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던 날이 제일 따뜻했어요”

                                                                                                                     독자편지/ 심종건(왕건)님
                                                                                                          (미주다일공동체 노스케롤라이나 협동간사)


그나마 가시던 날이 제일 따뜻했어요.

실타래처럼 둘둘 말아 예쁘게 쌓아 둔
세상의 정(情)을 한꺼번에 끊기가 너무나 아프셔서,
긴 호흡만 내쉬며 그렇게 힘들어 하시더니만
주님 두 팔에 꼬옥 안기셔서,
천사들의 기쁜 나팔소리를 받으셨는지,
떠나실 때의 모습은 그렇게 평안하고 고우셨답니다.


저는 이렇게 장모님을 멀리서 멀리서만

지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인생이라고들 하더군요.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내 가족과 나를 아는 사람들만 챙기는
나의 모습을 이번에 또, 들키고야 말았습니다.
언제나 입버릇처럼, 지금보다 형편이 나아지면
그 때 이웃도 돕고, 교회에도, 아프리카에도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 일용할 양식과
학용품과 집도 반드시 지어준다며
목에 심줄이 오르도록 다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짐은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되어,

이 핑계 저 핑계만 낚았습니다.
그나마 드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몸마저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상일을 하더니만……
아마, 지금 나누지 못 하면 저 천국 가서도
제대로 한번 나누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우리는 이토록 빛나는 가치를 날마다
일부러 비켜가고, 알면서도 또 비켜가나 봅니다.


그러나 신발도 신으시지 않은 채 맨발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일일이 찾아 오셨습니다.
사람 앞에선 이웃을 위한다며 땀 흘려가며
큰 소리로 기도도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남을 위한 삶을 살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소리 내어 하는 기도는 많지만
우리의 속 마음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겠지요.
“기도는 골방에서 하는 거란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란다”
“아하!”

그리운 장모님과 함께...


P.S 장모님, 하늘나라로 돌아가시던 날에
목사님의 행복편지를 읽다가
장모님의 두틈한 실타래의 사랑과
목사님 주신 말씀이 디졸브 되는 밤에
울면서 씁니다! 애통하며 씁니다!
목사님,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하겠습니다!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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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일공동체의 자랑스러운 사역중의 하나는 밥퍼이다.

최일도 목사님께서 1988년에 청량리역 광장에서 라면 한 그릇 대접하는 것으로 시작된 밥퍼가 지금은 하루에 천여 명 가량의 밥상공동체 가족들이 이곳저곳에서 찾아와 함께 진지를 나누고 있다.

밥퍼를 찾는 밥상공동체 가족들 대부분이 노숙자들이다.

그래서 다일공동체를 섬기는 사람들은 우리를 찾는 노숙자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섬기기 위해서 우리들도 노숙자가 되는 체험을 한다.

 

201229일 밤 10시경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먼저 서울역 주변에 노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역사안과 역 광장 그리고 지하도를 살펴보았다.

서울시에서 단속하고 있는 터라 예전과 비교하면 노숙자들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지하도 안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계신 삼, 사십분들도 비교적 조용히 계셨다. 컵라면을 대접하려고 준비할 때가 다소 늦은 시간이라 하룻밤을 지새우려고 자리를 잡은 분들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움직이지 않으신다. 그래서 컵라면을 준비해서 찾아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해간 컵라면 100개는 삽시간에 동이나 버렸다.

 

컵라면을 나누면서 대화를 나눈 몇 분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적어도 서울역 지하도를 사수하고 계신 분들은 나름대로 노숙에 도통한 분들이어서 그런지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았고 또 상호간에도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듯했다. 여기까지도 놀라웠지만 더더욱 깜짝 놀라며 깨달은 것이 있다. 노숙하고 있는 것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고 떠밀려 와서 인생막장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서 노숙을 하고 있는 분들의 경우에는 모두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며 또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와우! 어떻게 이런 일이.....

누구든지 자신의 선택에 노숙자 분들 만큼만 확신을 가질 수 있어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한 동안은 잊을 수 없는 노숙자 한 분을 만났다.

