밥을 먹였던 것이었다. 그 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그 녀석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렸었다.

캄보디아에서의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어느새 달라진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도 감동적이었다. 누가 봐도 더러운 아이들, 한국에 있었더라면 피해 다녔을지도 모를 아이들인데, 어느새 그 아이들이 먹던 빵을 한입씩 나누어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젠 눈앞의 더러움보단 그 속에 숨은 사랑이 먼저 보이는 듯해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공에 맞아 눈을 다친 단원에게 직접 밥을 떠먹여주던 아이, 고된 작업에 잠시 쉬고 있을라치면 금방 달려와 어깨를 주물러주던 아이, 내 품에 안겨야만 웃어주던 갓난아이, 들꽃을 묶어 예쁜 꽃다발을 선물해준 아이, 겨우 사탕 하나에도 두 손 예쁘게 모으고 '어꾼'이라 말하던 아이들, 겨우 세 번 배운 리코더로 멋진 합주를 해낸 아이들, 두 팔 벌리고 소리치면 후다닥 달려와 내 품에 안겨주던 아이들, 먼저 마지막을 알고 내 품을 떠나지 않았던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 하나하나 말하자면 끝도 없을 캄보디아에서의 아름다운 기억들.

우리가 러브깜디란 이름으로 캄보디아에서 행한 가슴 뜨거운 일들, 다일이 하나님의 사명으로 캄보디아에서 행하는 가슴 따뜻한 일들, 이 모든 것들이 시작은 미약할지나 세상을 따뜻하게 울리는 큰 메아리로 울려 퍼질 것을 난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나 역시 더 많이, 더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이처럼 아름다운 젊음을 선물해준 다일과 대사협, 러브깜디 모두에게 가슴 가장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과 뜨거운 사랑을 전하고 싶다.

"감사드립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젊음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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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사랑의 밥

배문고등학교 -전현배

여름방학때 친구 함지현양의 소개로 우연히 접하게된 밥퍼, 처음 봉사하러 왔을땐 유난히 푹푹찌는 여름날이였는데, 그 날 난생 처음한 거대 솥닦기.

날도 더운데 뜨거운 솥을 뜨거운 물로 설거지할땐 정말 죽을 맛이였다.

힘들기만하고 별 보람을 못느껴 속으로 투정도 부리던 하루였는데, 어느샌가 익숙해져버린 설거지, 밥퍼 이웃분들, 그리고 하루하루의 주인공이신 어르신들, 처음에 배식을 할 땐 5분이 길게 느껴지고 끝이 안보이는 긴 줄 때문에 한숨 쉬어가며 시작한 봉사가 이제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여유도 생기며 "더는 안오시나?" 하고 여운도 남는다.

하루하루 힘겹게 지내시는 그분들은 주름이 깊게 파여있고, 눈가도 쳐지시고 피곤한 얼굴로 따뜻한 밥 한 끼를 기다리시는데, 다 드신 후 보이는 작은 미소가 내겐 많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학교친구들은 나보고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그런걸로 시간을 낭비하냐며 비아냥거리지만 가끔씩 하는 이 봉사가 피곤하기는커녕 오히려 엔돌핀이 되며 매일매일의 작은 감사까지도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을 돈과 명예에서 찾지만 밥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행복을 나눔에서 찾으시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남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더 행복해보인다. 왜냐하면 계속 모으는 것에 열중하는 사람보다 나눠주는 사람이 훨씬 여유로유워 보일뿐만아니라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봉사하면서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배웠다.

그것은 바로 나눔의 힘이다. 나눔 속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미소가 나의 마음에 불을 지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이란 용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낌없이 나눠주시는 밥퍼 단체가 더욱 번창하여 세계 속에 든든한 기둥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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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힘

여의도여자고등학교 -함지현

안녕하세요.

현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함지현입니다.

어느날 인터넷을통해 밥퍼사이트를 보게되었고 그곳, 청량리에가서 방학을 이용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주고싶다는 생각에 바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량리면 집에서 거의 1시간이 걸리지만 먼 발걸음을 하는 만큼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밥퍼로 향하였습니다.

시작한 때가 여름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은 어르신들께 드릴 진지를 생각하며 땀을 흘려가며 진지를 준비하였습니다.

그 땀 한방울 한방울 속에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오셔서 진지를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빨리 진지를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사시간이되어 다일공동체 진지기도를 드리고 식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배식을 하는데 어르신 한 분이 반찬통을 들고 오시더니 "집에 전기랑 다 나가서 다음에 먹을 밥이 없어요 밥 좀 더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울컥했습니다.

가방이나 반찬통에 식판에 있는 밥과 반찬을 덜어서 소중히 담아 가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비록 점심 한 끼지만 어르신들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너무 보람찼습니다.

겨울인 지금은 지난 여름보다 어르신들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춥고 배고파하시는 어르신들이 이 곳 밥퍼에 오셔서 몸도 녹이고 마음도 따뜻해져서 돌아가시는 것을 볼 때마다 제가 이곳 밥퍼에서 봉사하는 보람을 느끼고 기쁩니다.