노숙자들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숙 생활을 하고 있을 텐데 구하면 얻으리라는 믿음의 노숙인을 만났다. 컵라면까지 다 드셨는데도 계속 자리를 떠나지 않고 분위기를 탐지하더니만 입을 열어 하시는 말에 박장대소도 했고, 또 화가 나기까지 했다. 믿음에 가득찬 노숙인께서 당신들이 줄 수 있는 것만 주고 가려고 하지 말고 노숙자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분은 거침없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씀하셨다. “여러 날 찬 곳에서 자서 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으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쉴 수 있도록 오늘 밤은 찜질방에서 잘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이었다. 결국 믿음의 간구에 마음이 움직인 모세님께서 한 쪽으로 데리고 가서 만원을 쥐어 주었다. 그런데 믿음의 노숙인께서는 자기가 가고 싶은 찜질방은 12000원을 하며, 또 직접 돈으로 주지 말고 사실인지 확인도 할 겸 같이 가서 입장표를 사달라고 한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그곳을 알고도 있었고, 또 그분에게 해 주고 싶은 말도 있어서 부족하지만 만원을 가지고 그 분과 함께 찜질방으로 갔다.

 

현장에 가보니 놀랍게도 입장료는 13000원이었다. 찜질방 측에 사실을 이야기 하고 도움을 받아 목욕탕 입장료인 9000원에 찜질 복까지 얻어 들어가게 되었다. 가지고 간 돈 만원에서 천원이 남게 되자 믿음의 노숙인께서 목욕하면 목이 마를 것이니 음료수를 사 먹어야 하니 남은 천원을 달라고 하신다. 그의 믿음의 간구는 다 이루어지고 말았다. 입장표와 음료수 값을 거머쥐더니만 그분은 자신이 삼군 사관학교를 나온 중령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믿음으로 간구하면 구한 것보다 더 놀랍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해준 삼군사관학교를 나오신 중령출신의 노숙인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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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늘도 빈 손으로 오셨습니다. 

CT를 무료로 찍을 수 있게 조취해드렸는데도

아직도 검사결과를 가지고 오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간에서 발견된 종괴가 암일 확률은

비교적 낮다고 설명하였는데도 아직도 

망설이고 계시는군요. 
 
당신의 음주력 탓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아직은 결론이 난 것이 없으니,

자신을 원망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해도
 
혹시나 암일까봐, 

방탕했던 자신이

미워질까봐...
 
그래도 난 당신이 이곳을 오실 때마다

물어볼 것입니다. 

CT찍으셨냐고. 

결과 가져오셨냐고. 

묻고 또 물어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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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체험을 하며 나는 내 자신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대학교 시절, 서울역 공중전화 박스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뒤돌아보니 머리를 감지 않아 굳어버린 두상과 세탁한지 오래된 옷차림의 행색이 말이 아닌
한 노숙인이 배가고파 밥을 사 먹어야 하니 자그마한 돈을 보태달라고 말을 걸기 위해
내 어깨를 두드렸던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니,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노숙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는 무엇인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못한 채 그대로 줄행랑을 쳐 버렸다.
그 날 하루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다시금 그 일이 떠오르게 되면 왠지 모를 미안함과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단지 나에게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할 약간의 돈을 보태달라고 다가왔을 뿐이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 크게 반응하고 무서워했을까?
노숙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 형제를 생각해 보니 참으로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 이었다.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패기 있는 젊은이 시절을 보냈을,
누군가의 아버지였을지도 모를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일 뿐인데 나는 왜 그리도
그를 경계했을까!
노숙체험을 하기위해 서울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잠시 그 때 그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밤늦은 10시 30분쯤부터 우리는 노숙하는 분들에게 라면을 나누어 드렸다.
한 분 한 분씩 찾아가며 라면을 나누어 드릴 때, 이런 저러한 사연의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 내가 이때까지 보여주었던 타인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피상적이고 추상적이었구나...’
서울역 지하도를 걸으며 현실 속 그 들을 만나게 되니 내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행동으로
섬김의 삶을 살겠다고 해왔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 참으로 마음이 씁쓸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결심했을 때, 사랑하기로 결심한 대산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깊이 있는 공감은 매우 중요한 듯하다. 그에 반해 내가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보여주었던 행동들과 표현은 굉장히 유치하고 미성숙한 단계의 진심어린 공감이 부족한 사랑 나부랭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도 한 곳에 자리를 잡아 라면박스를 깔고 침낭을 덮고 앉아있으니 서서히 한기가 올라왔다. 
묵안리 평화의 마을, 따뜻한 보금자리와 부러울 것 없는 매일의 양식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곳에서 매일 따뜻하고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며 무엇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노동으로 기도를 드린다고 하며 단지 내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급급해 있는 것은 아닐까?  말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그 사랑이 진정 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어떤 이미지 안에서 머무르면서 현실 속으로는 파고들지 못하는 그런 가벼운 사랑은 아닐까?‘
생각에 생각을, 고민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날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했었던 이런 저러한 것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고
나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정말 미성숙한 사람이었구나...’
함부로 말하고 생각없이 행동한 지날 날들의 시간 속에서 나는 참으로 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하나님, 제 자신이 남은 DTS기간 동안 진정으로 참 된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 안에서 제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재미위주를 떠나 보다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일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함께함의 중요성을 더욱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목적과 뜻을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그 안에서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고 저의 길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 뿐만 아니라 다일 평화의 마을 훈련원에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하여 주사
 “천국은 무한한 공감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말이
지금 이 곳에서 성취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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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과 명절을 보내고 온 후, 매일 장난만 치던 쌍둥이들이 의젓해 졌습니다.
평소처럼 밥을 흘리지도 않고, 장난도 치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밥을 먹습니다
또 밥을 먹고 나면, 어머니를 도와서, 행주를 들고 열심히 식탁을 닦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쌍둥이들이 맑고 밝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쌍둥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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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장애인입니까?


청량리 로터리에서 27년째
노상 좌판으로 생계를 이어가시는
박영준씨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뇌성마비로 어릴 때부터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이지만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땅에 글씨를 써서 알리거나
상대방 말이 맞으면 손뼉을 두 번 치고
아니면 한 번 치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겨우겨우 하는 사람이지만
그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저를 볼 때마다 두 팔로
제 목을 힘껏 끌어안아주며 위로해줍니다.
“모짜님, 히 히 힘내!
 모 모짜님, 사 사 라 랑 해!”


정신지체1급 장애 판정을 받은
영준씨는 한 마디 말을 하기 위해서
발끝부터 온몸의 근육을 뒤틀어야 합니다.
몸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영준씨는 목소리 없는 몸의 언어이지만
관심을 갖고 집중하다보면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마음으로 이야기 나눌 때 말입니다.


다일공동체가 청량리에 세워지기 전부터
그는 그 자리에서 껌과 머리빗과 손톱깎이 등
자잘한 물건들을 팔아온 좌판상인입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그 누구에게 구걸하거나
폐 끼치며 살아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팔던 껌과 후원금을 슬며시 놓고 가던
초창기 다일공동체의 정기 후원회원입니다.


청량리 로타리의 붙박이처럼
바닥에 좌판하나 깔고 그 자리에 앉아
27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노점상인 박영준씨는
제 친구요 위로자요 스승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을 지나갔듯이
그를 만난 지 어느 덧 24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습니다만
오늘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갑니다만
이 대목에서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강남 졸부가 아니라도 그렇지요.
왜, 그렇게 많이 갖고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죽지 못해서 할 수 없이 산다고 하는지?
죽을 생각만 하는 사람이 장애인 입니까?
죽음 같은 고독과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가진 것 하나없이 살아가지만
살아있음 만으로도 감사하면서 구걸없이 원망없이
늘 웃으며 사는 박영준씨가 장애인입니까?
누가 장애인입니까?


장애를 극복한 비장애인 영준씨는
이미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건만
진짜 장애인들이 장애인 취급을 합니다.
극복된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닙니다.
오늘도 청량리 로타리를 오고 가는 행인들 중에
동정심으로 그의 물건을 사주는 분이 있지만
오랜 세월 그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
어제도 그제도 그를 만나고 오신
임정순 장로님과 이옥주 집사님 같은 분은
저처럼 신뢰와 감사와 존경의 눈빛으로
서울시민, 박영준씨를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다일의 친구요 영적멘토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은 구걸이 없는 삶으로
일체, 은혜, 감사의 삶을 언제나 어디서나
기쁘게 살아가니까요.
아하!!


 

그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저를 볼 때마다 두 팔로 제 목을 힘껏 끌어안아주며 위로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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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주은이가 지난 주에 감기에 걸려, 꼴록꼴록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은이가 보채는 것도 없고, 울지도 않고, 너무 해맑게 웃으며 놀기에 아버지,어머니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은이의 기침이 심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갔습니다.

그런데....
너무 해맑게 웃으며 노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감기가 심해져서 폐렴이 되었다고 합니다.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으나, 일주일을 링겔을 맞아야 폐렴이 나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주은이는 병원에서 매일 링겔을 맞으며 병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처음 링겔을 맞을 때는 무서워서, 링겔을 맞는 내내 울더니만,
4일된 지금, 적응이 되었다고, 주사를 놓을 때만 울고, 그 외에는 예전처럼 해맑게 웃으며, 장난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은이의 폐렴이 빨리 완치되게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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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낡은 사진 한 장이...