자원봉사를 해 주시는 분들,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앞으로도 밥퍼에 계속 이어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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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다일공동체

밥푸는 때가 가장 행복한 이명현원장


자이머시(예수님 찬양) ~~~

네팔에서 이명현, 지면을 통한 첫인사 올립니다. 지난 해 12월 21일, 새로운 사명실현지로 명받은 네팔다일공동체에 잘 도착하였습니다. 그 날, 카트만두는 공산당의 데모로 차량운행을 못 하는 바람에 저는 공항에서부터 자전거수레에 짐을 싣고 거의 걷다시피 하여 팀세나 형제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몽둥이를 든 공산당 무리들의 시선이 거리 곳곳에서 외국인인 저를 따라오곤 했지만, 하나도 겁은 안 났습니다. 뜻밖에도 "어라, 네팔이 네팔다운 풍경으로 나를 제대로 환영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드는 또 다른 느낌, "아, 지금도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네팔다일공동체

새로 부임한 이명현원장과 네팔현지인 스탭들

밥퍼센터에 도착한 첫날, 아이들이 두 손을 모으고 여기저기에서 "자이머시~~" "자이머시~~" 하며 소리칩니다. 아이들은 밝은 미소로 새로운 원장의 부임을 환영해주었습니다. 낯선 원장, 낯선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자이머시~~" 를 외치는 아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소리들로 인해 한방에 그 낯설음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제가 처음 한 것은 당연히 밥을 푸는 것이었습니다.

네팔다일공동체

맛있는 밥이 있어서 행복한 아이들


아! 저는 이 시간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그 옛날 최일도목사님께서 청량리에서 시작하신 라면 한 그릇의 감동이 오늘날 이렇게 멀고 먼 땅 제3세계의 가난한 아이들에게까지 따끈따끈한 밥으로 전달되는 이 감동을, 무어라 표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캄보디아에서도 그랬지만, 이제 또 다시 네팔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밥을 퍼주면서, 이 땅에 밥으로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한 그릇 밥에 담아 전하는 이 감동! 밥을 푸다 말고 그만, 저도 모르게 하마터면 밥주걱 위에 눈물을 떨굴 뻔 했습니다.

네팔다일공동체

너무 맛있어서 식판까지 핥아먹는 아이들

아이들은 역시 예뻤습니다. 잘 생긴 아이 못 생긴 아이가 따로 없이 모두들 예뻤습니다. 얼마나 오래동안 못 씻었는지 아예 새까맣게 반들반들 윤이 나는 아이들조차도 예뻤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빈민촌 아이들은 상황이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유감스러운 것은 네팔에는 아직 신분 계급이 존재하여서 아이들에게도 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최하위계층 불가촉천민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밥퍼센터에 와도 다른 아이들과 구분을 짓고 따로 앉습니다. 밥퍼센터에서는 그런 불평등한 구조가 없도록 해야겠건만, 그 오랜 악습을 극복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들 중에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홑겹 옷을 입거나, 아예 아랫도리를 벌거벗거나, 맨발인 채 오들오들 떠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한두명도 아니고, 당장에 무엇을 어떻게 해줄 수도 없고, 그런 아이들을 볼 적마다 참으로 애처롭기 그지 없어서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흘러나오곤 합니다. 당장 한국에 전화라도 걸어서 안 입는 옷과 신발들 좀 모아서 보내주세요 하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네팔다일공동체

추운 날 벌거벗고 온 아이

그래도 아이들에겐 맛있는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밥퍼센터가 가까이 있는 게 큰 위안인가 봅니다. 아침밥을 든든히 먹으면 하루를 따뜻하게 보낼 힘이 생긴다는 걸 그 어린 나이에도 알기에, 이른 아침, 눈꼽도 떼지 않은 채 그렇게들 찾아오는 게지요.

'러마' 도 밥퍼센터를 찾아오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러마'는 아직 7살 밖에 안 되었건만, 그 조그만 등에 2살짜리 동생을 들쳐업고 옵니다. 매일 아침 밥퍼센터에 와서는 어린 동생에게 한 숟가락, 자기 입에 한 숟가락, 그렇게 교대로 먹이고 먹고 합니다. 밥을 다 먹고 난 후에는 동생 발가락의 상처를 치료해달라고 저를 기다립니다. 한국 아이들 같으면 한창 응석이나 부릴 이 7살짜리 꼬맹이는 아예 엄마 역할을 다 하는 것 같습니다. '러마'는 그 조그만 등에 항아리만한 동생을 업는 게 힘에 부치는지 "아야" 하며 얕은 신음소리도 내고, 다른 아이들 뛰어노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하도 가여워서 제가 어린 아기를 좀 받아줄려고 했더니만, 아기는 낯가림하느라 울면서 누나 등에서 떨어지질 않네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러마'도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면서 꿈을 그릴 수 있도록 후원자를 찾아봐야겠습니다.

네팔다일공동체

동생을 업고 있는 7살짜리 러마

네팔다일공동체에 와보니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가건물 형태인 밥퍼센터도 여기저기 보수도 해야 하고, 부족한 식판과 수저도 구입해야 하고, 맨발의 아이들에게 신발과 옷도 공급해줘야 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후원자들을 연결시켜줘야 하고, 마을 길도 깔아줘야 하고......

네팔다일공동체가 아이들이 꿈을 품고 웅비하는 그런 희망의 전당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이머시~~~~ ♪

* 자원봉사를 하신 분들 : 카트만두한인교회 중고등부팀, KOICA의료봉사팀, COPION자원봉사팀, 황준태님, 고성숙님, 심은영님, 김주희님, 임영춘선교사님, 이이삭님

* 현지에서 접수된 후원금 : 대천교회, 박정은님, 김성남님, 마리아선교회, 한일교회 박양순님, 다일공동체 가족들, 조이님, 이정민님, 이명현님

* 네팔다일공동체 후원계좌로 귀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모든 후원 천사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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