다음 계절을
기약할 수 없었던 당신,
특히 봄날을 보장 받지 못한 당신이기에,
늘 시린 마음으로
고달프게 살아간 노숙인으로 기억되지만
밥 한끼니에도 진정 감사 드리며
경건하게 두손을 모은
당신의 낡은 사진 한장이
많은 분들을 많이 부끄럽게 했습니다
늘 허기짐으로 먹은 밥이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
당신 모습을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페이스북 친구들이 남겨준 댓글과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감동전화 때문에
내내 목이 메어 허튼 기침을 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져 허공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눈을 껌뻑였는지요
당신을 기다리며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함께 공감하신 어느 벗님은 눈물을 흘리다가
아예, 통곡까지 했다고하네요


당신 같은 분들을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도 있었다 하고
앞으로는 이웃을 내 몸처럼 돌보며 살아야 겠다는
새로운 다짐도 있었다는데
대다수 정작 울었던 진짜이유는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는
허망한 삶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낡은 사진 한 장이
 기다림없이 살아가는 거짓 신앙을
여지없이 책망하면서
속울음까지 나오게 합니다.
그분 앞에서 정갈하게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무릎으로 나아가 기도하게 합니다.


끝내 살아서 이승에서든지
죽어 저 하늘나라에서든지
그 분 품에 안겨있을 당신이 보고 싶어서
당신을 안아주고 계실 그분이
너무 너무 보고 싶어서
아하!!

그 분 품에 안겨있을 당신이 보고 싶어서...당신을 안아주고 계실 그분이 너무 너무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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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눈을 열고 귀를 열고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이해하고 공감한 만큼, 절절한 필요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숙체험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은근하게 뼈 속을 스미는 한기를 견뎌내려면 두터운 박스를 깔아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 뜨거운 물이 담긴 물병을 배에 올린 채 누워 있으면 꽤나 보온 효과가 좋다는 것, 쾌쾌한 악취가 진동하는 차가운 바닥이라도 서두르지 않으면 빼앗겨 버린다는 것. 그런 상황들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추운 날에 따끈한 컵라면은 신나는 식사이고 그렇기에 당장은 먹기가 아까워 내일로 아껴두려는 마음, 나도 실은 당신만한 딸이 있다며 털어놓는 서글픔, 재기하고 싶은 의지보다 이제는 이미 점령당해버린 무기력감. 그런 것들을 옆에서 보았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었는데 지금 내게로 와 주실 순 없을까 하는 소심한 소망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곳의 그분들을 조금은 알게되었습니다.

 

다일이 실천해 온 친절하고 따뜻한 구체적인 방법에 함께 동참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마음이 같이 추웠고 고민할 거리가 생겼습니다. 함께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같이 누리도록 실천하는 삶이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제 관점에서 판단하고 결정한 대로 그 방법 안에서 도움을 주는 것은 스스로의 만족에 그칠 수 있지만, 같이 체험하고 이웃이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참된 나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다일이 추구하는 가치와 실천하는 사랑 덕분에 저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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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각 날때면...
 

이십사년전 청량리 쌍굴다리 아래에서
처음 밥을 나누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이
지독히 그립고 보고싶어 질때가 있습니다.
칠 년간 아무 소식이 없지만
어디엔가 꼭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억만이.
그가 생각 날때면 눈물까지 핑돕니다.
 

억만이라고는 불렀지만 성은 알 길이 묘해서
이억만인지 김억만인지 누구도 모릅니다.
얼마 전 털보 임씨와 24년 전에 찍은
낡은 사진을 보다가 그 사진속의 인물들이
자꾸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기에 가만히
그들의 별칭을 하나씩 불러 보았습니다.
벙어리, 엉망이, 넙쭉이, 칼갈이, 털보, 찍새....
 

옛날 사진속의 털보 임씨는 여전히
이렇게 당당히 살아있어
다일의 자원봉사자가 되어 있는데
죽은 넙쭉이와 도무지 행방을 알 길 없는
사람들중 특별히 억만이에 대한 기억은
참으로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직 살아있는지? 이미 별세 했는지?...
 

그는 항상 추운 겨울날에는 보이지 않다가
봄만 되면 나타나서 여름과 가을을 보낸 후
한겨울엔 또 다시 사라지는 친구였습니다.
따뜻한 봄날이면 얼씨구씨구 돌아왔네
절씨구씨구 돌아왔네 노랠 불렀던 억만이.
 

봄날이면 죽지않고 살아 돌아온 억만이로 인해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어?” 물으면
그는 씨익 웃으면서 한마디로만 대답합니다.
 “으음, 따뜻한 남쪽에서 지내다 왔지롱”
 

오늘도 밥퍼에 따뜻한 음식을 드시러 온
노숙인형제들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한 분 한 분을 유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그때 그사람, 억만이가 죽지 않고
다시 살아 돌아왔나 싶어서
아아!......


한 분 한 분을 유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그때 그사람, 억만이가 죽지않고 다시 살아 돌아왔나 싶어서...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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